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가 ‘메가쑈킹’이 제주도에 연 게스트하우스 ‘쫄깃쎈타’는 제주 게스트하우스 문화의 한 기점이었다. 기존의 게스트하우스는 한두 명의 결단과 그들의 스타일로 도배된 공간이었다면 쫄깃쎈타는 일종의 게스트하우스 협동조합 성격을 뗬기 때문이다. 쫄깃쎈타는 삶의 시간표를 멈추고 제주도에 내려간 30대들의 아지트였다.
제주도에 내려가서 인생을 '중간 정산'하고 인관관계를 '중간 급유'를 하는 30대의 모습을 보고 나는 '놀쉬돌(잘 놀고 잘 쉬는 아이돌)'이라는 말을 만들어내고 이들을 예로 들었다. '아이돌'이라는 것은 선망의 대상이 되는 존재인데 나는 이들이 그런 대상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후 10년 동안 제주도에 수천수만의 '놀쉬돌'들이 내려왔다.
쫄깃쎈타 출신 중에는 다시 삶의 시계로 되돌아간 사람도 있지만 많은 이들이 제주에 남아 새로운 공간을 만들었다. 그런 면에서 쫄깃쎈타는 일종의 게스트하우스 사관학교였다고 할 수 있다.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언젠가 나도 삶의 시간표를 바꿔보겠다는 막연한 생각을 했던 것 같고 그것이 기자를 그만두고 여행감독으로 나선 계기가 된 것 같다. 10년 전 인터뷰를 다시 꺼내 보았다.
주) 2011년에 이뤄진 인터뷰입니다
제주도에서 만화가 ‘메가쑈킹’(고필헌·38)을 세 번 만났다. 그가 ‘쫄깃패밀리’와 함께 연세(年貰)를 내고 함께 사는 모슬포의 전셋집에서, ‘쫄깃쎈타’가 들어서는 협재해수욕장의 민가에서, 그리고 말레이시아인 아이링 씨가 운영하는 아일랜드 게스트하우스에서. 만날 때마다 그의 손에는 제주‘맛’걸리가 들려 있었다. 얼굴은 점점 더 까맣게 타는데 볼 때마다 광(光)이 더했다.
‘메가쑈킹’은 곧 게스트하우스를 오픈할 예정이다. ‘쫄깃쎈타’는 고객센터의 이름이고, ‘쫄깃패밀리’(쫄패)는 게스트하우스를 함께 만드는 자원봉사자를 일컫는다. 이들이 심상치 않다. 쫄깃쎈타에서 쫄깃패밀리를 만나다 보면 서울 홍대 앞을 제주로 통째 옮겨온 것 같은 느낌을 받게 된다. ‘메가쑈킹’ 말마따나, 협재해수욕장 옆 골목이 배낭여행객의 성지라는 타이의 카오산로드에 버금갈 만한 명소가 되지 않을까 싶다.
메가쑈킹을 비롯한 쫄깃패밀리들은 공통점이 있다. 제주를 바람처럼 다녀가다 어느 순간 돌하르방처럼 정주하기로 마음먹은 그들 대부분은 왕성하게 사회활동을 할 나이인 30대다. 그런데 돌연 삶의 시간표를 멈추고 제주도에 내려와 쫄깃쎈타에서 무료 봉사를 하고 있다. 이들의 성공을 기원하는 동년배 여행객들은 제주맛걸리를 공수하며 이들을 응원한다.
이 쫄깃패밀리의 모습에서 잘 먹고 잘 살지 못해도 잘 놀고 잘 쉬는 ‘놀쉬돌’의 전형을 볼 수 있었다. 기자는 이들을 ‘제주도 놀쉬돌’이라 부르기로 했다. 제주올레를 계기로 생태·환경 섬으로 거듭난 제주도가 이들이 만든 문화 아지트를 통해 문화·예술 섬으로 또 한 번 발전할 수 있을까.
이를 탐색하는 뜻에서 기자는 앞으로 기회가 닿는 대로 제주도 놀쉬돌을 탐방하고자 마음먹었다. 세계 80여 국가를 여행하고 제주에 정착한 말레이시아인 아이링 씨,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현장에서 인디 밴드 뮤지션들의 평화 공연을 기획해 강정마을을 ‘제주의 두리반’으로 만든 부세윤씨 등이 그들이다. 이들의 문화 아지트가 되고 있는 간드락소극장, 달리도서관, 한라산문화학교, 가시리 예술인마을, 월평동 문화공동체를 둘러보는 한편 한 달 이상 제주에 머물다 가는 제주꾼들을 위한 아지트 구실을 하고 있는 바람카페, 바그다드카페, 스테이위드커피, 닐머리동동도 돌아볼 작정이다. 레이지박스, 소낭, 자유 등 이들의 베이스캠프 구실을 하는 게스트하우스도 빠뜨리면 서운할 곳들이다.
