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선의는 위험하다, 다수의 선의는 더 위험하다

때로는 선의가 악의보다 더 위험하다

by 고재열 여행감독


히말라야 8000m 고봉을 8개나 오른 산악인에게 어떻게 그런 위험한 일을 감당할 용기가 났느냐고 물은 적이 있다. 그는 “위험은 감당하는 것이 아니라 계산하는 것이다. 위험에 대한 계산이 끝났을 때 우리는 등잔한다”라고 말했다. 등반이 ‘계산된 위험’이라면 여행은 ‘계산된 모험’이다. 어른의 여행은, 특히 단체 여행은 무분별한 모험이어서는 안 된다. 계산된 모험이어야 한다.


여행은 계산된 모험이지만 간혹 위험에 빠질 때가 있다. 4년 전 히말라야트레킹이 그랬다. 우리 일행 중 몇 명이 극심한 고산중에 시달렸는데 우리는 그들을 위해 난로 주변 따뜻한 자리를 양보했다(그들의 산소포화도를 낮추는 위험한 일이었다). 옆 트레킹 팀에서는 고산증에 좋다며 이뇨제를 건넸는데 그것을 받아먹은 우리 일행 중 한 명이 심각한 상황에 빠졌다. 평소 저혈압이 있던 분이었다. 이뇨제는 평지에서도 저혈압인 사람은 부작용이 있어서 금지된다. 그를 살려내느라 모두가 매달려 겨우 구해낼 수 있었다.



해발 3840m 강진곰파 마을에 도착했을 때 여행 조감독은 놀면 뭐하냐며 사람들에게 마을산책을 가자며 선의의 제안을 했다. 함께 나간 네팔인 가이드는 빙하가 보이는 조망대를 보여주겠다며 또 다른 선의의 제안을 했다. 두 선의를 따라 일행이 어렵게 조망대에 갔을 때 가이드는 돌아갈 때는 안전한 길을 가자며 다른 길을 제안했다. 그러나 그 길은 눈에 덮여 보이지 않았고당황한 가이드는 길을 찾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들은 거의 조난당할 뻔했다. 나는 그들을 구하러 가자는 다른 일행의 선의를 막느라 정신 없었다. 우리도 저 언덕을 넘어가면 구조대가 아니라 조난대라고. 산악 전문 가이드와 포터 중 고산 등정팀 셰르파 경험이 있는 포토들이 가서 그들을 구해왔다.


위험을 초래한 것은 언제나 선의였다. 악의는 위험하지 않다. 사람들이 경계하고 저심하기 때문이다. 누구의 악의도 개입하지 않았지만 치명적인 위험에 빠진 적이 여러 번 있었다. 여러 번 이런 경험이 있었다. 겨울에 북한산 백운대에 오르는데 쥐가 난 일행에게 근육이완제를 건넨 사람이 있었다. 나중에 구조대가 와서 바윗길을 내려가야 할 사람에게 왜 근육이완제를 먹였냐고 타박했다.



설악산을 오를 때는 일행보다 현저히 뒤쳐져 오르는 60대 여성 2명을 일행이 응원하며 올려보내서 난감했던 적이 있다. 둘이 설악산을 오를 수 있도록 응원하던 사람들의 선의와 포기하지 않구 오르려는 그들의 인간의지가 더해져 정상에 오를 수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하산이었다. 그들은 너무 늦은 시간에 정상에 올랐다. 야간산행에 대한 준비가 전혀 되지 않은 그들의 멘탈을 붙들어가며 설악산을 하산하는 길이 쉽지 않았다.


위험은 늘 우리 주위에 도사리고 있다. 다만 위험을 위험스럽게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우리의 자세가 위험할 뿐이다. 모두가 들떠있을 때 누군가는 네가티브한 상상을 하고 대비할 필요가 있다. 특히 선의가 갖는 위험성을 들여다 볼 줄 알아야 한다. 스페인 속담에 이런 말이 있다. “투우사를 죽이는 것은 소가 아니다. 관중의 박수 소리다.” 새겨 들을 말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제주올레의 초원 버전, 몽골올레를 걷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