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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재열 여행감독 Jun 01. 2022

밀양 여행의 네 가지 코드, 물 노거수 볕양자 근대

여행감독의 명품한국기행 시리즈, 밀양편


밀양은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많은 도시다. 그런데 밀양 여행은 대부분 ‘거쳐가는’ ‘한나절 들르는’ 여행으로 진행된다. 이는 밀양의 빈약한 숙박 인프라로 알 수 있다. 인스타 성소가 된 위양지와 조선시대 4대 누각 중 하나였던 영남루 그리고 얼음골을 비롯해 영남알프스 서사면의 깊고 긴 계곡 등 매력적인 곳이 많은 밀양을 천천히 머물며 돌아볼 수 있는 루트를 고민했다.  


최근 밀양 답사를 다녀왔다. 여행감독의 중요한 답사 원칙 중 하나는 ‘좋다고 소문난 곳은 빼고 가본다’는 것이다. 남들이 다 좋다는 곳을 굳이 내 눈으로 확인하느라 시간을 허비할 필요가 없다. 설명만 듣고는 확신이 안 가는 곳이나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이라는 생각이 드는 곳 그리고 이곳은 직접 봐야겠다 싶은 곳 위주로 답사를 한다. 이번 밀양 답사도 그랬다.  


짧은 여정 중에 핵심적인 곳을 답사해야 할 때 중요한 것은 관점이다. 밀양 답사에는 4가지 맥락을 가지고 들여다보기로 했다. ‘볕 양자’ ‘물의 고장’ ‘노거수의 도시’ ‘근대의 기억’ 그리고 ‘밀양아리랑’은 빼기로 했다. 밀양아리랑이 너무 과하게 밀양을 대표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영화 <밀양>도 내려놓고 갔다. 영화의 주제 때문이었겠지만 밀양을 너무 어둡게 그렸기 때문이다.  


밀양은 의에 죽고 참에 사는 고장이다. 의와 절개를 상징하는 인물이 많이 나왔다. ‘밀양사람 김원봉’을 비롯해 절개의 상징 ‘아랑’ 그리고 불자의 신분으로 거병해서 나라를 지킨 사명대사 등이 모두 밀양 출신이다. 밀양이 어떤 고장이기에 이런 일관성을 가진 인물들이 꾸준히 나오는지 궁금했다. 의와 정절의 고장 밀양을 들여다보기 위해 4가지 맥락을 가설로 가지고 밀양에 가보았다.  



# 볕 양자를 쓰는 고을 


하나, 볕 양(陽) 자를 쓰는 고을. 밀양은 담양 언양 광양처럼 볕 양자를 쓰는 볕의 도시다. 다들 읍성 권역으로 조선시대 행정의 중심지였고 풍요의 고장이었다. 그래서 다른 지역과는 다르게 육식 문화의 전통이 두텁게 남아있다. 언양불고기, 광양불고기, 담양떡갈비, 밀양돼지국밥 등 공통점은 값싼 내장이 아니라 살코기를 쓰는 음식이 발달했다는 점이다.  


영남루는 평양 부벽루, 진주 촉석루, 남원 광한루와 함께 우리나라 4대 누각으로 꼽힌다. 다른 누각과 비교했을 때 영남루의 두드러진 특징은 남성적이고 웅혼하다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영남루는 여수의 진남관이나 통영의 통제영에 빗댈 만하다. ‘밀양사람 김원봉’처럼 의로운 인물이 많이 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임진왜란 때 승병을 이끈 사명대사와 절개의 상징 아랑도 밀양 출신이다.  


