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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재열 여행감독 Jan 10. 2022

중장년을 위한 겨울 여행지, 삼척

강릉과 양양 속초는 젊음의 성지, 중장년에게는 삼척이 블루오션


겨울 삼척은 매력적인 여행지다. 겨울에 추천하는 여행 코스 중 하나가 동해안을 따라 길게 늘어선 7번 국도를 달리며 여행하는 것이다. 이 7번 국도 동해안 여행의 매력적인 기착지가 바로 삼척이다. KTX이음이 동해역까지 연장되어서 동해까지는 수월하게 접근할 수 있지만 삼척이나 울진은 아직도 ‘마음의 오지’로 남아있는 곳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영동고속도로를 따라 동해안에 가면 핸들을 왼쪽으로 꺾는다. 그리고 강릉과 양양, 속초를 향한다. 오른쪽으로 꺾는다고 해도 정동진까지다. 강릉과 양양과 속초는 젊은이들에게는 충분히 매력적인 여행지다. 하지만 중장년에게도 그럴까? 서울보다 더 서울같은 이곳에서 우리가 여행감을 느끼기는 쉽지 않다. 


간첩이 침투했다는 ‘울진 삼척지구’로, 금강산관광의 뱃길이 끊긴 동해시로 찾는 사람은 별로 없다. 하지만 한번 오른쪽으로 핸들을 꺾어보면 ‘바가지가 없는 한적한 동해’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동해와 삼척과 울진, 그중에서도 삼척이 으뜸이다. 동해안이 보여주는 거의 모든 매력을 가지고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물론 삼척이 압도적인 경관으로 관광객을 유혹하는 곳은 아니다. 삼척이 가진 가치는 ‘잊힌 곳’이라는 점이다. 삼척 죽서루는 관동팔경 중 제1경으로 꼽히는 곳이다. 즉 조선 선비의 동해안 기행은 삼척에서 출발했다. 삼척이 탄광 도시로 개발되고 ‘울진 삼척지구’에 간첩이 침입하면서 잊힌 도시가 되었다. 그러나 잊혔기 때문에 난개발이 되지 않아 거스를 게 없어 오히려 한적한 여행에 더 좋다.   


지난겨울 방치된 삼척의 도시재생 시설을 ‘삼척살롱’으로 만들었다. 직접 운영하는 ‘어른의 여행클럽/트래블러스랩’을 비롯해 세 개의 단체가 공간을 함께 활용했는데 이곳을 베이스캠프 삼아 삼척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삼척엔 소소한 매력을 가진 곳이 많았다. 그런 곳을 몇 곳 소개해 본다.  



나릿골과 정라진항 그리고 인더스트리얼뷰 


삼척살롱이 자리 잡고 있는 곳은 정라진항과 맞닿은 나릿골이다. 나릿골은 묵호의 논담길과는 다른 동해안 어촌마을의 매력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논담길이 잘 만들어진 관광지라면 나릿골은 다듬어지지 않는 원석과 같은 곳이다. 어촌 출신이 아닌 사람들이 생각하는 관념적인 어촌마을과 가장 닮은 곳이다. 바닷가 골짜기에 다랑이논처럼 자리 잡은 일자형 집들이 은근한 편안함을 준다.  


삼척살롱에서 볼 수 있는 풍경은 오션뷰도 마운틴뷰도 리버뷰도 아닌 ‘인더스트리얼뷰(산업경관)’다. 탁 트인 동해바다가 보이는 것이 아니라 바다를 막아선 정라진항의 갑문이 보이고 산만항 항구 풍경 오른쪽으로는 <미래소년 코난>에 나오는 인더스트리아와 같은 시멘트공장이 보이는데 그 복잡하고 산만한 풍경이 의외의 힐링을 준다. 바람이 부는 날은 바람이 불어서, 비가 오는 날은 비가 와서, 맑은 날은 맑아서 좋은 곳이다.  


나릿골엔 동해안을 가로지르는 해파랑길이 지난다. 나릿골 위쪽 산등성이는 나무가 별로 없는 구릉이라 시야가 좋다. 해돋이 때나 해질 때나 모두 좋은데 정라동 주민센터 맞은편에서 시작해 정라진 방파제 쪽으로 내려오는 코스가 대체로 무난하다. 바다와 면한 곳에 핑크뮬리로 조성한 바람의 언덕이 있는데 운치가 있다. 마을을 두리번거리다 보면 작은 갤러리나 카페를 발견할 수 있다. ‘할매의 부엌’이라는 마을식당도 있다.  


나릿골 바람의언덕을 비롯해 삼척은 해돋이 명소가 많다. 정라진항 이사부광장의 등대, 펜션이 몰려있는 오분동의 언덕 등은 새해 첫날 해맞이를 하려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이곳이 아니더라도 삼척 어디서든 만족할만한 일출을 볼 수 있다. 일출이 좋은 곳은 대체로 일몰 풍경도 뛰어나다.  