그전에 만날 사람이 이 모든 기획의 구심점이 되는 ‘메가쑈킹’. 연예인 유세윤이 이끄는 UV의 ‘이태원 프리덤’에 비견할 만큼 화제가 되는 ‘메가쑈킹’의 ‘제주도 프리덤’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쫄깃쎈타’ 프로젝트의 계기는 무엇이었나?
원래 쫄깃쎈타는 서울 홍익대 쪽에 만들 생각이었다. 마음 맞는 예술가들을 스무 명쯤 모아 돈 걱정 없이 실컷 술 마시고 춤추고 신명 나게 놀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 보증금 격인 목돈은 내가 내고 월세는 스무 명이 모아 내는 방식이었다. 일종의 재미있는 실험을 해보고 싶었다. 실제로 스무 명의 홍대 ‘쫄깃패밀리’를 모았지만 가슴 두근거렸던 이 계획은 이런저런 현실적인 이유로 무산되었다. 그러던 와중에 ‘제주도에 쫄깃쎈타를 만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음식점이든 술집이든 카페든 게스트하우스든 상관없었다. 일단 제주에 재미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 열 살 때 서울에 올라온 반제주도 사람 브루스(강민석·36)와 어려서부터 여행 사업을 하는 것이 꿈이던 동생 SG워너니(고원헌·36)가 함께하기로 했다.
애초 구상대로 되고 있나?
처음에는 공사가 잘 진행되었는데 공사 담당자와 심한 마찰이 생겼다. 공사 담당자가 현장을 떠나면서 우리 손으로 직접 공사를 해야 하는 지경이 되었다. 마음은 편해졌지만 공사 속도가 무척 느려져서 5월 초로 잡았던 오픈 날짜가 계속 미뤄지고 있다. ‘쫄패’ 8명이 열심히 힘을 합쳐서 하루하루 조금씩 완성되어가는 모습을 보는 것이 행복하다.
협재해수욕장 근처를 택한 이유가 있나?
이왕이면 우리나라에서 가장 따뜻한, 그리고 제주도에서도 가장 따뜻한 남쪽 해변에 쫄깃쎈타를 짓고 싶었다. 하지만 좀처럼 괜찮은 매물이 나오지 않았다. 그런데 우연한 기회에 부동산 업자를 따라 이 건물 옥상에 올라가서 풍경을 본 순간 완전히 압도되었다. 제주에서 가장 마지막에 생긴 화산섬인 비양도와 어우러진 에메랄드빛 바다가 환상이었다.
개장도 하기 전에 사람들이 많이 찾는데, 그 이유를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평소에 어떻게 하면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까, 고민하는 것이 취미였다. 그쪽으로 책도 많이 읽고 공부도 많이 했다. 진정한 행복에 관한 생각과, 제주도에 대한 글·사진을 트위터에 열심히 올렸더니 많은 분이 공감해주었다. 재미있는 점은 트위터 이용자 중에는 아직도 내 직업이 만화가인 줄 모르는 사람이 상당히 많다는 것이다. 그냥 제주도에 미친 사람으로 알고 있다. 제주도에 사는 내 모습을 보며 트위터로 대리만족을 하던 사람들이 제주도에 놀러 와서 쫄깃쎈타 공사장을 찾아와 응원해준다. 찾아올 때 ‘양손 무겁게 제주맛걸리 들고 찾아와달라’고 글을 올려놔서 제주맛걸리와 안주를 들고 오는 사람이 많다. 제주막걸리를 나는 제주‘맛’걸리라 부르는데, 하도 많이 마셔서 얼마나 마셨는지 감이 안 온다. 손님들이 찾아오면 공사하는 모습을 보여준 후 무조건 ‘생지옥’(생각을 지우는 옥빛바다)으로 데려가서 구경을 시켜준다. 하루에 한두 사람은 꼭 온다. 직접 방문하지 못하는 사람은 간식을 소포로 보내주기도 한다. 덕분에 늘 간식이 넘쳐난다.
‘쫄깃쎈타’에 대해 제주도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나?
쫄깃쎈타 공사에서 미장일을 해주던 아저씨가 어느 날 나한테 조심스레 물었다. 쫄패들이 궁금하다는 것이었다. 두 달 동안 무상으로 일을 도와준다는 것이 도저히 이해가 안 된다고 했다. 그러더니 혹시 종교단체 아니냐고 물었다. 졸지에 교주가 되어버렸다.
쫄패들이 한 이야기 중 기억에 남는 것은?
