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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재열 여행감독 Sep 22. 2021

바쁜 현대 도시인을 위한  '캠핑3멍'

불멍물멍섬멍,이 셋을 가히 '캠핑3멍'이라할만하다


자고로 캠핑엔 3멍이 있다. 불멍 컵멍 물멍. 불멍은 화톳불 앞에서 멍하니 불을 보는 것이다. 컵멍은 캠핑하고 일어나서 커피 한 잔을 하면서 고요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다.  물멍은 캠핑을 마치고 집에 와서 샤워하면서 캠핑을 복기하는 것이다. 이 3멍 안에 캠핑의 모든 가치가 녹아 있다. 


캠핑 초기에는 텐트를 치고 사이트를 구축하고 이것저것 장비를 세팅하는 것이 재밌다. 그런 다음 바비큐 등 이것저것 음식을 준비하고 사람들과 나누는 재미에 빠져든다. 그런데 이런 거 저런 거 다 하고 나면 그런 것 다 내려놓고 홀로 ‘멍 때리는' 시간을 즐기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불멍 컵멍 물멍은 캠핑의 아이러니다. 캠핑은 뭔가를 하기 위해서 가는 것인데, 그 뭔가를 하는 것은 뭔가를 안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는 것이 캠핑의 역설이다. 캠핑은 도시생활의 대척점에 있는 행위다. 바쁜 도시에서의 일상으로부터 탈출해 캠핑을 가는 것은 단순히 전원생활을 체험하는 것뿐만 아니라 도시의 분주함과 다른 여유를 맛보기 위해서다. 그래서 이런 ‘멍 때리는' 시간이 더 좋아지는 것이다. 


여행을 기획할 때 가장 참고하는 기획자가 <1박2일> <꽃보다 할배/청춘/누나> <삼시세끼> <윤스테이>를 연출한 나영석PD다. 바쁜 현대 도시인들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를 가장 잘 분석하고 있기 때문이다. 바쁜 현대 도시인을 욕망을 알고 나면 프로그램 기획은 간결해진다. 연예인들이 대신해서 그걸 하면 된다. 


친구들과 홀연히 어디론가 떠나는 로망을 실현해준 것이 <꽃보다 청춘>이고, 나도 조용한 곳에서 게스트하우스나 하면서 늙고 싶다는 바람을 구현해준 것이 <스페인 하숙>이고, 한옥에서 잠만 자는데 제대로 된 대접을 받아보고 싶다는 욕망을 채워준 것이 <윤스테이>다. 나영석을 보면 여행의 미래가 보인다.  



아래 내용은 2014년 <삼시세끼>가 처음 시작할 때 쓴 글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고 읽으시길~ 


캠퍼들이 특히 공감하는 프로그램이 있다. tvN의 <삼시세끼>다. 캠핑을 가면 ‘어떻게 하면 배를 채울까' ‘어떻게 하면 춥지 않게 잘 수 있을까' 하는 원초적인 먹고사니즘을 고민하게 되는데 이 프로그램 출연자의 고민이 바로 이런 것들이다. 밥 먹기 위해 쌀 씻고 불 피우고 채소 따와서 식사 준비하고 먹고 치우고, 다음 끼니로 무엇을 먹을 건지 고민하고, 방구들 데우려고 불 피우고 나면 하루가 가고 몸은 노곤해진다. 


<삼시세끼>는 정체가 모호하다. 시골에 가서 유기농 농산물을 먹기는 먹는데 웰빙도 아닌 것이 힐링도 아닌 것이 농활도 아닌 것이, 정체성이 없다. 뭐가 몸에 좋고 무엇이 우리를 치유하는지에 대한 얘기도 없다. 그냥 하루 세 끼 밥 때우기에 급급하다. 그렇다고 흔한 먹방 하고도 다르다. 간혹 기대 이상의 맛을 경험하기도 하지만 대체로 ‘먹어줄 만하다'는 표정이다. 출연자들도 살짝 건성이다. 씨앗을 싹터오라고 하면 매니저나 어머니에게 떠넘긴다. 


그런데도 시청률은 높다. 케이블TV  프로그램 중에서는 가장 높다. 이 프로그램의 인기는 단순히 프로그램의 장치로만은 설명이 불가능하다. 사회적 배경을 읽어낼 필요가 있다. 사회적 멘붕(멘탈붕괴) 이후 새로운 사회 코드로 ‘멍 때리기’가 부상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지난 총선과 대선 지방선거를 거치면서 좌우 갈등이 극한을 달렸고 여기에 세월호 참사까지 겹쳐서 사회적 피로가 쌓였다. 지금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허니버터칩'처럼 달콤한 위로를 주는 것이나 <삼시세끼>처럼 그냥 멍하니 볼 수 있는 편안한 프로그램이다. ‘피로사회'와 ‘강박사회'로부터 잠시나마 탈출하고 싶은 것이다. 지금은 ‘재테크'나 ‘시테크'가 아니라  ‘멍테크'가 필요한 시기다.  


멍을 권하는 모습이 곳곳에서 보인다. 2014년 10월27일 서울광장에서는 ‘멍 때리기 대회'가 있었다. 가장 멍한 표정으로 있는 사람이 이기는 대회인데 9살 소녀가 우승했다. 소녀를 대회에 참가시킨 이유에 대해 엄마는 "학원 선생님 말이 아이가 수업시간에 멍한 상태로 있다고 한다. 아이를 혼내다가 대회 소식을 듣고 나왔다"라고 말했다. 이제 멍 때리는 것은 혼낼 일이 아니라 경쟁력이다. 어른을 위한 색칠놀이라 할 수 있는 ‘컬러링북'은 멍을 위한 수련 도구로 인기가 높다. 


다시 <삼시세끼> 얘기로 돌아와서, 이 프로그램의 결정적 장면 중 하나는 이것이었다. 힘들게 첫날 저녁밥을 해 먹고 방바닥에 누운 이서진이 반대쪽에 누운 옥택연에게 이런 말을 한다. “우리 이거 왜 하는 거냐? 뭐 하는 거야 지금. 이런 걸 사람들이 왜 보냐? 이 프로 망했다야”라고 하면서 헛웃음을 터뜨릴 때다. 시청자들은 ‘우린 이걸 왜 보는 거지?’하면서 빨려 든다. 아예 기대치를 낮춰서 ‘뭐 별일 있겠어?’하면서도 챙겨본다.  


다른 프로그램이 시청률을 올리기 위해 끝없이 무언가를 하며 발버둥 칠 때 <삼시세끼>는 조용히 출연자들을 숙성시킨다. 밭에서 묵묵히 채소들이 자라듯이 출연자들도 자연의 일부로 점차 동화된다. 우리가 떠나온 자연으로부터 다시 침잠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삼시세끼>는 나름 성장형 오락프로그램이다. 


멍 때리기는 말줄임표다. ‘목적 없음'을 목적으로 한다. 그런데 그 목적 없는 행위를 통해 사람들은 ‘생산성 없음'의 생산성을 두루 경험하게 된다. 지금 우리 사회에는 이런 말줄임표가 필요하다. 지금은 우리가 멍 때려야 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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