밀양 답사를 준비할 때 영남루만큼 궁금했던 곳은 금시당과 월연정과 같은 정자였다. 직접 가서 보니 기대 이상이었다. 정자 한 채가 외로이 있는 것이 아니라 여러 채가 정자군을 형성하고 있는 모습이 밀양의 두꺼운 선비 문화를 가늠하게 해 주었다. 금시당을 중심으로 용두산 능선과 강변 산책로를 순환하는 금시당길, 월연정을 중심으로 추화산을 오르는 추화산길을 걸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이번 답사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곳은 단연 월연정이다. 밀양 여행을 기획한다면 가장 긴 시간을 배정하고 싶은 곳이다. 난간 길이 회랑처럼 펼쳐진 월연정은 정자의 위치와 정자에서 보는 풍경 모두 좋았다. 백송을 보러 밀양강에 내려가면 드넓은 나대지를 만날 수 있다. 밀양의 양반 서사를 대표하는 퇴로리 고가 마을은 주요 한옥이 개방되어 있지 않았다. 담장 너머로 보았는데 다음에 좀 더 자세히 보고 싶다.  



# 물의 고장 밀양 


둘, 물의 고장 밀양. ‘선비의 도시’와 함께 밀양에 적합한 수식어 중 하나는 ‘물의 고장’이다. 낙동강과 밀양강이 휘감아 도는 밀양은 영월이나 단양 양평 못지않았다. 웰니스의 시대에 이런 물의 도시들이 각광받고 있는데 밀양댐을 비롯해 가산저수지 위양지 등 물과 관련된 명승지가 많은 밀양이 앞으로 주목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물의 고향 밀양을 만끽하기 위해 아리나둘레길, 영남루 주변 수변 산책로, 금시당길을 두루 걸어보기로 했다.  


밀양에 갔을 때 숙소와 가까운 밀양강 둔치로 가서 걸어보았다. 용두교 아래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청경사 쪽으로 걸어보았는데 연신 스마트폰 카메라 셔터를 누르게 되었다. 잔잔한 강물에 강을 둘러싼 봉우리들의 반영이 선명하게 펼쳐졌다. 이 정도 풍경의 수변 산책로가 그냥 ‘동네길’로 불리는 밀양이 부러웠다. 삼문동은 여의도처럼 강 한가운데 있는 섬인데 밀양에는 이런 곳이 두어 곳 더 있다. 이런 곳의 풍경이 특히 아름답다.   

김제 벽골제와 제천 의림지와 함께 삼국시대 3대 저수지로 꼽히는 수산제가 있는 밀양은 물을 통제하려는 인간의 오랜 욕망을 확인할 수 있는 곳이다. 전국에서 손꼽히는 수변구역을 가지고 있으면서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문화가 없다는 것이 아쉬웠다. 밀양강 천변이나 가산저수지 등에서 밀양시민들이 한가로이 낚시하는 모습은 자주 볼 수 있었지만 그 이상의 적극적인 활용은 없었다.  


현대 관광산업에서 물은 웰니스관광의 핵심 요소로 꼽힌다. 얼음골 구만폭포 호박소 등 물과 관련된 명승지가 많은 밀양은 웰니스 시대에 더욱 각광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 중 밀양에 가면 꼭 가보라고 추천하고 싶은 곳은 위양지다. 시간이 빚어낸 풍경을 경험할 수 있다. 단 조건이 있다. 사람들이 몰려들기 전에 가서 호젓함을 맛보길 권한다.  

   


# 노거수의 도시 밀양 


셋, 노거수의 도시 밀양. 담양이나 광양 그리고 언양처럼 밀양 역시 노거수가 두루 포진한 수목의 도시다. 위양지 외에도 고목이 주는 카리스마를 느낄 수 있는 곳이 많았다. 오랜 세월의 풍파를 견뎌내고 의연하게 서 있는 고목과 천년의 세월을 품은 물이 빚어내는 풍경은 언제나 감동적이다.  


