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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재열 여행감독 Mar 25. 2023

제주올레의 초원 버전, 몽골올레를 걷다

몽골초원 은하수기행 제3편


몽골초원 체험을 마치고 우리 일행은 몽골올레 축제가 열리고 있는 북몽골의 테를지국립공원으로 향했다. 끝없이 펼쳐진 남몽골의 초원을 경험하고 북몽골의 산악지대로 가니 풍광이 대비되어서 좋았다. 테를지강의 거센 줄기가 마음을 휘감았고 칭기스산의 육중한 산줄기가 가슴을 요동치게 했다. 몽골올레는 2017년 1코스와 2코스를 개장하고 이번에 3코스를 새로 냈는데 우리는 2코스와 3코스를 걸었다. 



몽골올레 2코스는 칭기스산을 에둘러 걷다가 가로지르는 코스인데 압도적 풍광을 경험할 수 있다. 몽골인들이 신성하게 여기는 칭기스산은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자연유산이기도 하다. 칭기스산 코스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전반부는 테를지 국립공원을 가로지르는 테를지 강을 따라 평원을 걷는 길이다. 후반부는 칭기즈칸 어워가 있는 칭기스산을 넘는 코스다. 



테를지강은 몽골 조랑말을 닮았다. 수심이 낮은데 맹렬하게 흐른다. 처음엔 그저 넓은 개울처럼 보았다가 점차 그 도도한 흐름에 강의 힘을 느낀다. 그런 은은한 도도함에 반한 일행은 이후 일정을 취소하고 테를지강 가에서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이 목가적인 풍경에 취해 과감히 ‘올포자’(몽골올레 포기자)가 되기로 한 셈이다. 테를지강을 따라서 자작나무와 버드나무가 자라고 있어 목가적인 풍경을 만들어내는데 우리는 이 풍경에 젖어서 발을 뗄 수가 없었다. 강 건너편에서 고삐 없는 말들이 물을 마시고 있는데 말들의 모습이 그대로 강에 비쳤다. 더할 수 없었다. 



이번에 우리가 오르지 않은 칭기스산은 몽골의 기상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2017년 몽골올레 개장식 때 칭기스산에 오르며 ‘언덕을 넘어야 더 큰 언덕을 볼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낮은 언덕에 가려 보이지 않았던 높은 언덕이 낮은 언덕을 넘어 내가 높은 언덕에 설 때 비로소 보였다. 낮은 언덕에서는 낮은 언덕밖에 보이지 않던 풍경이 더 높은 언덕과 웅장한 산을 허락했다. 



이렇게 여러 번 언덕을 넘으면 두 개의 어워를 만나게 된다. 돌무더기 위에 말총 깃발을 올린 어워는 몽골인들이 조상에게 제를 지내는 곳이다. 세 번째 언덕 위의 어워에는 검은 말총으로 장식한 깃대가 꽂혀 있다. 이 어워는 전쟁을 상징한다고 했다. 전쟁에 나가기 전 몽골의 장수들은 이 어워에 제사 지내며 승리를 기원했다고 한다. 네 번째 언덕 위의 어워는 흰 말총으로 꾸민 깃대로 장식되어 있다. 이 어워는 평화를 상징한다. 호전적이었던 몽골인들이 전쟁보다 평화에 더 높은 가치를 두었다는 것이 이채로웠다. 



몽골올레 2코스는 칭기즈산 기슭에서 세상을 내려다보며 휴식을 취하고 내려가게 되어있다. 지대가 높아 상승기류를 탈 수 있는 이곳에서 매를 훈련하는 몽골인도 있다고 하는데 우리가 갔던 날에는 만나지 못했다. 언덕을 넘어가면 독특한 모양의 남근석이 나오는데 여기를 돌아 내려오면 칭기즈 산 코스의 종점이 나온다. 몽골올레 1코스는 복드항산 코스로 몽골인들이 신성한 산으로 여기는 복드항산을 에둘러 가는 길이다. 복드항산 코스는 하늘 맛을 느낄 수 있는 길이다. 초반부에 제주의 오름과 같은 언덕 4개를 연속해서 오르는데 다양한 각도에서 땅과 하늘이 맞닿은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번에 새로 낸 몽골올레 3코스는 숲과 들판을 가로지르는 코스로 더없이 상쾌했다. 내가 걸어본 최고의 숲 길 중 하나로 꼽을 수 있을 것 같다. 숲이 보여줄 수 있는 것은 다 보여주려는 듯, 냇가길에서 시작해, 웅장한 침엽수림을 지나, 들꽃이 만발한 능선을 가로질러 자작나무숲에서 마무리되는 코스였다. 남몽골의 초원과 여러가지 면에서 대비를 이루어서 더 좋았다. 이 한 코스만 걸어도 몽골의 숲과 들판은 충분히 만끽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몽골올레 3코스의 풍광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목가적이다'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 같다. 우리가 몽골을 상상할 때 쉽게 예상하지 못하는 풍경을 선사한다. 8월말이었지만 몽골은 이미 가을 날씨였는데 낮은 관목에 단풍이 들어 있었다. 그 모습이 마치 들꽃이 핀 것처럼 보였다. 다른 몽골올레 코스가 호방하다면 이 코스는 아기자기하다. 몽골올레 트레킹을 한다면 3코스를 먼저 걷고 2코스나 1코스를 걷는 것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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