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쉽게 잊는다. 이명박근혜 시절 지상파 3사 중 '방송 장악'이 가장 심한 곳이 MBC였다. 이에 맞선 기자와 PD들은 모두 한직으로 물러나고 이른바 '시용기자'들이 방송 마이크를 독점했다. 그 시절(2013년)의 보도가 하도 기가 막혀서 기록해 두었던 글이다. 최근 <시사IN> 언론 신뢰도 조사에서 MBC뉴스 신뢰도가 어느 정도 만회된 것 같아서 다시 읽어보았다(몇몇 방송 사고로 인해 불신도도 높아졌다).
기록은 기억의 어머니다. 한겨레신문 최재봉 기자의 책 <그 작가 그 공간>에서 김훈 편을 읽어보면 전두환 때 신문사 사회면 머리기사를 동물 이야기로 채우고 사회부장이 기삿거리 없으면 기자를 동물원에 보냈다는 이야기가 있다. 저 시절 MBC뉴스의 '탐구생활 저널리즘'도 같은 맥락으로 읽을 수 있다. 권력 비판을 회피하기 위한 '비겁한 변명'이었던 셈이다. 그나저나 저 앵커, 지금도 어디서 많이 보이는 사람인 듯.
2013년 8월2일 MBC <뉴스데스크>의 헤드라인이다.
동해안 ‘식인상어’ 출몰… 해수욕장 안전지대 아니다 / 그러고 보니 모기가 없네? 뒤늦게 찾아와 가을까지 기승 / 통제 불가 매미 울음… 공사장이라면 과태료감. 이 뉴스가 나가고 마치 ‘별책부록’처럼 “고 조오련 아들 ‘해남군, 아버지 이름 쓰지 마’… 왜?” 뉴스도 나갔다.
‘통제 불가 매미 울음… 공사장이라면 과태료감’ 아이템은 ‘심층취재’ 뉴스였다. 기자는 산림청과 질병관리본부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매미가 농작물에 피해를 주지도 않고 전염병을 옮기지도 않는다며 단속할 근거가 없다고 지적했다. 매미 소리가 공사장 소음이라면 최고 300만 원 과태료감이라고 말하며 매미가 싫어하는 나무로 가로수를 바꾸는 방법이 있다고 제시했다.
이 뉴스를 보면 되묻게 된다. 농작물에 피해를 주지도 않고 전염병을 옮기지도 않는데, 왜 뉴스가 되는 것이지? 매미에게 과태료를 부과할 수도 없는 일이고 한 철 우는 매미가 싫어하는 수종으로 가로수로 바꾼다는 것이 말이 되나? MBC 뉴스는 왜 갑자기 곤충과 동물에 이토록 관심을 쏟는 것이지,라고 생각하고 있을 무렵 폭염뉴스가 폭주했다.
가마솥 속 남부, 도로도 녹았다…‘연일 펄펄’ / 강릉 이틀째 최저기온 30도 이상 ‘초열대야’ / 왜 동쪽이 더 더울까?… 마른 푄 현상 ‘폭염 가중’ / 불볕더위에 ‘열사병’ 사망 속출… 대구 학교 개학 연기 / ‘치사율 50%’ 열사병, 응급처치 늦으면 ‘치명적’ / 전력수급 경보 ‘관심’ 발령… 종일 전력난 ‘아슬아슬’ / 대한민국 질병 지도 달라지나?… 온난화 현상 원인 / [데스크 영상] 동물도 힘겨운 여름 나기 / ‘폭염 기승’ 가축 폐사 잇따라… 축산농가 ‘악전고투’ / 열 받은 타이어 ‘펑펑’… 주행 중 폭발사고 빈발 / 반투명 가림막에 ‘온실 된 재래시장’… 없느니만 못해 / 적조, 6년 만에 강원도 해역까지 위협…'태풍'이 해결사.
무려 열 두 꼭지다. 기사 제목을 보면 알겠지만 억지로 기사를 쪼갠 흔적이 있다. 강릉에 이틀째 ‘초열대야’가 왔다는 기사는 동쪽이 더 더운 이유와 한 꼭지로, ‘열사병’ 사망이 속출한다는 기사는 열사병 응급처치 기사와 한 꼭지로 묶을 수 있다. 전력수급 경보가 발령되고 폭염에 가축 폐사가 잇따르고 열 받은 타이어가 폭발한다는 것들도 묶을 수 있다. 그런데 굳이 이를 나눠 12꼭지나 내보냈다. <미디어오늘>이 8월19일 보도한 내용을 보면 MBC <뉴스데스크>는 8월 들어 폭염 뉴스만 64건을 내보냈다고 한다.
지난 16일의 MBC 뉴스를 보자 곤충과 동물에 대한 관심은 해산물과 식물로 확장된다.
바다 밑 들어가 보니… 해파리 차단망 ‘구멍 숭숭’ / 해파리 잡는 ‘로봇 부대’ 등장… 순식간에 흡입·분쇄 / ‘까다로운’ 해삼 양식, 항구 안에서? 제도개선 필요 / 얼마나 더우면…‘몽키 바나나’ 길에서 쑥쑥 / 안데스 고산지대 ‘아마란스’ 평창에서 대규모 재배.
3주 동안의 MBC 뉴스를 보면 자연과학이 꽃피웠다. 곤충과 동물에 이어 폭염, 그리고 해산물과 식물까지 두루 아우르며 우리를 둘러싼 기후와 식생에 대한 무한한 애정과 관심을 보여주었다. 8월 한 달 동안 MBC 뉴스는 ‘탐구생활 저널리즘’이라는 저널리즘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했다. 이 기간의 MBC 뉴스를 보면 마치 초등학교 어린이들의 방학 숙제와 일기를 보는 기분이 든다.
8월 4주 차에는 MBC 뉴스에 ‘신상’이 등장했다. 바로 성형뉴스다. 지난 23일, ‘여드름 그냥 두면 흉터… 심하면 우울증에 자살충동’이라는 보도로 예고편을 날린 뒤에 ‘나이 들수록 짙어지는 다크서클… 원인·예방법은?’ ‘치아 미백, 부작용 안 겪으려면?… 상처 난 입' 조심’ 꼭지를 연속으로 내보냈다. 그리고 미용과 소품에 대한 관심은 ‘배우 안 부러운 '소품'… 무대 완성도 높이는 활약’이라는 보도도 내보내게 만들었다.
MBC 뉴스의 ‘탐구생활 저널리즘’은 주로 금요일에 꽃 피운다. 8월2일, 9일, 16일, 23일 모두 금요일이었다. MBC 뉴스가 다음 금요일에 어떤 새로운 저널리즘을 보여줄지 궁금하다.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에 대한 국정조사도 이제 다 끝나서 긴장 좀 풀어도 될 것 같은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