밀양의 명승지는 가야 할 계절이 정해져 있다. 특정 수목과 식물이 군락을 이루고 있어 꽃이 필 때가 그곳을 방문할 최적기이다. 목련길이 유명한 삼랑진양수발전소는 봄에, 안인리의 장미꽃길은 늦봄에, 이팝나무 꽃이 아름다운 위양지는 초여름에, 기회송림의 해바라기길은 여름에, 명례리 강변 메밀꽃밭과 삼문송림의 구절초밭은 가을에, 너른 억새밭이 매력적인 추화산과 사자평은 늦가을에 가야 제격이다. 밀양에도 벚꽃길 명소가 많지만 밀양만의 매력을 주는 이런 꽃길을 더 추천하고 싶다.  


'밀양 꽃달력'을 만들어도 될 정도로 다채로웠다. 밀양의 꽃길을 두루 체크해 보고 싶었는데 시간이 충분하지 않아 밀양시청이 준 자료 사진을 보았다. 밀양시는 8곳의 ‘힐링 꽃길’을 선정하고 이를 알리고 있다. 멀리 종남산 이마에 진달래가 핑크빛을 발하고 있는 것을 보았지만 가보지 못해 아쉬웠다. 밀양강 둔치의 긴늪숲의 소나무는 늠름했지만 유료 캠핑장으로 이용되고 있어서 들어가 보지 않았다.  



# 근대의 기억을 간직한 삼랑진 


넷, 밀양에 남은 인간이 그린 무늬를 보기 위해 찾아간 곳은 삼랑진이다. 삼랑진을 중심으로 ‘근대의 기억’을 한 번 더듬어 보려고 했다. 화려한 기억을 가진 소도시가 주는 애잔한 매력을 기대했다. 조선시대 수운의 중심지였던 삼랑진은 낙동강과 밀양강이 교차하는 곳이다. 근대에 기찻길까지 교차하면서 일제강점기 대표적인 수탈 창고 지역이기도 했다. 어떤 흔적이 남았는지 궁금했다.   


기대가 좀 컸던 탓일까 군산이나 목포와 같은 적산 밀집 지역은 없었다. 강경이나 보성처럼 이를 발굴하려는 노력도 없었다. 군데군데 적산이 보이기도 하고 삼랑진역 급수탑처럼 뚜렷한 유적도 있긴 했지만 마음먹고 찾지 않고서는 ‘근대의 기억’을 더듬기 쉽지 않았다. 17채의 관사가 있는 ‘철도 관사 마을’만이 화려했던 시절의 힌트를 조금 주고 있을 뿐이었다.   


그래도 성과는 있었다. ‘삼랑진의 석양’을 제대로 만끽할 수 있는 장소를 발견했다. 정서 방향에 낙동강을 두고 밀려들어오는 밀양강 물을 언덕 위에서 볼 수 있는, 전망대가 들어서 있어야 할 곳에 있는 횟집을 발견했다. 기차 시간 때문에 석양을 보지는 못했지만 제철 웅어회를 먹으며 노을을 기약했다. 이곳에서 거족마을로 이어지는 강가 길은 취미로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에게 손꼽히는 곳이다.  


삼랑진 패러글라이딩 활공장도 석양 명소로 추천할 만하다. 자동차로 올라갈 수 있는 곳이라 쉽게 접근이 가능하다는 것이 이곳의 장점이다. 서쪽으로 아련하게 뻗어있는 낙동강과 힘차게 북쪽으로 치고 올라가는 밀양강을 조망할 수 있는 곳이다. 밀양 여행의 마지막 장소로 추천할 만하다.  



네 가지 맥락으로 밀양을 보고 난 뒤에 더 들여다보아야 할 부분이 있다. 영남알프스의 동사면인 언양이 트레킹 명소로 꼽히는데 밀양도 수려한 산과 깊은 골짜기를 가지고 있다. 얼음골처럼 독특한 기후적 특성이 나타나기도 한다. 만어사 너덜바위처럼 신비로운 풍경을 볼 수 있는 곳도 많다. 밀양은 천천히 꼼꼼히 볼 수록 더 아름다운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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