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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재열 여행감독 Sep 02. 2021

청년예술가들과 캠핑카 500대로 개마고원 캠핑!

여행감독의 북한여행 큐레이션 제23편


여행을 기획할 때 '큐레이션'을 핵심에 두고 있다. 의외의 큐레이팅이 여행의 설렘을 만들어낸다. 큐레이팅은 대략 리서치/초이스/디스플레이 순서로 진행되는데 여행도 그렇다. 여행지와 여행자에 대한 리서치, 코스와 멤버의 초이스, 그리고 창조적 편집을 통한 여행 기획의 과정을 거친다. 


 '예술가들이 캠핑하면, 캠핑도 예술이다'라는 생각에 강영민 작가와 지리산에서 '전국 예술가 캠핑대회'를 조직하기도 했다. 규모를 크게 해서 진행한 것은 아니지만 시도 자체가 의미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정규 아트 플랫폼인 '지리산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진행되어 제법 많은 예술가들이 참석해 밀도 있게 진행되었다. 이 캠핑을 경험한 예술가는 그렇지 않은 예술가와 전혀 다른 예술적 방향성을 갖게 될 것이다. 



'전국 예술가 캠핑대회'의 경험은 '캠핑카 500대로 개마고원에서 캠핑하기(캠핑 소떼 프로젝트)'의 고민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고 정주영 현대 회장의 '소떼 500마리 프로젝트'를 오마쥬한 이 프로젝트로 남북 관계가 함께 먹고 마시고 즐기는 것으로 승화되었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한다. 


나아가 북한의 미래 먹거리인 관광에 '업트래블링'이라는 방점을 찍어보려는 의도도 있다. '업트래블링'이라는 말은 '내가 다녀온 여행지를 내가 가기 전보다 더 나은 여행지로 만들고 오는 여행'이다. '공정여행'이 '리사이클링'이라면 '업트래블링'은 '업사이클링'이라 할 수 있다. 북한 여행은 단순히 놀고 마시는 여행 그 이상이 될 필요가 있다는 고민에서 기획한 일이다. 


 


조금 풀어서 설명하면 이렇다. 북한은 경제를 살리기 위해 관광 산업 개발에 역점을 두고 있다. 이는 올해 김정은 위원장의 신년사에도 드러난다. 김 위원장은 원산갈마지구와 삼지연군의 리조트 공사를 차질 없이 진행하라고 독려했다. 북한 국가관광총국이 개설한 ‘조선관광’ 홈페이지를 보면 북한이 관광 산업에 나름 신경을 쓰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남북 교류가 재개되면 북한을 여행하려는 사람들이 물밀 듯 밀어닥칠 것이다. 하지만 남쪽에서 온 손님들을 모두 수용하기에는 북한의 숙박과 식당이 태부족이다. ‘조선관광’ 홈페이지를 기준으로 북한의 숙박 시설을 보면 유명 관광지도 호텔급 숙소 한두 곳이 고작이다. 기존의 북한 관광객 중에는 중국인이 많은데 숙박 시설이 적어 당일 여행을 유도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래서 아웃도어 북한 여행을 기획했다. 아웃도어 활동을 하는 사람들은 숙식을 자력으로 해결할 수 있다. 북측에서 캠핑장 부지에 최소한의 오폐수 처리 시설과 개수대만 설치해주면 아무 문제없이 캠핑을 할 수 있다. 그리고 북한 현지 식자재를 구매할 수 있게 해 준다면 요즘 유행하는 ‘공정 캠핑’에도 부합하는 행사가 될 것이다. 



그냥 500명이면 재미가 없을 것 같아 청년 예술가 500명이 하는 개마고원 캠핑을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이들이 함께 '평화의 무기는 무엇인가'에 대해 밤새 논의하는 것이다. 물론 북한의 청년 예술가들과 함께. 그런데 문제가 있다. 이들에게는 캠핑카가 없다. 하지만 괜찮다. 캠핑카 있는 사람들이 청년 예술가들을 에스코트해서 북으로 가면 된다. 이런 생각으로 경기문화재단이 <DMZ피스페스티벌>에서 캠핑 세션을 나에게 의뢰했을 때 개마고원에서 할 캠핑을 임진각에서 먼저 해보는 방식으로 기획했었다. 


나는 예술가의 책무는 새로운 방식으로 우리 시대에 새로운 질문을 던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청년 예술가 500명이 개마고원에서 북한 예술가들과 함께 캠핑을 한다면 엄청난 질문을 던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일단 상상만으로도 유쾌하지 않은가. 요즘 청년들은 '통일을 왜 굳이 해야 하나'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는데, 이런 식으로 접근한다면 통일에 대한 흥미를 상승시킬 수 있을 것이다. 



큐레이션은 단순히 '섞는 것'이 아니라 '뽑아내기'다. '청년 예술가 개마고원 캠핑 프로젝트'는 나에게 '뽑아내기'의 기준점을 준다. 언젠가 함께 개마고원에서 캠핑할 때 술잔을 마주칠 수 있는 사람인가, 라는 관점에서 보면 함께 할 사람들이 보인다. 아무튼 이 관점에서 일단 국내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청년 예술가 기행'을 진행해 보려고 한다.


여행 때마다 '길 위의 살롱'을 구현하려고 한다. 여행에 적합한 예술 모형을 실험하다 ‘최소 예술’을 고민하게 되었다. ‘최소 예술’의 도구는  해금이나 기타와 같은 악기일 때도 있고,  악기가 아닌 목소리일 때도 있고, 플라멩코 무용가의 힐일 수도 있고, 소리꾼의 부채일 수도 있고, 음악과 관련된 것이 아닐 수도 있다. 이를테면 간단한 스케치 도구통일 수도. 


처음 이런 ‘예술도시락’ 개념을 생각하게 된 계기는 지리산 사성암 정자에서 본 한 소리꾼의 부채였다. 사성암 위쪽 정자에서 지리산을 조망하는데 소리꾼이 보스턴백에서 부채를 꺼냈다. 그리고 구성지게 소리를 한 자락 뽑아냈다. 정말 찐이었다. 그 순간 정자는 너무나 훌륭한 공연장이 되었다. 여행은 주로 시각적 사치지만 가끔 이런 청각적 사치를 누려보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후 꾸준히 ‘예술도시락’을 싸가고 있다. 이 '예술도시락' 덕분에 여행자들은 ‘선물 같은 순간’을 경험할 수 있었다. 


주) '길 위의 살롱'에 참여할 예술가들을 모시고 있습니다. 

아래 링크의 간단한 설문을 작성해 주시기 바랍니다. 

적확한 여행에 절묘하게 초대하고 싶습니다.


https://docs.google.com/forms/d/1F5m7AMbgWxg58Fr50zWwHpLA8ONX-nA9GqfAyIaLyBc/ed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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