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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재열 여행감독 Dec 22. 2020

부모 살해범이 된 헐리우드 키드,를 위한 변명

드라마 <낮과 밤>의 도정우를 보면서 그를 떠올렸다. 

    

20년 전 기자가 되고 가장 먼저 접했던 살인사건이었던 것 같다. 그런데 부모 살해범 그것도 토막 살해였다. 그만큼 충격이 컸다.    

  

사건이 외적 충격이었다면 직접 만나본 살인범은 내적 충격이었다. 인간의 양면성, 그 극단을 보여주는 캐릭터였다. 같은 대학 후배이기도 해서 좀 자세히 들여다보았는데 그는 또래에 비해 ‘인문적’이었다. 공대생이었지만 인문학 전공자들보다 소양이 높았다. PC 통신에 올린 글도 그랬다. 그런 그의 내면과 그가 저지른 외적 살인이 매칭 되지 않았다.      


현장 검증 후 피의자가 도시락을 먹을 때 형사가 둘 만의 시간을 허락해 주었다. 그때 그는 대학 선배에게 말하듯이 편하게 마음을 놓고 나에게 말을 했는데 현장 검증 때와 태도가 달랐다. 자신이 저지른 일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했다.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그 말이 죽음으로써 뫼비우스의 띠를 끊었다는 말처럼 들렸다.       


요즘 드라마 <낮과 밤>을 보고 있는데 살인의 복잡성과 관련해 그가 떠올라서 기사를 찾아 읽어 보았다. <낮과 밤> 도정우를 보면서 왠지 20년 전 그가 떠올랐다. 아래 글은 20년 전 쓴 글로, 그가 감상평을 남긴 영화와 그의 말 그리고 그가 저지른 사건을 꿰어 맞춰본 글이다.    


   


: (2000년 5월 작성한 글)      


동네 비디오 가게에서 빌려본 비디오가 수백 편, 직접 소장하고 있는 테이프만도 수백 개, 영화 동호회 게시판에 올린 글이 또 수백 편. 과천 부모 살해 사건 용의자, 이준석(가명)은 전형적인 영화광이었다. 최근까지도 그는 하루 3∼4개씩의 비디오를 빌려 봤다.     


내성적이고 소극적인 그에게 영화는 세상과 만나는 창이었다. 자기만의 세계에 고립된 그에게 영화는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는 유일한 통로였다. 그는 영화 얘기를 하기 위해 사람들을 만났고, 영화를 통해 교감했다. 영화는 그에게, 자신의 존재를 확인시켜주는 수단이기도 했다. 그는 통신에서 영화 동호회 활동을 하면서 사람들로부터 인정받을 수 있었다.     


이렇게 영화가 그의 삶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기에, 그의 살인을 이해하기 위한 흔적을 찾기 위해 그가 본 영화 중에서 특별히 의미를 부여했던 영화들을 살펴보았다.     


사실 그는 "나는 영화와 현실을 구분할 줄 안다"라고 말하며, 자신의 범행이 영화라는 코드를 통해 해석되는 것을 막았다. 하지만 영화가 비록 살인의 직접적인 원인은 아니라 할지라도 그의 심리를 이해할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할 수는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가위손> / '콤플렉스'     


<가위손>, 영화광인 그가 제일 좋아한다고 대답한 영화이다. 그는, 손에 달린 이상한 가위 때문에 사람들로부터 외면당하는 <가위손>의 주인공 에드워드처럼 늘 자기 자신은 뭔가가 부족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자신이 '불완전하게 만들어진 미완성품'이라고 말한 에드워드처럼 그도 자신을 '낙오자'라고 표현했다.     


"나처럼 괴물 같은 자식을 낳아서 부모님 이 이런 일을 당했습니다. 제가 세상에 왜 태어났는지를 모르겠습니다."

(현장검증 후, 마지막 말)     


<아비정전> / '자기만의 방'     


중학교 때 그는 친구들로부터 왕따를 당했다. 이후 대학에서, 군대에서, 동호회에서 많은 친구들을 만났지만, 그는 끝내 자신을 드러낼 수가 없었다. 왕따의 경험 때문에 행여 사람들이 또 자신을 놀릴까 봐 자신의 단점을 드러낼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점점 사람들과 벽을 쌓고 자신을 내보이지 않게 됐다. 그래서 영화도 세상과 어울리지 못하고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 사는 주인공을 그린 영화를 좋아하게 됐다.     


