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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재열 여행감독 Sep 27. 2021

일본인들에게 이수만 박진영 양현석을 설명한 방식

오다 노부나가와 도요토미 히데요시 그리고 도쿠가와 이에야스에 비교했다

10여 년 전에 <꾸리에 재팬>이라는 일본 매체로부터 'SM 이수만, JYP 박진영, YG 양현석의 리더십 비교를 통해 본 한국 아이돌 가수의 성공 비결'에 대해 써달라는 청탁을 받았다. 물론 엔터테인먼트 산업에 대한 조예가 별로 없었기 때문에 거듭 거절했지만 <꾸리에 재팬>의 기자가 한국에 아는 기자가 별로 없다며, 거듭 부탁해서 어쩔 수 없어 썼던 적이 있다. 


그때 이수만, 박진영, 양현석을 각각 오다 노부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 도쿠가와 이에야스에 빗대어 설명했다. 좀 억지스러운 부분이 없지 않았지만 얼추 캐릭터가 비슷한 점이 있었다. 이수만은 오다처럼 엄했고, 박진영은 도요토미처럼 영악했고, 양현석은 도쿠가와처럼 때를 기다릴 줄 알았다. 아래는 그때 썼던 내용이다. 



2000년대 초반 드라마 한류에 이어 아이돌 스타를 통한 신한류가 일본에서 일고 있다. 일본 아줌마 팬들의 로망과 향수에 기댔던 한류가 이제 10대 소년 소녀의 마음까지 훔치고 있다. 모두가 알다시피 한국의 대중문화는 일본 대중문화 영향을 많이 받았다. 그런데 이제 일본 대중문화의 중심부를 파고들고 있다. 마치 소니와 파나소닉을 모방했던 삼성전자가 이들을 앞질렀듯이 말이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일단 역사적 기원을 들 수 있다. 일본이 한국을 식민 통치할 때도 대중문화에서는 한국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일본 동경대학 문화인류학자들이 연구한 결과를 보면 일제강점기에도 ‘예능인으로서의 조선인’에 대한 연구가 많았고, 만주로 이주한 조선인들이 애달픈 심정을 담은 노래가 ‘엔카’의 원류가 되었다는 분석도 나왔다.   


문화적으로 한국과 일본을 비교하면 섬나라 일본은 특수성이 강한 곳이고 반도 국가 한국은 보편성이 강한 곳이라 할 수 있다. 한국인은 자신들을 ‘배달민족’이라고 자처한다. 근대화 이전까지 문화는 인도와 중국에서 한국을 거쳐 일본으로 전달되었다. 특수한 문화는 국경을 넘을 때 높은 문화 할인율 때문에 낙차가 크게 나타나지만 보편적인 문화는 국경을 넘어도 큰 상관이 없다.  


결정적으로 대중음악 시장의 크기가 다르다. 일본 대중음악 시장은 한국의 25배에 달한다. 이것은 일본과 한국의 경제규모 차이를 능가하는 것으로 일본 대중음악이 굳이 해외로 눈을 돌리지 않는 이유이며, 한국 대중음악이 끝없이 해외시장 진출을 꾀하는 이유다. 일본에서는 한 세대에서만 인기가 있어도 큰 이익을 얻을 수 있지만 한국은 ‘국민가수’가 되어도 수익이 많지 않다. 한국 가수 일본 진출에 성공하는 것은 ‘대박’을 의미하지만 그 역은 ‘손실’을 의미한다.   



흥미로운 사실은 아이돌 그룹을 준비하는 연습생들도 이런 현실을 잘 알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연습생 시절부터 외국어 공부를 열심히 한다. SM엔터테인먼트에서 만났던 한 연습생은 춤 노래 연기를 익히는 것만 해도 힘들 텐데 외국어까지 공부할 여력이 있느냐는 질문에 “한국시장은 좁잖아요”라고 짧고 굵게 답했다. 일본에서 아이돌 그룹을 준비하는 연습생 중에 해외 진출에 대한 이런 그림이 있을까?  


