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는 이태신의 시선과 전두광의 시선이 교차해서 진행된다. 관객의 시선은 이태신의 시선을 따라 전두광을 타자화 하는데 감독은 전두광의 시선에서 이태신을 타자화 한 것으로 보인다.
왜? 전두광은 리얼이고 이태신은 판타지이기 때문이다. 전두광은 구어체고 이태광은 문어체다. 전두광은 현실에 단단하게 발을 디딘 인물이고 이태신은 판타지 속을 유영한다.
맞는 말을 싸가지 없게 하는 사람과 헛소리를 예의 바르게 하는 사람, 두 개의 탈을 가지고 있는 전두광은 벨벳 장갑 아래 무쇠 주먹을 숨기고 있는 권력의 화신이다.
김성수 감독의 미덕은 적장을 장수답게 그릴 줄 안다는 점과 악마의 머릿속을 헤집어 보려는 노력을 기울인다는 점이다. 두 장점이 <서울의 봄>에서도 빛을 발했다.
무슨 말을 하든 무엇을 입든 잘생김이 덕지덕지 묻어있는 정우성이 이태신 역을 맡은 것이 처음엔 어색했지만 다시 생각해 보니 잘 맞는다. 어차피 이태신은 판타지 속 백마를 탄 장군이니까.
전두광이 권력을 찬탈하려는 것은 납득 가능한 욕망이고 이태신이 수도경비사령관을 받지 않는 것은 납득되지 않는 허세다. 욕망을 따라 움직이는 전두광은 리얼이고 납득되지 않는 원칙론을 내세우는 이태신은 판타지인 이유다. 실존인물 장태완과 외모만이 아니라 캐릭터도 많이 다른 것으로 보인다.
육군참모총장과 대통령을 만나고 오는 것 말고는 사령부를 지키는 전두광은 지략가고 싸움이 한창인데 사령부를 비워두고 말단 초소를 찾아가는 이태신은 무모하다. 예하대를 장악하지 못한 특전사령관이나 전두광을 제대로 검거 못하는 헌병감도 무모하긴 마찬가지다.
이태신은 시작부터 졌다. 수도방위사령관이 시작부터 청와대 앞이라는 대마를 빼앗기고 시작한다. 한강 다리를 막을 방법도 갖고 있지 못하고 자체 준비 병력도 부족하다. 참모들을 장악하지도 못했고 적절한 시점에 무력 행사도 못한다.
늘 그렇다. 불법적인 이익을 추구하는 자들은 늘 지략적이다. 삼성가 상속세를 줄이려는 삼성 변호사들은 용의주도한데 국세청은 늘 사후약방문이다. 전두광은 한계 상황에서 수를 내고 이태신은 빤한 수에 눈빛만 이글거린다.
국방부장관은 '악마의 한 수'를 보여준다. 역사를 바꾸는 것은 영웅도 빌런도 아니다. 결정적 기회주의자다. 사소한 기회주의자와 결정적 기회주의자에 둘러싸인 전두광이 역사를 바꾼다. 사소한 보신주의자와 결정적 보신주의자에 둘러싸인 이태신은 그런 역사를 막지 못한다.
영화는 앞으로도 기대하기 힘든 미래를 가정하며 우리를 참군인 판타지 속으로 이끌지만, 전두광은 재현 가능한 과거고 이태신은 기대하기 힘든 미래다. 우리는 전두광을 어제도 만났고 오늘도 만나고 있고 내일도 만날 것이다.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씁쓸했던 이유다.
'신군부'가 아니라 '검군부'의 세상이 되었다. 권력을 찬탈한 군인들이 앉은자리에 지금은 검사들이 앉아있다. 사람들은 이태신의 가슴과 전두광의 머리를 가진 철인을 기다리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