'사랑을 원하면서도 그로 인해 상처 받을 것을 두려워하는 사람들, 어떤 사소한 일에 맹목적으로 집착하는 사람들, 그런 인물들을 다루는 왕가위 영화를 나는 좋아한다.'

(1995년 11월 21일, 통신 동호회에 올린 글)     


<킬러> / '참을 수 없는 폭력의 유혹'

(원제, 내추럴 본 킬러)     


올리버 스톤의 <킬러>는 그가 여러 차례 거듭해서 보았던 영화이다. 그는 이 영화를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영화라며, 동호회 사람들에게 권하기도 했다. 그가 경찰에서 밝힌 살해 동기처럼 <킬러>의 두 주인공은 부모로부터 구박받고 무시당했던 어두운 과거를 가지고 있는 인물들이다. 이들은 그 어두웠던 과거로부터 빠져나오기 위해 부모를 살해하고 끝없이 살인을 저지른다.     

이런 이유들, 그가 콤플렉스에 시달리고, 왕따의 아픈 기억이 있고, 부모로부터 끝없이 구박받았다는 것들은 그의 살인을 차곡차곡 설명해준다.     


그러나 "올리버 스톤의 <킬러>에서는 두 주인공, 미키와 말로리의 가정환경이 불우했음을 강조한다. 하지만 그것은 살인을 위한 최소한의 필요조건일 뿐이지, 그 정도로 부모에게 구박받고 자라났다고 살인마가 된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 그것은 단지 그들이 정상적인 가정에서 자라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것일 뿐이다.",

(1995년 10월 23일, 통신 동호회에 올린 글)

라고 말한 그 자신의 말처럼, 이것만으로는 그의 잔인한 살인이 설명되지 않는다. 그것은 그의 말처럼 살인의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은 아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그로 하여금 살인에 이르게 했을까?     


<브로큰 애로우> / '마지막 시도'     


그는 결벽증에 철저한 원칙주의자인 아버지와 히스테리컬 한 어머니 사이에서 늘 부대꼈다. 가족 사이에는 넘을 수 없는 커다란 벽이 있었다. 사건이 있기 며칠 전, 그는 부모에게 자신의 과거를 얘기하며 '잃어버린 시간'에 대해서 고백했다. 그러나 '이해한다'는 말을 듣고 싶었다던 그는 오히려 부모로부터 '네가 못난 탓인데, 왜 부모 탓으로 돌리느냐?'며 면박만 당했다. 이 사건 이후로 그는 부모가 남처럼 느껴져 절망하게 됐다고 했다.     


<브로큰 애로우>는 그가 가족 간의 벽을 깨기 위해 선택한 영화였다. 영화를 통해서 사람들과 소통했던 경험이 있는 그는 가족의 화해를 위해 비록 그의 취향에는 맞지 않았지만, 대중적으로 인기 있던 <브로큰 애로우>를 빌려 화해를 시도했다. 하지만 부모의 반응은 싸늘했고 그는 '부러진 화살'처럼 힘없이 혼자 볼 수밖에 없었다.     


<택시 드라이버> / '광폭한 질주'     


가족의 화해를 위한 그의 마지막 시도가 좌절된 후, 더 이상 세상으로부터 기대할 것이 없어진 그는 극단적 방법을 선택하게 된다. 피해망상에 사로잡힌 그는 "나를 뭘로 알고 이러는 거야, 참는 데도 한도가 있다. 잘 들어라, 이 이상은 못 참는다. 모든 악과 부정과 싸우겠다. 절대로 용서 못한다."라고 말하며 총을 뽑는 <택시 드라이버>(그의 통신 동호회 아이디가 택시 드라이버이다)의 주인공처럼 결국 광폭한 질주를 내질러 버리고 말았다.     

이제 그는 자신이 '살인에 관한 긴 필름'이라고 말했던 '데드 맨 워킹'처럼, 사형대를 향해 천천히 걸어가야만 할 운명에 처해 있다. '영화와 현실을 구분할 줄 안다'라고 말했던 헐리우드 키드는 '영화보다 더 절망적인 현실'에 처해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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