이런 이유로 한국 가수들은 일본 시장을 욕망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어떻게 성공할 수 있었을까? 1차 한류는 드라마를 통해 이뤄졌다. 일본 대중문화가 10대와 20대에 주목할 때 상대적으로 소외되어 있던 주부 계층에 어필했다. 일종의 ‘틈새시장’을 공략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에 반해 최근 아이돌 그룹은 10대~20대 주류시장에 통했다. 어떻게 가능했을까?  


일단 한국 아이돌 스타가 등장하기 전 연습생 시절을 살펴보자. 한국사회는 어떤 분야건 엘리트를 육성하는 방식을 선호한다. 생활 스포츠는 후진적이지만 엘리트 스포츠가 발달했듯이 연예산업에서도 엘리트 예능이 발달해 있다. 각 기획사는 오디션을 통해 연습생을 선발한다. 더 나은 연습생을 선발하기 위해 이들은 종종 국내외 방송사와 합작 오디션을 하기도 한다.  


오디션을 할 때 춤 노래 실력과 함께 중요한 판단 기준 중 하나는 계약관계다. 웬만큼 끼가 있는 아이들은 이미 연예기획사와 계약관계를 맺고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카라를 키워 낸 DSP미디어의 한 이사는 “늦게 발굴하면 대부분 다른 기획사들과 계약이 되어 있어서 키워 줄 수가 없다. 아무런 계약이 없는 ‘예능 꿈나무’를 조기 발굴해서 키워야 온전히 기획사 수익이 된다”라고 말했다.  


어렵게 연습생이 되었다고 해서 출세가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치열한 경쟁이 기다리고 있다. 재능이 있는 사람은 많다. 열심히 하는 사람도 많다. 그러나 재능이 있고 열심히 하고 심지어 거대 기획사에 속해 있다고 해서 모두가 스타가 되는 것은 아니다. 이들은 꾸준한 내부 경쟁을 통해 새로운 팀이 결성될 때 데뷔할 기회를 얻는다, 


연습생 시절 동안 이들은 ‘인기 기계’로 키워진다. 대중 연예인은 실력만큼 중요한 것이 인기를 얻을 수 있는 매력을 갖추는 것이기 때문이다. 박진영 대표는 “연습생들이 대중성을 익히게 만든다. 음악을 들어도 히트한 음악을 듣게 만든다”라고 말했다. 스타로 태어나지는 않지만 스타로 키워진다. 가혹하게. 그런 뒤 데뷔 기회를 얻는다.  



데뷔 모형은 기획사마다 조금 다르다. 한국의 3대 기획사 SM JYP YG의 스타일을  거칠게 비교하면 이렇다. 1) SM엔터테인먼트가 일본 대중음악시장을 모방해 한국형 아이돌 모형을 만든다. 2) JYP엔터테인먼트가 SM의 대항마가 될 아이돌을 만든다. 3) YG가 이런 현상을 참고해 자기만의 아이돌 모형을 만든다.  


이런 특성을 기획사 대표를 만나서 확인할 수 있었다. SM엔터테인먼트의 이수만 회장과 JYP엔터테인먼트 박진영 대표 그리고 YG엔터테인먼트 양현석 대표 등을 만나 각각 인터뷰한 적이 있다. 이들을 만나고 나서 내린 결론인데, SM은 일본에서 배워서 중국을 공략하는 모형이었고, JYP는 SM을 참고해 미국 시장을 공략하는 모형, 그리고 YG는 자기만의 모형으로 소화해 ‘가늘고 길게’ 가는 모형이었다.  


이런 리더십의 차이는 오다 노부나가-도요토미 히데요시-도쿠가와 이에야스의 리더십과도 비슷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두견새의 이야기가 있지요. 노부나가는 두견새가 울지 않으면 죽이고, 히데요시는 울게 만들고, 이에야스는 울 때까지 기다린다고 하는데, 세 명의 기획자 스타일과 얼추 들어맞는다.    


먼저 SM엔터테인먼트 방식을 들여다보자. SM 이수만 회장의 소신은 ‘중국이 미국 된다’라는 것이었다. 중국 경제가 커지면서 중국 대중음악 시장도 커질 것이므로 굳이 미국 시장 진출을 위해서 고생할 필요가 없다는 판단이었다. 그러나 중국 대중음악 시장이 여전히 저작권 보호가 안 되고 해적판이 판을 치면서 수입이 확실한 일본에 치중하게 만들었다. 중국이든 일본이든 이수만 회장은 연습생들에게 ‘아시아적으로 사고하라’라고 주문한다.   