바위를 쓸어 담는 장호항의 겨울 파도  


긴 해안선을 가지고 있는 삼척에는 삼척해수욕장 맹방명사십리 초곡항-촛대바위길 장호항 삼척해상케이블카 등 바닷가 관광지가 많지만 그중에서 한 곳을 추천하라면 단연 장호항이다. 장호항은 삼척의 바다를 생각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곳이다. 바다에 우뚝한 바위에 부딪친 파도가 부서지며 포말을 일으키는 모습이 장관이다.  


장호항은 투명 카누나 스노클링 등 해양 액티비티 장소로 인기가 있는 곳이지만 여름휴가철이 아니라 겨울에 가보라고 권하고 싶다. 즐기는 바다가 아니라 지켜보는 바다로 더 매력적이다. 해안을 따라 해금강을 축소해 놓은 풍경이 펼쳐지는데 파도가 바위를 쓸어갔다 또 쓸어 담는 모습을 멍하니 보면 힐링이 된다.  


삼척의 해안 중 삼척해수욕장은 가파르지 않고 모래가 고아서 아이가 있는 가족의 해수욕에 좋다. 맹방해수욕장은 해송 사이로 나있는 산책로가 산뜻하다. 명사십리라는 말처럼 백사장이 길어 드라이브를 해도 맛이 난다. 맹방해수욕장의 남쪽 끝단, 강 하구와 만나는 지점에서는 카누 체험도 가능하다. 요즘 유행하는 차박지로 인기 있는 곳이다. 삼척의 해안을 즐기는 방법 중 하나는 동해안을 따라 나있는 해파랑길을 걷는 것이다. 삼척이 가진 다양한 매력을 두루 맛볼 수 있다.  



활기 치유의숲에서 읽는 시간의 나이 


삼척에 가서 숲을 본다? 생각해보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삼척에서의 시간에 조금 여유가 있다면 활기 치유의숲을 꼭 권하고 싶다. 여러 지자체들이 앞다퉈 치유의숲을 조성했는데 그중 장원 격이다. 이곳은 한 삼척시 공무원의 집념의 산물이다. ‘우리나라 공무원도 이런 곳을 조성할 수 있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꼼꼼하고 사려 깊게 숲을 조성하고 시설을 구축했다.  


활기 치유의숲은 기억할 것은 기억할 수 있게, 새로 만들어야 할 것은 쓸모 있게 잘 만들어져 있다. 아득한 화전민의 시간을 상상할 수 있도록 공병을 쌓아두기도 하고 사람이 살았던 흔적을 더듬을 수 있는 구들과 담돌을 잘 간직했다. 시설은 모던하고 깔끔해서 이국적이라는 느낌이 들 정도다.   


삼척의 숲 중 한 곳 더 추천하라면 소한계곡이다. 삼척 산악지역은 석회암층으로 이루어져서 침식된 계곡부가 깊은 골짜기를 형성하는데 소한계곡이 대표적이다. 소한계곡은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민물김이 서식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소한계곡 중앙부의 초당굴은 문화재보호구역으로 지정되어 있다.  



번개시장(도깨비시장)에서 건져낸 삶의 에너지


삼척의 어시장과 재래시장 중에서 꼭 권하는 곳이 있다. 번개시장(도깨비시장)이다. 새벽에 정라진항 위판장에서 경매를 구경하는 것도 재미있지만, 중매인이 아닌 일반인은 경매에 참여할 수가 없다. 위판장이 있는 곳 주변에는 반드시 도깨비시장이 열리기 마련인데 삼척 번개시장도 그렇다. 위판장에서 뗀 첫물 생선을 파는 곳으로 음식점 주방장들과 부지런한 주부들이 주로 찾는다.  


삼척 번개시장은 겨울에 특히 풍성하다. 일단 대게 같다리를 살 수 있다. 같다리란 다리가 한두 개 잘린 대게를 일컫는 말이다. 일반 대게 가격에 비해 상당히 저렴한 편이다. 겨울에는 청어나 꽁치 막회를 썰어서 싸게 파는데 사다가 생미역과 야채를 넣어 회무침을 만들어 먹으면 감칠맛이 혀를 휘감는다.  


번개시장의 매력은 무엇보다 가격이다. 주머니가 가벼운 술꾼들에게 성지와 같은 곳이다. 골뱅이나 꽃새우도 안주로 훌륭하고 물 좋은 오징어도 다른 곳에 비하면 저렴하다. 막회를 썰어서 만든 회도시락을 종류별로 구입해서 안주해도 좋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두부와 싸고 많이 주는 순두부는 해장에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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