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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재열 여행감독 Sep 24. 2021

한강에 싸구려 자전거를 타고 나갔다 당했던 봉변

복수를 해야 하는데 브롬튼은 바퀴가 작아 안습이다

 


예전에 한강변에서 자전거를 타다 봉변을 당했던 적이 있다. 자전거 튜브를 교체하러 한강에 나와있는 임시 노점에 자전거를 끌고 가는데 통로에 세워놓은 자전거를 건드려서 살짝 넘어졌다(자전거를 불안하게 세워두었다). 그러자 자전거 주인이 달려와서 거듭 머리를 조아리며 사과를 하는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이 자전거가 얼마짜리인 줄 아느냐? 당신 자전거 팔아봤자 이 자전거 보조핸들도 못 산다고!”


정말 막장드라마의 대사에나 나올 말을 직접 들으니 감회가 남달랐다. 백만 원 이하의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은 그런 분들 방해되지 않게 밤에 자전거를 타야 할까? ‘그렇게 자전거에 벌벌 떨 것이면 자전거를 타고 다닐 게 아니라 벽에 걸어두고 볼 것이지 왜 타고 나와서 다른 사람 피곤하게 하느냐’는 말이 목까지 올라왔지만 삼켰다. 그런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에게서 되돌아올 말은 뻔했다.


그가 무시한 내 자전거에 대해 위경용 선생님은 ‘제법 탈만하다’라고 평가했었다. 불과 일주일 전이었다. 위 선생님은 동경올림픽에 국가대표 사이클 선수로 출전하고, 사우디아라비아 국가대표 사이클팀 감독을 8년 동안 역임하고, 30년 넘게 사이클 심판으로 일했던 분이다. 지금은 가평에서 자전거 수리점을 하고 있는데 북한강 자전거길을 달리는 라이더들이 일부러 들러서 찾아뵙는 분이다.


자전거에 대한 철학의 차이일까? 비싼 자전거를 사려고 핑계를 찾고 있던 나에게 브레이크를 거시며 위 선생님은 자전거 이곳저곳을 세심히 만져주며 자전거 타는 자세 등에 대해서 꼼꼼히 알려 주셨다. 그런데 사이클 선수 코스프레를 한 배 나온 아저씨가 그 자전거를 모독하며 고물 취급을 했던 것이다.





이런 내용을 페이스북에 올렸더니 반응이 폭발적이었다. 내가 머쓱할 정도로 함께 울분을 토하는 분들이 많았다. 레포츠족들의 지나친 ‘장비주의’를 개탄하는 댓글들이 주로 올라왔다. 이런 내용이었다. ‘비싼 자전거를 탄 사람은 자신들이 주인인 것처럼 위세를 떤다’ ‘한강에서 자전거 타면서 사이클 선수처럼 차려입는다’ 등의 글이 올라오더니 캠핑족과 등산족에게까지 불똥이 튀었다. ‘캠핑장에 가면 거의 집을 한 채 짓는다’ ‘동네 뒷산에 올라갈 때 히말라야에 올라갈 것처럼 차려입는다’ 등의 글이 올라왔다.


레포츠족들의 과시 성향을 비꼰 것이겠지만 이런 말들은 조금 불편했다. 남의 취미생활에 왈가왈부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레포츠를 하면서 무엇을 살까,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보여줄까 하는 보여주기에만 집착하는 것도 병이겠지만 남이 입는 것 사는 것 하는 것에 불편해하는 것도 마찬가지로 감정의 과잉이다. 괜히 남을 상관하면서 스스로 스트레스를 받는 것도 이상하다.


장비는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지만 취미생활을 하다 보면 ‘장비주의’에 빠지곤 한다. 차를 즐기다 차보다 다기 자체에 빠지기도 하고, 음악을 듣다가 음악보다 스피커 성능에 집착하기도 한다. 어떤 취미든, 어느 나라 사람이든 빠지곤 하는 취미의 샛길이다. 그걸 가지고 유치원생처럼 으스대고 자랑하면 비웃어줄 수도 있겠지만 그런 것에 집착하는 것 자체를 뭐라고 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나와 상관없는 남의 행동에 내 기분이 좌우되는 것도 우스운 일이다.




자전거를 타다 빨리 타고 싶고 멀리 타고 싶으면 좋은 자전거를 탐할 수밖에 없다. 특히 나이가 든 사람에게 장비란 계단 대신 이용할 수 있는 에스컬레이터와 같은 것이다. 또 실제로 필요한 경우도 많다. 남들 눈에는 우습게 보여도 자전거를 오래 타면 엉덩이와 가랑이가 아프기 때문에 패드가 들어간 쫄바지를 입을 수밖에 없다. 물놀이를 가는데 혹은 산행을 하는데 필요해서 캠핑을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캠핑 자체가 목적인 사람들도 있다. 텐트를 치고 장비를 세팅하면서 기분이 좋아지는 사람도 있는 것이다.


뒷산 올라가는 사람과 히말라야 올라가는 사람의 구분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뒷산 오르던 사람이 히말라야도 가게 마련이다. 히말라야 트래킹 코스를 걸어보면 ‘자유시간’ ‘초코파이’ 포장지를 흔히 발견할 수 있다. 롯지마다 한국인들이 성황인 것이 지리산이나 설악산을 방불케 한다. 그리고 뒷산이든 히말라야 트레킹이든 장비는 가능한 한 갖추고 오르는 것이 안전하다.





레포츠를 직접 해보면 고가의 장비나 그 장비를 살 수 있는 재력보다 젊음과 젊음의 열정이 부럽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빌린 자전거로도 먼 길을 내달릴 수 있고, 부족한 장비로 캠핑을 왔어도 옆 사람에게 스스럼없이 얻어가고 빌려갈 수 있는 자신감, 그리고 청바지에 운동화 차림으로도 거뜬히 산 정상까지 올라가는 젊음의 에너지가 부럽다. 고가의 장비는 주름 제거 수술에 불과하다.


자기 자신의 몸과 정신을 새롭게 만나는 것이 레포츠다. 고가의 장비를 산 것으로 만족하면, 그건 그 사람 수준이 거기까지인 것이 놔둘 일이다. 남이 무슨 상관인가. 남에게 보여주는 것도 의미 없고 남을 의식하는 것도 의미 없다. 보여주기 식 사회에서 얼마나 많은 스트레스를 받고 얼마나 많은 상처를 받았나, 레포츠를 즐기는 순간만이라도 벗어나야 하지 않을까? 레포츠를 즐길 때는 그냥 나만 바라보자. 욕하지도, 부러워하지도 말고.


암튼 그래서 자칭 ‘<월간 과소비> 편집장으로서, 직장 생활 20년 종지부 선물로, 얼마  브롬튼을 질렀다. 이걸 타고 한강을 달리며 그때  자전거를 타박했던 사람을 복수해줄 참이다. 그런데 브롬튼은 바퀴가 작아서 안습이다. 씽씽 나가는 다른 자전거를 보면 뭔가 발버둥만 치는 느낌이다. 바퀴 크고 얇은 녀석으로 갈아탈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브롬튼까지   걸렸으니 바퀴 크고 얇은 녀석까지도   년은 걸릴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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