매년 여름 SM의 연습생들은 합숙훈련을 한다. 외국어 능력을 중시하는 이수만 회장은 직접 중국어를 가르친다. 그는 직접 만든 교재로 실전에서 바로 써먹을 수 있는 ‘서바이벌 중국어’를 가르친다. 물론 발음은 본토 강사가 교정해준다. 이 회장은 “현지 연수를 선호 했는데, 일본에 다녀오면 아이들이 스타일이 더 세련되어서 오는데 중국에 다녀오면 그 반대다. 그래서 여기서 가르친다”라고 말했다.  


연습생들로 아이돌 그룹을 만들 때 가장 중요시하는 것은 ‘조합’이다. 일반 사람들이 보기에 걸그룹은 비슷비슷한 외모와 분위기의 여성들을 모아놓은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실제로는 ‘공통점’보다 ‘차이점’이 중요하다. 그룹의 이미지를 좌우하는 ‘에이스(윤아)’, 음악성을 책임지는 ‘보컬(태연)’ 그리고 맑고 순수한 이미지로 호감도를 높이는 ‘막내(서현)’로 구색을 맞춰야 대중으로부터 인기를 끌 수 있다.    


다른 멤버들도 나름의 주특기가 있어야 한다. 대부분 오랜 연습 기간을 거쳤기 때문에 걸그룹 멤버들은 자신만의 특기를 가지고 있다. 춤꾼으로 래퍼로 실력을 기르고, 하다못해 성대모사라도 익혀서 자신들에 대한 호감도를 높인다. 이전에는 아저씨 팬들을 의식해 섹시한 이미지의 멤버를 중용했으나 요즘은 소녀팬이 늘면서 중성적 이미지의 멤버를 포함시키기도 하다.  



이런 SM 이수만 회장을 JYP 박진영 대표는 스승이자 반면교사로 삼았다. SM이 일본을 참고할 때 그는 이수만을 참고했다. 그는 “음반 기획자로 나서면서 SM을 집중적으로 벤치마킹했다. 가내수공업 상태였던 음반 산업을 기업화해 ‘산업 혁명’을 이룬 경영 방식, 철저하게 기획된 가수를 내보내 성공 확률을 높이고, 팬덤 현상(팬클럽의 조직적인 움직임)으로부터 부가 가치를 이끌어내고 다양한 비즈니스 모델을 개발하는 것 등 배울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라고 회고했다.


그러나 SM을 벤치마킹하며 박씨는 SM의 맹점을 파악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노회한 히데요시처럼 말이다. 문어발식 확장으로 덩지가 너무 커진 SM은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핵심인 유연성을 잃고 있었다. 유연성이 떨어지면서 시장의 변화를 효과적으로 반영하지 못했다고 보았다. 특히 뉴미디어 감수성이 뛰어났다. 새로운 미디어가 등장하면 기존 미디어와 경쟁한다는 사실을 간파하고 뉴미디어에 베팅했다.  


박진영은 신인을 데뷔시킬 때 외국 가수보다 국내 가수를 더 많이 참고한다. 이미 스타덤에 오른 가수가 많기 때문에 그들의 빈자리만 채워도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월드스타 비는 바로 그런 전략에서 탄생한 가수였다. 미국 시민권 문제가 불거지면서 유승준의 활동이 중단되자 그는 ‘춤 잘 추는 남성 솔로 가수 시장’의 빈자리를 노리고 비를 내보내 효과적으로 데뷔시켰다. 비는 유승준과 마찬가지로 마초적인 이미지와 꽃미남 이미지를 반반씩 가지고 있었는데, 유승준의 CF까지 그대로 승계했다.  


