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에도 상도가 있다. 성의 있게 해야 한다. 그것이 속아주는 사람에 대한 예의다. '저렇게 성의 있게 거짓말을 하는데 내가 좀 속아주자'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공들인 거짓말이 있다. '오죽했으면 그랬을까'하는 생각이 들게 만든다. 가장 나쁜 거짓말은 성의 없는 거짓말이다. 네가 믿던 말던 나는 이렇게 뱉을 테니 속으려면 속고 말라면 마라는 태도는 속는 사람을 두 번 죽이는 짓이다. 박근혜정부 시절 이런 상도에 어긋난 거짓말이 무척 잦았다.
주) 2013년 썼던 칼럼입니다.
유치원에 가서 노래와 함께 배우는 춤 중에 ‘머리 어깨 무릎 발’ 춤이 있다. ‘머리 어깨 무릎 발 무릎 발, 머리 어깨 무릎 발 무릎 발, 머리 어깨 발 무릎 발, 머리 어깨 눈 코 귀’, 이 가사에 맞춰서 손가락으로 해당 부위를 가리키며 추는 춤이다. 앞으로 이 노래의 가사를 ‘머리 어깨 엉덩이 허리’로 바꿔야 할 것 같다. 중년이 되어서도 엉덩이와 허리를 구분할 수 있도록 말이다.
청와대 대변인이었던 인물이 엉덩이와 허리도 구분하지 못해 말썽을 일으키고 있다. 대통령의 미국 순방을 수행하고 행사를 도운 주미 한국대사관 인턴직원을 성추행한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는 그는 ‘엉덩이를 움켜잡았다’는 표현과 ‘허리를 툭 쳤다’라는 표현을 헷갈리게 사용하고 있다. 청와대 조사를 받을 때는 ‘엉덩이를 움켜잡았다’고 했다가 언론 기자회견을 할 때는 ‘허리를 툭 쳤다’라고 했다.
엉덩이와 허리도 구분하지 못하는 이 중년의 사내는 문제가 커지자 ‘문화 차이’를 들먹였다. 그가 기자회견에서 했던 말이다. “좋은 시간 보내다가 나오면서 제가 여자 가이드의 허리를 툭 한차례 치면서 앞으로 잘해 미국에서 열심히 살고 성공해 이렇게 말을 하고 나온 게 전부였다. 돌이켜보건대 제가 미국의 문화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는 생각에 저는 깊이 반성하고 있다.”
이 중년의 사내가 대학 때 ‘TIME 연구반’에서 회장을 하며 영어공부에 몰입했다는 것과 KBS에서 국제부 기자로 일했다는 것과, 대한민국 외교사절의 일원으로 미국을 방문했다는 것을 제쳐두자. 언제부터 격려의 의미로 젊은 여성의 엉덩이를 움켜쥐는 것이 한국의 문화였나? 그리고 호텔 방에서 발가벗고 손님을 맞는 것이, 인턴 대학생에게 갑질 하는 것이 한국의 문화였나?
결정적으로, 이 문제에서 ‘문화 차이’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미국은 범죄 유무를 따질 때 문화 차이를 인정하지 않는 나라다. 모르면 죄다. 대한민국 외교사절이, 국제부 기자 출신이, 영어 강독반 출신이 모르면 죄다. 미국만이 아니다. 성추행·성폭행 피해 유무를 따질 때 역시 가해자의 문화는 중요하지 않다. 피해자가 중심이다. 그 중년의 사내가 알지 모르겠지만, 그것이 국제 표준이다.
좋다. ‘문화 차이’라고 하자. 그렇다면 이 정부에서는 거짓말로 변명하는 것이 문화인가? 청와대 대변인이었다는 자는 ‘성추행한 적 없다’고 했다가 본인이 진술서에 성추행 사실을 기술한 것이 들통났다. 홍보수석이라는 자는 ‘그를 빼돌린 적 없다’고 했지만 역시 국내 탈출을 도운 것이 확인되었다. 아직 밝혀지지 않은 거짓말이 하나 있다. 이들의 상사가 ‘보고받은 적 없다’고 하는데... 과연 사실일지?
이 아리송한 ‘문화 차이’ 정국의 화룡점점은 소위 말하는 ‘애국진영’의 패거리 문화다. 이들은 한 때 ‘보수 의병’으로 맹활약하던 이 중년의 남자를 주옥같은 논리로 옹호했다. 몇 개만 전해 본다.
“평소에 그런 일이 있을 때 도망가는 성격이 아니다. 그곳에는 경범죄로 처벌되어 있는데 이건 마치 성폭행해서 그 사람을 목졸라 죽이기라도 한 분위기다. 이게 미친 광기가 아니고 뭔가‘(우파 여성 논객)
“미시유에스에이(Missy UAS)의 친노종북 세력에게 당한 듯하다. 교묘하고 계획적으로 거짓선동 한판 벌였다”(우파 남성 논객)
“호텔에 같이 들어간 행위는 둘만의 시간을 허락한 의도가 분명하게 보인다. 강제적 성추행이 아니라는 긍정적인 신호다. 엉덩이 만진 그 사실을 입증할 만한 어떤 근거도 없다. 젖가슴도 아닌 겨우 엉덩이다”(우파 인터넷언론 편집위원)
안타까운 ‘문화 차이’는 이런 글에 열광하는 누리꾼들이 있다는 사실이다. 이들은 사건을 처음 인지하고 피해자와 함께 사건을 신고한 주미 한국문화원 직원의 신상정보를 파악해 실명과 사진, 출신 학교와 전공, 가족관계 등을 공개했다고 한다. 그리고 ‘반역자’ ‘국제 좌빨(좌익 빨갱이)’이라 부르며 비난하고 있다고 한다. 참 열심이다.
더 안타까운 ‘문화 차이’는 대통령의 사과 방식이다. 사과의 진정성 여부를 가늠하는 기준 중 하나는 무엇을 잘못했는지를 제대로 알고 있는지 여부다. 대통령은 이 중년의 남자 문제와 관련해 사과하면서 다시는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겠다고 하면서 공직기강을 강화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잘못한 것이 무엇인지 명확히 하지 않는다.
대통령의 사과를 요약하면 이렇다. ‘내 잘못이 아니고 그의 잘못이다. 나도 피해자다. 다시는 이런 피해를 입지 않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사건의 진정한 피해자는 국민이다. 그렇다면 국민이 피해를 입지 않을 방도를 마련해야 한다. 그 방도는 바로 대통령의 인사 스타일을 바꾸는 것이다. 불통 인사 밀봉 인사를 바꿔야 한다. 그 중년의 남자에 대해서 얼마나 많은 문제제기가 있었는지, 잘 기억해 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