언젠가 인터뷰를 하는데 인터뷰어가 쫄패들에게 물었다. “도대체 왜 임금도 받지 않고 일을 하는 겁니까?”라고. 그러자 쫄패들이 이구동성으로 답했다. ‘재미있는 공간을 함께 땀 흘려 짓고 운영 수익금의 일부를 어려운 이웃돕기에 쓴다는 ‘메가쑈킹’의 뜻에 함께 동참하고 싶었다. 만약에 ‘메가쑈킹’ 형이 임금을 줬다면 절대로 하지 않았을 것이다’라고. 그런 쫄패들의 당당한 모습에 무척 감동을 받았다. 나는 내가 쫄깃쎈타의 주인장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쫄패 8명 중 한 명일 뿐이다. 형으로서 어떻게 하면 그들이 재미있고 기발한 일을 하면서 돈을 벌게 할 수 있을까 고심 중이다.
제주도에 와서 새롭게 발견한 이곳의 매력은 무엇인가?
서울에 있을 때에는 하루하루가 바쁘게 느껴졌지만 이곳은 한가하고 또 한가하다.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있어도 즐겁다. 제주도에 있으면 나도 모르게 달팽이가 되는 것 같다.
제주에 정착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2003년 부모님을 모시고 렌터카로 제주도를 여행한 적이 있다. 첫 제주도 방문이었다. 그런데 3박4일 내내 날씨가 흐리고 비가 와서 고생했다. 관광안내서에 나온 식당들마다 어찌나 맛이 없던지…. 제주도에 대한 인상이 무척 안 좋았다. ‘다시는 이딴 섬 오나봐라’ 그런 말까지 했다. 그리고 몇 년 뒤에 2주 동안 올레길 1코스부터 12코스까지 걸을 기회가 있었다. 그때 제주도에 대한 인식이 180도 바뀌었다. 특히 제주도 시골 마을 모습에 반했다. 느리게 여행하니까 제주의 새로운 모습들이 눈에 들어오더라. 그때부터 다짐을 하게 되었다. 나중에 언젠가 한적한 바닷가에 뚝딱뚝딱 집 지어 살고 싶다고.
제주도에 온 뒤 어떤 변화가 있었나?
제주에 놀러 온 누군가가 내게 말했다. 눈빛이 많이 부드러워졌다고. 예전에는 차갑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실제로도 만사가 그리 즐거운 사람은 아니었다. 불평불만도 많았다. 저 사람은 저렇게 잘 사는데 나는 왜 이 모양일까? 쓸데없는 비교도 많이 해서 마음도 많이 상했다. 그런데 이젠 나를 보는 사람들마다 여유가 뚝뚝 묻어난다고 한다.
사람들이 제주도에 와서 무엇을 느끼고, 무엇을 얻었으면 하나?
제주도를 찾는 사람들에게 늘 말한다. 가능하면 하루라도 더 머물라고. 제주는 오래 머물면 머물수록 그 진가를 확실히 느낄 수 있는 섬이다.
사람들에게 쫄깃쎈타를 어떻게 이용하라고 말하고 싶나?
쫄깃쎈타를 제주도에 있는 내 집이라고 생각했으면 좋겠다. 물론 편하게 쓰라는 의미도 있지만 자기 집처럼 소중하게 써달라는 의미도 있다. 그리고 재능이 있다면 다른 게스트들과 자유롭게 소통하며 교환해보라고 권하고 싶다.
쫄깃쎈타 이후의 제주도 문화 지형도를 조심스럽게 예상해본다면?
개성 넘치는 젊은 사람들이 많이 정착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홍대스러운 분위기여야 한다. 절대로 강남스러운 분위기여서는 안 된다. 트위터 같은 매체가 그런 변화에 한몫 단단히 할 것 같다. 하지만 이 모든 변화가 부디 천천히 여유롭게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제주도에 정착할 젊은이들이 모두 자발적으로 힘을 모아, 느리지만 제대로 만들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제주도가 어떤 곳이 되기를 바라는 건가?
재미있고 다양한 생각을 가진 육지의 젊은이들이 제주에 많이 정착할 것 같다. 덕분에 제주도가 좀 더 센스 있고 발랄하고 젊은 혈기로 가득 찬 섬이 될 것 같다. 엄청난 속도로 게스트하우스와 카페들이 생겨나고 있다. 이젠 관광의 섬이 아닌 여행의 섬 제주도로 점점 바뀌어가지 않을까 싶다. 내 꿈은 쫄깃쎈타가 있는 협재리를 타이의 카오산로드처럼 천천히 바꿔나가는 것이다.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많은 제주도 젊은이가 육지로 빠져나가고 있다. 그런 모습을 바꿔보고 싶다. 제주도로 젊은 사람들이 몰려오게 만들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