댄스가수 출신인 박진영은 ‘마무리 작업’이 정교하기로 소문나 있다. JYP 소속 가수들은 모두 2년 이상 박 대표로부터 집중 교육을 받은 후에야 데뷔할 기회를 얻는다. 이런 성공의 경험으로 박 대표는 자신감이 충만했다. SM을 이길 수 있겠느냐는 질문에 박진영 대표는 “예전에는 스타가 되려는 아이들이 SM을 찾아갔다. 그러나 지금은 JYP에 먼저 온다”라고 대답했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형, 인내형 리더인 YG엔터테인먼트의 양현석은 기다림의 미덕을 보여준다. 가수들에게 혹독한 그가 쓰는 방법은 철저한 무관심이다. ‘나에게 인정받으려면 아부 떨지 말고 실력으로 보여주라’고 무언의 암시를 보낸다. 그러면서 ‘이 바닥이 만만해 보여도 열심히 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곳이다’라는 것을 주입시킨다. 


양현석 대표는 “가수로서 카리스마를 가지도록 신경 쓴다. 아이돌 스타의 문제점은 바로 ‘아이들 스타’라는 점이다. 빅마마나 휘성은 아이돌 스타가 아니지만 아이돌 스타인 세븐보다 음반이 많이 나간다. 무엇을 말하는 건가? 이제 아이들 코 묻은 돈 노리고 음반 만드는 시기는 지났다”라고 말했다.  


‘오다가 솥을 만들고 도요토미가 지은 밥을 도쿠가와가 먹었네’라는 일본 속담이 있다. YG는 이수만 회장이 일궈놓은 일본 시장과 박진영 대표가 개척한 미국 시장을 무혈입성하고 있다. 빅뱅의 일본 내 인기와 2NE1의 영미권 인기는 동방신기가 개척해 놓고 원더걸스가 일궈낸 한류팬을 끌어들인 덕으로 볼 수 있다.  


최근 그런 양상을 유튜브 조회수로 확인할 수 있다. 최근 유튜브 측의 협조를 업어 인구 대비 소녀시대 동영상 조회 비율을 환산해 보았다. 맥도널드 ‘빅맥지수’처럼 일종의 ‘소녀시대 지수’를 산정했는데, 원더걸스와 2NE1의 수치도 비교해 보았다. 일본 진출과 미국 진출에 30억 이상을 썼던 SM과 JYP와 달리 별도의 마케팅 없이도 YG는 비슷한 수치를 얻고 있었다.   


일단 ‘소녀시대’ 지수는 이렇게 나타났다. 한국의 경우 인구 100명당 9명이 유튜브에서 소녀시대 동영상을 조회했는데, 싱가포르는 무려 100명당 83명이 조회했다. 홍콩은 47명, 타이완은 29명, 타이는 19명, 말레이시아는 15명이었다. 우리보다 적지만 캐나다(7명)·필리핀(7명)·베트남(7명)도 충성도가 높았다. 소녀시대가 이제 막 활동을 시작한 일본은 100명당 4명(오스트레일리아 역시 4명), 아직 제대로 활동을 시작하지도 않은 미국에서도 3명이나 되었다. 


원더걸스도 이에 못지않은 결과가 나왔다. 원더걸스 데이터를 소녀시대 데이터와 비교해보니 흥미로운 부분이 나타났다. 데이터를 보면 소녀시대 <Gee> 뮤직비디오 조회자는 여자 13~17세, 여자 18~24세, 남자 25~34세 순서였다. 이는 <Oh!>와 <런데빌런>에서도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었다. 반면 원더걸스 <노바디>는 남자 35~44세, 여자 13~17세, 남자 45~54세 순서로 나타났다. 


2NE1은 소녀시대·원더걸스와 함께 ‘유튜브 트로이카’를 형성하고 있는 그룹이다. 그동안 빅뱅과 함께 일본에서 좋은 반응을 얻었던 2NE1은 9월에 신곡 <박수 쳐>와 <고 어웨이(Go Away)>를 유튜브를 통해 발표하면서 글로벌 스타로 거듭났다. <박수 쳐>가 당일 전 세계 최다 조회 수를 비롯해 최다 댓글, 최고 평점 등 주요 부문에서 1위를 기록했다. 2NE1의 일본어 설명이 붙은 동영상은 조회 수가 1000만 명을 넘었고 미국 시장에 진출한 원더걸스의 <노바디>보다 2NE1의 <박수 쳐>가 영미권에서 더 인기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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