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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재열 여행감독 Sep 26. 2021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과의 점심식사

점심 메뉴는 스테이크와 총각김치였다

세상에서 제일 불편했던 식사자리였다. 면전에서 '이 사람 왜 데려왔냐'라는 얘기를 들었다. '몸 둘 바를 몰랐다'는 말은 이런 상황에서 하는 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당황스러웠다. 평생 사람을 윗사람이 아닌 아랫사람만 대했던 사람 특유의 권위적인 태도로 그 자리의 사람을 탓했다. 다만 당사자지만 직접 아는 사이가 아닌 나에게는 단 한마디의 타박도 하지 않았다. 


그가 화를 낸 이유는 왜 약속도 없이 기자를 데리고 왔느냐 하는 것이었다. 자신을 기자를 만나지 않고 기자를 만나서 할 얘기도 없다는 것이었다. 세 가지 솔루션으로 겨우 진정시키고 점심식사를 함께 했다. 하나, 인터뷰하러 온 것이 아니니 '오프 더 레코드'로 하겠다. 둘, 기자가 아니라 여기 온 다른 청년들처럼 당신의 말씀을 들어보기 위해 왔다. 셋, 따님이신 김선정 대표와 잘 아는 사이다(이게 가장 중요했다). 


메뉴는 스테이크와 총각김치였다. 두 번 감탄했다. 총각김치가 맛있어서 감탄했고, 한 때 재벌은 망해도 베트남 골프장에서 이렇게 맛있는 총각김치를 스테이크 밑반찬으로 먹을 수 있구나, 하는 것에 또 감탄. 스테이크는 안심, 미디엄 정도의 익힘이었던 듯. 면전에서 타박을 받고 난 상황이었지만 맛있게 잘 먹었고 소화도 무난히 되었다. 그는 스테이크를 반만 먹었다. 


고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은 영민했다. 내가 만난 그 어떤 노인보다도 스마트했다. '나도 저 나이에 저렇게 기억력이 좋고, 저렇게 사리판단이 명확하고, 저렇게 합리적으로 내 의견을 펼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날카로웠다. 그의 비서들이 안쓰러웠다. 저렇게 날카로운 사람에게 얼마나 많이 베었을까 하는 생각에... 8개월 후 그가 공식 석상에 나타났다. 그래서 엠바고가 깨졌다는 판단에 나도 그와의 만남을 기사로 썼다(아래 글 참조). 



주) 2013년에 썼던 기사다


김우중 전 대우 회장이 14년 동안의 침묵을 깼다. ‘글로벌 YBM(영 비즈니스 매니저)’이라는 이름의 청년 기업가 육성 프로그램을 알리기 위해 언론 인터뷰를 시작했다. 1999년 10월 대우그룹이 해체된 지 14년 만의 공식 인터뷰다. ‘글로벌 YBM’은 그가 베트남에서 운영하는 기숙형 비즈니스 스쿨이다. 이 스쿨에 대한 소개를 빌미로 그는 활동을 재개했다.


기자는 8개월여 전 베트남 하노이 시 외곽의 한 골프장 클럽하우스에서 김 전 회장을 만난 적이 있다. 비보도를 전제로 했다. 베트남전 최후 특파원인 안병찬 전 언론인권재단 이사장이 소개한, 한국과 베트남에서 활동하는 젊은 사업가들을 만나는 점심식사 자리였다. 여기에 동석해 베트남과 한국의 경제 상황에 대한 그의 생각을 들었다. 그가 공식 활동을 재개했기에 당시 메모했던 이야기를 공개한다.


골프 바지에 셔츠를 받쳐 입고 편안한 단화를 신고 나타난 그는 그리 정정해 보이지 않았다. 백발에 핏기 없이 수척했고 허리가 구부정해서 나이보다 더 들어 보였다. 몇 번 수술을 받았는데, 한 달에 한 번씩 몸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국내에 들어와 검사를 받는다고 했다. 술은 안 마시지만 담배는 끊지 못했다는 그는 매일 새벽 골프장에 나가 무리가 가지 않도록 9홀만 돈다고 했다.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며 ‘세계경영’이라는 화두를 던졌던 그의 관심은 이제 아시아에 집중되어 있었다. 중국·캄보디아·라오스·말레이시아 등지를 한 달에 열흘 이상 돌아본다는 그는 “그 나라들이 어떻게 변해가는지가 궁금했다. 그래서 이곳저곳 찾아간다. 성장 잠재력이 큰 이 나라들은 우리에게 여전히 기회의 땅이다”라고 말했다.


아시아의 중요성을 강조한 그는 ‘김우중식 창조경제’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한국인들은 밖으로 나가야 기회가 생긴다며 “앞으로 100년 사는 시대가 열리는데 그중에 10년은 나가서 살아라. 한국 국민 중 200만 명 정도는 밖으로 나가야 한다. 처음에 50만 명이 나가면 가족·친구를 더 데리고 나가게 된다. 한국 사람들은 어디서든 적응을 잘한다. 나가서 현지 사정을 다 꿰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김 전 회장은 철두철미했다. 점심으로 나온 스테이크와 밥을 절반으로 나눠 반만 먹었다. 스테이크는 크기를 균일하게 잘라 이등병처럼 절도 있게 먹었다. ‘글로벌 YBM’을 스파르타식으로 운영하는 그는 군대식 문화를 선호했다. “우리 건설 회사들의 성공 비결은 군대 문화다. 군대를 다녀오면 조직 생활에 대한 적응 능력이 높아진다.”


몸은 골프장에서 요양 중이었지만 그의 머릿속은 여전히 현장에 있었다. 베트남 내부 사정에도 밝았다. 동행한 젊은 기업가들이 최근 일어난 베트남의 전 아시아상업은행(ACB) 은행장 구속 이야기를 꺼내자 그 사태의 배후와 정치적인 맥락까지 줄줄이 설명했다. 그러면서 “한국 기업들이 공산당 관료들과의 관계만 중시하는데 베트남에서는 권력만 바라보면 안 된다. 평판이 더 중요하다. 여기서 번 것의 50%는 주고 갈 생각을 해야 한다. 그래야 오래간다”라고 충고했다.


대우그룹 해체 후 주로 베트남에 머무른 그는 베트남의 잠재력을 높이 평가했다. “베트남 사람들은 머리가 좋고 부지런하다. 이들이 제대로 사회주의를 경험한 건 몇 년 안 된다. 1975년에 베트남전이 끝났는데 1986년에 도이머이(개혁개방) 정책이 시작되었다. 베트남인은 자존심이 강한 민족이다. 공기업 민영화를 하더라도 한국 기업에 주지는 않을 것이다. 베트남 출신 미국 동포에게 줄 확률이 훨씬 높다. 한국 기업들이 헛물켜지 말아야 한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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