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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재열 여행감독 Sep 24. 2021

세월호에 책4만 권을 실어 보냈던 사연

2013년 강정십만대권프로젝트의 시작과 중간과 끝

가수 이은미씨의 선상 공연 모습


그 배가 세월호였다. 나중에 알고서 충격을 받았다. '우리가 온 정성을 모아 강정마을에 책 4만 권을 실어 보냈던 배가 세월호라니...' 가슴이 먹먹했다. 우리가 밤새 축제를 즐기며 기쁜 마음으로 책을 나른 배가 세월호라니, 믿어지지가 않았다. 그래서 한동안 이 사진을 보지 못했다. 사진을 볼 때마다 형용할 수 없는 슬픔이 밀려왔다. 


엊그제 경기아트센터 '김민기 트리뷰트 콘서트'에서 가수 이은미씨의 공연을 보고 그의 선상 무대를 떠올렸다. 언제나처럼 '맨발의 디바'로 열창해 주었다. 강정은 좌파마을도 우파마을도 아닌 평화의 마을이라는 것을 환기하기 위해 시작된 '강정 책마을 만들기'를 위해 지인들과 '강정 십만대권 프로젝트'를 조직했다. 목표했던 10만 권은 모으지 못했지만 4만 권의 책을 컨테이너에 실어 세월호에 올랐었다. 


이 글은 이 프로젝트의 마지막 8부 능선을 넘을 때의 기록이다(2013년). 당시 책을 옮기기 위해서 배를 통째로 빌리려고 했는데 총비용 3000만 원에서 1000만 원이 모자란 상황이었다. 마지막 1000만 원을 모금하며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썼던 글이다. 8년 만에 '올레를 책칠하자' 프로젝트를 위해 다시 제주에 책을 싣고 간다고 생각하니 만감이 교차한다.  


강정마을에 전달할 책을 실었던 컨테이너


그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그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강정마을을 세계적인 책마을로 만들자는 문인들의 ‘강정 평화 책마을’을 돕기 위해 십만 권의 책을 모아서 보내주자는 ‘십만대권 프로젝트’를 제안을 했을 때, 그리고 그 제안이 받아들여져 실행되었을 때, 오직 10만 권의 책이 제주항을 통해 강정마을로 전해지는 것만 상상했다. 십만 권의 책이 마중물이 되어 절망의 강을 희망의 바다로 바꿔줄 것이라고 확신했다.


5개월여의 대장정을 마무리하는 시점에 이르러... 우리는 여전히 미약하다. 책은 10만 권이 아니라 3분의 1 정도인 3만5천 권 정도만 모였다. 모은 책을 강정마을로 옮기는 ‘바다택배’를 위해 3000만 원의 거액을 주고 빌린 배를 채우기 위해서는 최소 300명이 참여해야 하는데 100여 명 정도만 신청했다. 그래서 걷힌 돈도 1000여 만원 남짓으로, 필요한 금액의 3분의 1에 불과하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3000만 원의 계약자는 모임의 좌장 격인, YTN 해직기자 노종면 기자다. 미약한 우리는 당장 중도금부터 감당해내지 못했다. 노종면 기자가 부족한 금액을 조용히 감당했다. 배가 출발하기 위해서는 아직도 1000만 원 이상의 돈이 더 필요하다. 부족한 금액을 나눠서 감당할 ‘결사대’를 황급히 조직했다. 지금 우리에게는 배가 뜨느냐 마느냐, 자체가 관건이다. 


노종면 당시 해직기자의 선상 강연


처음 이 프로젝트를 제안할 때 염두한 것은 ‘그러다 말겠지’하는 체념을 극복하는 것이었다. 일본 원폭 피해마을 주민을 그린 만화 <저녁뜸의 거리>에 이런 대사가 나온다. “사람들은 그냥 우리가 조용히 죽어주었으면 하고 바라는 것 같아”... 강정마을에 대한 우리의 정서도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해군기지에 찬성하든 반대하든, 사람들은 이제 강정마을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 것 자체를 지겨워한다. '지겹지도 않냐, 이제 그만 떠들어라'라는 비난과 ‘억울한 줄은 알겠지만, 이젠 어쩔 수 없는 것 아닌가’하는 체념 사이에서 망각을 기원했다.


해군기지가 들어서든 아니든 사람들은 거기서 계속 살아야 한다. 계속 이어져야 할 그들의 삶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우리는 절대로 강정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강정마을을 세계 7대 해군기지가 아니라 세계 7대 책마을로 바꾸는 것은 해군기지를 극복하는 길이고, 해군기지 찬반을 놓고 갈라진 마을을 다시 봉합하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세월호 가판이다. 여기서 기다리게만 했더라도... 특히 이 사진을 볼 때 마음이 아프다.


그런데 프로젝트가 시작하자 거대한 벽을 만났다. 진행 과정에서 '슬픈 강정'을 온몸으로 느꼈다. '강정'이라는 말 자체에 부담을 느끼는 사람이나 단체가 의외로 많았다. ‘책 모으는 건 좋은 일이지, 하지만 강정으로 얽히긴 싫어’ ‘강정에 대한 것은 저희 단체 입장에서는 좀 부담스럽습니다’... 강정이 우리 사회의 ‘금기어’가 되어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과정이었다. 사람들에게 강정은 ‘관여하지 말아야 할 어떤 것’이 되어있었다.


‘강정에 대한 것’이라는 이유로 핑계는 충분했다. 책을 나누지 않고 계속 소유하는 것이 보수가 아니듯, 책을 기증하고 나누는 것도 진보가 아닐 것이다. 책을 모으고 책마을을 조성해 해군기지 문제로 야기된 분열과 반목을 해소하자는 것인데, 사람들은 피하기 바빴다. 상처를 극복하는 시간으로 기대했던 프로젝트 진행 기간은 상처를 확인하는 시간에 머물러 있었다.


강정을 잊고 싶어 하는 3분의 1과 피하고 싶어 하는 3분의 1이 빠져나간 만큼 책이 덜 모이고 돈이 덜 걷혔다. 방법은 남은 이들이 세 배 더 힘을 내는 수밖에 없었다. 모은 책을 나르는 것만으로도 버거운데 ‘십만대권 프로젝트’의 선봉대는 이참에 컨테이너 도서관까지 만들겠다며 준비 중이다. 대책이 없을 때는 더 판을 키우는 것이 대책이 되는 것일까? 이들은 아직 꿈을 3분의 1로 줄이지 않았다.


 

강정마을에 전달된 책 컨테이너다


다시 이 프로젝트의 두 가지 숙제를 생각한다. 강정에 대한 체념을 극복하고, 강정에 대한 외면을 막아낸다는, 모아서 전달하는 과정에서 풀어내려고 했던 이 숙제가 결과물로 해결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책이 강정마을에 전달되면 비로소 사람들은 주목할 것이다. 그리고 알게 될 것이다. 누군가 강정을 잊지 않았고, 강정을 고민하고 있다는 것을... 그렇다면 새로운 꿈을 꿀 수도 있지 않을까?


‘십만대권 프로젝트’의 마지막 채색을 고민해야 할 지금, 새로운 스케치를 끄적여본다. 그 그림은 이렇다. ‘강정평화책마을’로 전국에서 직접 책을 보내준다. 책마을 조성을 위한 후원금을 보내준다. ‘평화책방 2호점, 3호점, 4호점’을 지어준다. 그래서 구럼비를 잃은 강정을 사람들이 다시 찾아 구럼비에 대한 책을 읽는 모습을 꿈꾼다. 이 꿈, 모두가 함께 꾸어볼 만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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