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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재열 여행감독 Sep 19. 2021

정치 이야기를 영양가 있게 하는 방법

명절에 정치 이야기가 나오면 이걸 염두에 두고 마음껏 해보시라

'그건 정치적이라 안 된다' 최근에 들었던 말이다. 무엇이 정치적이냐고 되물었을 때 그는 명확히 대답하지 못했다. '그건 정치적이라 안 된다'는 말은 대부분의 경우 '그런 것을 언급하면 내가 정치적으로 보일 수 있어서 안 된다'는 말을 줄여서 한 것이다. 한국 사회가 양극단으로 갈리다 보니 많은 사람들이 정치 이야기 하는 것을 겁내다. 하지만 정치 이야기를 영양가 있게 하는 방법이 있다. 



흔히 사적인 모임에서 하지 말아야 할 이야기로 정치 이야기와 종교 이야기가 꼽힌다. 공연히 이야기를 꺼냈다가 분란만 일으킨다는 것이다. 틀린 말은 아니다. 실제로 그런 사례를 왕왕 볼 수 있다. 진보와 보수가 극단적으로 대립하는 우리 사회에서 정치적 견해를 드러내는 것은 괜한 미움만 살 수 있다.


하지만 맞는 말도 아니다. 정치 이야기를 나눠보면 의외의 소득을 얻을 수 있다. 상대방이 세상을 보는 관점을 알 수 있고, 현실을 분석하는 능력을 가늠할 수 있고, 사람을 설득하는 능력을 볼 수 있다. 지난 대선처럼 다당제 하에서 다양한 후보가 난립한 가운데 다양한 정치공학이 선보이는 대선에서는 더욱 그렇다.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개혁 진보 성향의 유권자라 해서 단순히 문재인을 지지하는 사람, 심상정을 지지하는 사람 혹은 둘 다 지지해서 고민 중인 사람만 있는 것이 아니다. 문재인을 지지하는데 아무래도 불안하니 심상정 지지자까지 꼭 끌어 와야겠다는 사람도 있고, 문재인은 어차피 당선되니 남는 표를 사표로 만들지 말고 심상정을 찍으라는 사람도 있다. 선 곳이 다르면 바라보는 곳도 다르고, 바라보는 곳이 다르면 행동하는 양상도 다르다.


만약 상대방이 정치 이야기를 꺼내면 질문을 던져보라. 사람에 대해 판단할 수 있는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다. 현재의 판세와 앞으로의 양상을 어떻게 분석하는지, 자신의 주장에 대한 근거를 어떻게 드는지, 자신과 다른 정치적 견해를 가진 사람을 어떤 식으로 받아들이는지를 물어보라. 그의 판단력과 품성을 아는데 도움이 된다.


사람은 특히 남을 욕할 때 자신의 바닥을 보이기 십상이다. 남 욕하는 것을 업으로 삼다 보니(우리는 건전한 비판이라고 주장하지만) 남 욕하는 것을 보고 사람을 평가하게 된다. 사람은 상대방을 깎아내리면서 자신도 함께 무너진다. 욕할 만한 사람을, 욕할 만한 일로, 욕할 만큼 욕하는 것은 쉽지 않다. 욕이 귀에 거슬리겠지만 욕을 쓰는 방식을 보면 그가 무너지는 방향이 보인다. 



당장 TV토론만 봐도 그렇다. 후보들은 주로 상대방을 욕하다가 무너졌다. TV토론을 여러 번 하는 동안, 열심히 상대방을 욕하면서 대통령 후보들은 자신의 바닥을 드러낸다. TV토론은 단번이 아니라 연속이라는 것이 중요하다. 점점 더 신뢰를 주는 후보가 있는가 하면 신뢰를 잃어가는 후보도 있다. 한 사람을 한 번 속일 수는 있다. 여러 사람을 한 번 속일 수도 있다. 한 사람을 여러 번 속일 수도 있다. 하지만 여러 사람을 여러 번 속일 수는 없다. TV토론의 의미는 바로 여기에 있다.


다들 우리나라 대선 후보들의 TV토론을 보고 품격이 없다고 한탄한다. 하지만 토론은 잡스러울수록 진실되기 마련이다. 처음엔 현란한 말기술에 현혹될 수 있지만 여러 번 보면 진정성이 느껴지고 가증스러움이 보인다. 정치의 본질은 화합이 아니라 쟁투다. 권력을 놓고 전쟁을 벌이던 일을 선거로 대체했다. 그 선거의 무기가 바로 말싸움이다. 그들의 토론은 단지 문제의 답을 구하는 과정이 아니라 자신의 지지기반이 되는 세력의 이익을 대변하는 것이다. 거칠 수밖에 없다. TV토론은 결코 고담준론이 될 수 없다.


치열한 TV토론 동안 국민들은 대선 후보들의 민낯을 볼 수 있다. 그것은 한국 정치의 민낯이기도 하다. 안타깝게도 그들이 그런 논리로 우리 사회의 중요한 일을 결정한다. TV토론은 그런 냉정한 정치현실을 증명한 것이다. 마치 모래에서 사금을 걸러내듯 그 거칠고 험악한 말 중에서 우리 사회를 이끌 희망을 발견하는 일이 선거다.


대선이 6개월도 안 남았기에 추석 밥상머리에서 정치 이야기가 없을 수 없다. 이제 더 이상 정치 이야기를 겁낼 필요 없다. 침묵을 강요하는 자는 세상이 지금의 형세를 이어가길 바라는 사람들이다. 세상에 문제가 있다면, 그 문제에 대해 의견이 있다면 발언해야 한다. 그것이 주인 된 자의 권리고 또한 책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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