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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재열 여행감독 Apr 06. 2022

제주의 봄을 만끽하라, 봄꽃 포인트 세 곳

봄의 향기를 좇는 제주 여행


제주에 다녀왔다. 주로 일로 가다보니 '제주가 딱 좋을 때' 가는 경우가 별로 없는데, 이번에는 딱 좋을 때였다. 제주의 봄꽃을 만끽하고 왔다. '꽃 찍으면 늙은 거다'라는 저주의 주문에도 불구하고 쉴 새 없이 아이폰을 들이댔다. 왠지 모를 매력에 홀려, '이 꽃을 놓치는 것은 인생의 봄을 놓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계속 눌러댔다.  


제주는 여행기획자들의 무덤이다. 제주 여행법을 제안하기는 쉽지 않다. 다들 여러 번 가본 곳이라서 ‘나만의 제주’가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19 시기에 해외여행을 가지 못한 사람들이 제주로 몰리면서 이런 경향은 더욱 심해졌다. 더군다나 요즘 같은 취향의 시대에 취존(취향 존중) 제주여행을 제안하기는 조심스럽다.  


이럴 때 의지하는 사람이 있다. 김응용 여행감독이다. 제주 10년살이를 하고 있는 그는 제주에서 온전히 자신에게만 집중하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김 감독은 ‘같은 장소, 다른 느낌’을 보여주겠다며 '지금 딱 좋은 제주'로 우리를 안내했다. 평범해 보이는 길에 보석 같은 들꽃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김 감독의 팁은 ‘꽃이 필 때는 올레 밖으로 벗어나라’는 것이었다. 올레길을 걷다 보면 코스 완주에 집착하기 마련인데 이때는 꽃향기를 따라 길을 벗어나면 소박한 무아지경을 느낄 수 있다고 했다. 그의 말대로 거짓말처럼 그곳에서 꽃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숨어있지도 않고 한껏 자태를 뽐내며 반겨 주었다. 제주 봄꽃의 흔적을 기록한다.  



꽃향기를 따라 무릉도원으로, 

무릉곶자왈의 백서향  


제주올레 11코스 옆 무릉곶자왈은 여러 곶자왈 중에서도 손꼽히는 곳이다. 말을 기르던 이곳은 담벼락처럼 쌓은 잣성을 따라 산책로가 조성되어 있다. 찾는 사람이 많지 않아 도토리가 낙엽만큼 많이 떨어져 있는 이 길은 새들의 속삭임을 들으며 산뜻하게 걸을 수 있다. 무릉곶자왈은 참가시나무 군락과 새왓이라 불리는 띠밭도 있어 다양한 식생을 볼 수 있다.  


음지가 많은 곶자왈은 고사리의 군락이기도 한데 무릉곶자왈도 그렇다. 고사리와 같은 양치식물을 내내 보며 걷게 된다. 그러다 은은한 향기를 따라 곶자왈 깊숙이 들어가면 드디어 하얀 미소를 짓는 백서향을 만나게 된다. 비슷한 향을 가진 금목서나 은목서가 키가 큰 교목인데 반해 백서향은 관목이라 고개를 숙여야 찾을 수 있다. 장범준의 노래  가사처럼 ‘흔들리는 꽃들 속에서 네 샴푸 향기를 느껴’ 보려면 백서향 향기를 맡으면 된다. 


 

짐승들의 옹달샘 맛집, 

엉덩물계곡의 유채꽃  


제주올레 8코스가 지나는 엉덩물계곡은 유채꽃이 아름다운 곳이다. 제주에서 유채꽃이 아름다운 곳으로는 함덕 서우봉 일대, 광치기해변의 성산 유채꽃 재배단지, 가시리 녹산로와 산방산 용머리 등을 꼽는데, 엉덩물계곡은 최근에 가장 각광받고 있는 곳이다. 일단 이름이 사람들을 붙든다. 계곡이 험해 물을 마시는 짐승들의 엉덩이만 보인다고 해서 붙은 이름인데 이름 때문인지 인스타 명소가 되었다.  


엉덩물계곡 유채밭의 매력은 자연스러움이다. 일부러 가꾸는 다른 유채밭과 달리 이곳 유채밭은 유채꽃 키도 각양각색이고 부실해 보이는 것들도 제법 있어서 편안하게 볼 수 있다. 계곡 상류에 매화와 배롱나무 등 다른 식물도 두루 관찰할 수 있어 심심하지 않다. 물길을 따라 자연스럽게 산책로가 나있는데 상류에 물길을 건너는 구름다리가 있어 사진 명소가 되었다.  



지금까지 이런 동백꽃은 없었다,

중문해수욕장 산책로 '보주다'  


엉덩물계곡에서 리조트 단지를 지나 중문해수욕장으로 가면 높은 해안 절벽 중턱의 산책로를 만나게 된다. 리조트가 조성된 이곳은 예전에는 제주의 대표 산책로였지만 지금은 올레길을 비롯해 매력적인 산책로가 워낙 많아져서 일부러 찾아오는 사람은 적은 편이고 주로 리조트 이용자들이 찾는다. 중문해수욕장 절벽길은 높은 위치에서 바다를 조망할 수 있어서 눈맛이 시원한데 요즘은 시원하게 파도를 가르는 서퍼들도 두루 볼 수 있다.  


절벽길을 걸을 때 바다만 보고 가다 놓치지 말아야 할 곳이 있다. 바로 동백 품종 중 하나인 ‘보주다’다. 서정남 원예특작과학원 연구원은 이곳에 가면 보주다 사진을 꼭 찍어오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보주다는 조선시대 원예 관련 책에도 나오는 오랜 품종이다. 겹동백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 화려한 모양인데, 장미꽃 같기도 하고 작약 같기도 하다. 보고 있으면 봄의 화사함이 그대로 전해진다. 이 화려한 동백이 제주의 봄에 비로소 마침표를 찍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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