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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재열 여행감독 Dec 25. 2020

여행감독이라는 직업을 만든 이유, 어쩌다 창직!

‘수고하고 짐 진 도시인’을 위한 ‘어른의 여행’


올해 20년 동안 해오던 기자 일을 ‘졸업’하고 여행감독이 되었다. 사람들은 나를 소개할 때 ‘국내 최초’라는 말을 여행감독 앞에 붙여준다. 즉 내가 여행감독이라는 직업을 만들어냈다는 얘기다.      


그럼 ‘대체 여행감독이 뭐지?’라는 의문이 들 것이다. ‘가이드랑 비슷한 것인가’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여행감독이라는 직업을 왜 만들었는지 설명해 보려고 한다.      


일단 ‘여행 작가’는 많이 들어봤을 것이다. 일반인들은 쉽게 못 가는 여행지에 다녀와서 멋진 후기를 들려주는 사람, 홀연히 혼자 떠나서 삶의 깨달음을 얻고 오는 사람, 이런 것들이 여행 작가의 이미지다.      


영화에 시나리오 작가가 있다면 여행작가는 여행의 시나리오를 쓰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누군가 그 여행시나리오를 바탕으로 여행을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여행감독은 바로 그런 여행을 만드는 사람이다. 


이런 여행작가의 부러운 여행이 있는가 하면 다른 한 쪽에는 패키지여행이라는 관광상품이 있다. 안타깝게도 우리의 여행(특히 해외여행)은 후자에 기댄 경우가 많다. 그래서 '수제 패키지여행'을 고민해 보았다. 여행사가 미리 만들어 둔 여행이 아니라 내가 하려는 여행을 만들어 주는 방식이다.      


이런 '수제 패키지 여행'에서 여행작가의 여행기는 좋은 시나리오다. 여행작가들이 현지를 여행하고 가볼만한 곳, 해볼 만한 것, 먹을만한 것, 잘만한 곳을 알려준다. 그런 여행 정보들이 점으로 존재한다. 여행감독은 여행의 콘셉트를 정하고 그 정보를 이어서 선을 그리는 사람이다. 여러 가지 형태의 선이 나올 텐데 나는 그중에 ‘어른의 여행’에 적합한 선을 그린다. 그리고 여행사와 함께 이 여행을 구현한다. 


단순히 선만 그리는 일이라면 너무 쉬워 보인다. 당연히 여기서 끝이 아니다. 그 선을 이어서 마음의 도형을 함께 그려낼 사람을 조직한다. 우리가 여행은 누구와 가느냐도 중요하다고 말하는데, 여행감독은 사람을 짠다. 그 여행에 걸맞은 사람을 부르고 서로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사람을 모아야 여행이 풍성해지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면 여행을 하는 동안 하나의 마을이 만들어진다.   


사람을 짜야 하는 이유는 '아는 사람과 함께 여행을 한다는 것'이 지니는 여러 가지 문제 때문이다. 일단 시간을 맞추기 힘들다. 그리고 여행을 통해 서로 재발견하는 긍정적인 효과가 있을 수 있지만 아는 사이에는 미묘한 권력 관계가 있고 여행에서 그 간극이 벌어질 가능성이 있다. 그래서 은근히 텐션에 높다. 차라리 모르는 사람을 알아가는 여행이 더 편안하다.    


사람을 짜는 것은 현지의 전문가를 짜는 것도 포함된다. 여행작가들이 여행 이야기를 쓸 수 있는 비결은 현지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그들과 직거래한다. 그들로부터 생생한 현지의 정보를 받아서 이를 바탕으로 여행을 짠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하나의 덩어리, 입방체를 만들어낸다. 일종의 주제의식이라 할 수 있다.  거창한 것은 아니더라도 여행의 메인 테마를 정하고 이에 맞춰 같이 갈 사람도, 여행 일정도 결정한다. 주제의식은 묘한 일체감을 준다.        


아는 사람들과 함께 여행할 수만 있다면 분명 최고의 여행이 될 것이다. 그러나 바쁜 현대 도시인들은 이들과 저녁 약속 한번 잡기도 힘들다. 여행은 언감생심이다. 그래서 여행감독이 미리 판을 짜서 ‘앞으로 알아둘 만한 사람들’과 여행을 가게 만드는 기획이 필요하다.


       

이제 여행감독에 대한 그림이 조금 그려지시는가? 가장 확실하게 이해하는 방법은 나와 함께 여행을 하는 것이다. 일종의 큐레이션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사람들은 자신의 시간과 돈을 가치 있게 쓰고 싶어 한다. 그것을 위해 미리 큐레이션을 해주는 것이다.       

여행을 큐레이션 할 때는 대상이 확실해야 한다. 대부분의 패키지여행은 남녀노소 두루 만족할 수 있는 상품을 만든다. 여행감독은 대상을 특정해서 조금 깊이 들어간다. 이중 내가 고민을 맡은 여행은 ‘어른을 위한 여행’이다. 이들에게 필요한 여행을 고민한다.      

현대를 살아가는 바쁜 도시인들, 가장 여행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인데, 그들을 위한 여행이 없다. 가족을 챙겨야 하는 여행, 업무를 처리해야 하는 출장 여행 등을 다니면서 ‘여행의 맛’을 잃어버렸다. 정작 자기 자신을 위한 여행을 찾지 못한 사람들이다.       


