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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재열 여행감독 Jan 29. 2022

지금 이 판국에 북한 여행 기획서를?

우리 모두 진흙탕 속에 발을 담고 살지만 누군가는 하늘 위의 별을 본다


'자격도 없는 사람이, 내용도 충분하지 않은데, 적절한 시점도 아닌 때에 썼다'. 저자로서 이 책에 대한 소회를 솔직히 고백하면 그렇다. 북한 여행을 충분히 해본 입장도 아니고, 북한 여행 관련 정보를 특별히 제공받는 것도 아닌 상황에서, 남북 관계는 경색될 대로 경색되어 북한 미사일 실험이 재개된 때에 북한 여행 기획서를 쓰다니, 확실히 무모했다. 


그래도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해서 창피함을 무릎 쓰고 썼다. 소책자 수준의 기획서는 쓸 수 있겠다고 생각했고 필요하다고 여겼다. 경제 제재가 장기화되면서 북한도 쿠바처럼 관광산업에 총력을 기울이는 상황에서 북한 여행이 서구 여행자들과 중국 유커들의 취향으로 재편되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북한 당국의 자존감 없는 모습에 이대로 가면 죽도 밥도 안 되겠다는 생각에 뭔가 제안을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이 책은 개마고원으로 캠핑카 500대를 이끌고 캠핑을 가겠다는 무모한 상상력에서 시작되었다. 캠핑카 500대는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소떼 500마리 방북의 오마쥬였다. 캠핑카 500대가 휴전선을 넘어서 개마고원으로 향하는 행렬은 자연스럽게 소떼 500마리를 연상시켜 남과 북이 평화의 시대로 접어들었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미지의 여행지 북한을 상상하게 하자는 취지였다.  


캠핑카 500대 프로젝트를 제안한 이유는 북한 여행을 제로 베이스로 상상해 보자는 의도도 있었다. 캠핑은 숙박과 교통이 불비한 북한의 제약 조건을 극복하는 여행법이다. 특별하 시설 없이 북한의 산하를 있는 그대로 즐기고 북한의 식자재로 멋진 식사를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면 북한의 난개발을 막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김정은 시대에 경제제재를 극복하는 수단으로 북한은 관광 개발에 힘써왔다. 남북이 단절된 상황에서 북한의 산하에서 춤을 추고 있는 것은 바로 자본주의였다. 외국인들의 관광 아이디어를 북한 국가관광총국에서 무분별하게 수용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이대로 두면 북한은 가장 자본주의화된 관광지가 될 수도 있겠다는 우려가 되었다. 원산 갈마반도와 백두산 삼지연과 양덕온천 휴양소 대단위 개발에서 섣부른 개발주의를 확인할 수 있었다.  


북한의 관광 개발의 문제점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자존감 부족’이다. 형식적으로는 북한의 자연자원과 인문자원을 내세웠지만 실질적으로는 대규모 관광 개발에 의존했다. 북한이 내세우는 부분이 자존감인지 자기 최면인지도 불분명했다. 영혼 없이 ‘북한의 금수강산은 최고’라고 내세우지만 이에 대한 확신은 부족해 보였다. 관광 자원을 빛나게 할 소프트웨어도 턱없이 부족했다.  


이때 쿠바식 해법에 주목했다. 쿠바 역시 경제제재로 어려움을 겪는 곳이지만 관광산업을 발전시켜 이를 극복하고 있다. 쿠바가 여행지로 사랑받는 이유 중 가장 큰 것은 쿠바인들의 자존감이었다. 자신의 국가에 대해서 자신이 누리는 문화예술에 대해서 삶의 태도에서 자존감이 있었다. 이런 자존감이 관광객들에게 큰 매력으로 작용했다. 북한도 자존감에 바탕을 둔 관광 개발이 필요해 보였다.   


북한 여행을 기획하는 일은 통일에 대해 가장 창의적으로 접근하는 방법이다. 어떤 일이든 재밌어서 하는 일은 당할 수 없다. 통일이 뭔가 부담스럽고 번잡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MZ 세대에게 미지의 여행지에 대한 새로운 여행법을 제안하는 것은 통일에 대한 관점을 바꿀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여행을 상상하는 것은 언제나 즐거운 일이니까.  


남북 교류가 간간히 있긴 했지만 여행지로서 북한은 아직 미지의 장소다. 대한민국 국민들이 알고 있는 북한 여행지도 금강산 원산해수욕장 백두산 등 몇 곳에 제한된다. 개성을 비롯한 황해도 지역은 당일관광이 가능하고 원산을 시작으로 함흥과 청진 그리고 나선까지 이어지는 북한의 동해안 지역에는 경포호나 영랑호와 같은 바다에 인접한 호수도 많고 또 섬도 제법 있다는 사실도 모른다.  


백두대간을 종주가 유행이지만 사실 정확하게 말하자면 한 명도 종주하지 못했다. 종주를 했다는 사람들은 모두 남측의 절반 즉 오십두대간 밖에 종주하지 않은 셈이다. 북한 쪽 백두대간을 걸은 사람은 뉴질랜드인 로저 셰퍼드뿐이다. 한라산이 한반도의 산 중에 높이로 50위 안에도 들지 못한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도 드물다. 가야 할 산이 많은데 그 산들의 이름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북한엔 가야 할 것도, 해봐야 할 것도, 먹어야 할 것도 너무나 많다. 북한 여행은 다른 누구도 아닌 우리가 기획해야 할 일이다. 여행감독으로서 의무감을 느끼고 이 여행 기획서를 작성했다. 자료가 미비하고 답사가 미흡해서 많이 부족하지만 첫걸음을 내디뎠다는 것에 의미를 부여하고 싶다. 여행은 경험치의 세계다. 북한 여행을 조금이라도 경험할 수 있다면 더 나은 안내서를 쓸 수 있을 것이다. 그날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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