한때 X세대 혹은 신세대/신인류라고 불렸던 내 동련배 사람들, 마음속에서는 ‘나도 한비야’ ‘나도 론리플래닛 토니 휠러’인데, 현실은 패키지여행만 클릭한다. 그들의 여행세포를 깨어나게 하는 여행을 만들고 싶었다.      


바쁜 사회생활에 치이고, 가족을 돌보느라 지쳐있는 30/40/50 직장인들이 나의 고민 범위다. 그 아래 세대와 그 윗세대는 알아서 여행을 잘하고 있다. 청춘들은 우리보다 더 열심히 정보를 찾고 더 열심히 움직인다. 그들의 여행에 보탤 말은 없다.


어르신들을 위한 여행도 이미 잘 개발되어 있다. 그들은 여행시장의 큰손이다. 은퇴자 여행은 프리미엄 여행 시장을 형성하고 있다.  장거리 장기 해외여행 즉 비용이 높은 패키지여행은 대부분 이들을 고객 층으로 한다.     


두 세대의 여행을 보면서 두 가지 생각을 했다. 청춘이 개발해 놓은 여행의 언어를 중장년을 위해 통역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노년의 여행을 보면서 저런 여행을 조금이라도 일찍 떠난다면 더 낫지 않을까 생각을 해보았다. 여행 격언처럼, 다리가 흔들리기 전에 마음이 흔들릴 때 말이다.      



여행업은 크게 두 개의 축으로 형성된다. 하나는 솔루션이고 다른 하나는 큐레이션이다. 보통 여행업이라 말하는 것은 솔루션을 의미한다. 비자 항공권 숙박 교통 언어 등 장벽을 극복해주는 솔루션을 제공하는 것이 여행업의 본질이다. 큐레이션은 그 다음이다. 더 가치 있게 돈과 시간을 쓸 수 있도록 여행 아이템을 재정렬하는 것이다.      


전자는 역할이 명확하다. 그리고 가성비를 기준으로 판단하면 된다. 후자는 사실 모호하다. 가심비를 기준으로 판단하는데 이것 또한 불명확하다. 그런데 ‘바쁜 현대 도시인’은 이런 큐레이션을 요구한다.      


여행감독의 큐레이션은 여기서 한 단계 더 들어간다. 사람들은 ‘관광’과 ‘여행’은 다르다고 생각한다. 대체로 관광에 대해서는 부정적이고 여행에 대해서는 긍정적이다. 여행감독은 관광을 여행으로 승화시킬 수 있도록 여행을 큐레이션 한다.      


관광과 여행은 돈과 행복의 관계만큼 역설적이다. 돈이 곧 행복을 보장하지 못하듯이 관광이 좋은 여행을 보장하지 못한다. 하지만 행복을 추구하기 위해는 돈이 필요하듯 여행감을 높이기 위해서는 관광적 요소에 소홀할 수 없다. 그래서 문화부 기자를 오랫동안 했고 여행그룹을 여러 번 주도하면서 수많은 국내외 여행을 조직했던 내가 이런 큐레이션을 자임하고 나섰다.      


자임하고 나선 이유는 ‘수고하고 짐 진 도시인’들이 내가 조직한 여행에 참여하고 나서 안식을 얻었기 때문이다. 그들의 여행세포가 깨어나는 것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그들이 또 다른 여행감독이 되어 여행을 조직해내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같이 여행할만한 사람’의 그룹을 만들기 위해 ‘여행자플랫폼’을 구축하고 올 한 해 여러 여행 실험을 벌였다. 여행을 같이 하고 싶다는 사람은 누구든지 받아들이고 그들의 여행력을 기를 수 있도록 캠핑도 알려주고 트레킹도 알려주고 원데이클래스도 열어가며 같이 여행할만한 사람을 찾았다.      


이제 300명 정도 ‘언제 여행을 함께 해도 괜찮은 사람’의 그룹을 만들어냈다. 그전에 사회생활을 통해 검증한 사람들 100명, 여행자플랫폼 이전부터 함께 여행을 했던 사람들 100명 그리고 여행자플랫폼을 통해 검증한 사람 100명, 이들을 ‘재열투어’의 여행 크루로 삼았다. 내년에는 이들과 좀 더 진화된 여행 실험을 하려고 한다.

   

‘여행자플랫폼’은 계속 열어둘 생각이다. 그 안에서 다양한 여행 실험이 이뤄지도록 하고 ‘재열투어’에 함께 할 사람도 계속 발굴할 예정이다. ‘어른의 여행’이라는 이름으로 뉴스레터도 계속 발행하려고 한다. 누구든 접근할 수 있도록 통로를 열어두려고 한다.


* 여행자플랫폼 예비회원 신청 : 여행동아리 예비회원 가입 신청서 (google.com)

* '어른의 여행' 뉴스레터 구독 신청 : https://page.stibee.com/subscriptions/80919


올 한 해 여행 실험을 정리하는 여행콘서트를 12월26일 경기아트센터 소극장에서 열었습니다. 공연 동영상 링크합니다.


https://youtu.be/0AgkpUTya4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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