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에서 만난 사이'를 위한 관계 공학
여행클럽을 구축하면서 가장 고민한 것이 사람들이 ‘좋게 만나는 구조’에 대한 것이다. 여행은 어디를 가느냐도 중요하지만 누구와 가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을 한다. 그런데 그 누구를 좋은 사람인지 나쁜 사람인지 판단하는 것은 쉽지 않다. 아니 불가능하다. 그래서 ‘좋게 만나는 구조’를 고민한다.
‘좋게 만나는 구조’를 구축하기 위해 만든 가이드라인이 세 가지 있다. 요약하자면 편하고 즐겁지만 적당히 거리감이 있는 사이. 여행에서 만난 사람은 쉽게 친해지지만 또 사소한 갈등으로 쉽게 멀어진다. 혈연 지연 학연 등 관계의 뼈대가 없기 때문에 한 번 멀어지면 회복되지 않는다.
‘여행에서 만난 사이’에 적합한 가이드라인으로 정한 것은 이 세 가지다.
@ 간섭하지 않는 결속력, 따로 또 같이
@ 안 좋은 얘기는, 나중에 따로
@ 선을 넘지 않는 배려, 이유 있는 한턱
자유여행과 달리 그룹 여행은 함께 원팀이 되어야 할 때가 있다. 그때 잘 뭉치더라도 개인적인 시간을 보장할 수 있을 때는 보장하는 것이 ’어른의 여행‘에 필요하다. 그리고 기성세대는 한없이 가까워지는 것만이 인간관계의 진리라고 생각하는데 MZ세대는 적당한 거리감을 중시한다. 그래서 선을 지켜줄 필요가 있다.
요즘 ‘안 좋은 얘기는, 나중에 따로’라는 가이드라인에 집중하고 있다. 간혹 여행에서 시비가 일어 누가 옳고 누가 그른지를 다투는 경우가 있다. 그때 누가 옳고 그르냐는 중요하지 않다. 다른 사람 앞에서 누가 옳고 그른지를 따지는 것 자체가 둘 다 그르다. ‘일로 만난 사이’도 아닌데 그 자리에서 시시비비를 가리면서 다룬 사람을 불편하게 할 이유가 없다.
한국인들의 발화 특징 중 하나는 자신의 싸움을 스스로 중계방송 하면서 여론전을 펼친다는 것이다. 길에서 싸움이 붙으면 “이거 보라고 젊은 놈이 이렇게 반말 찍찍거리는 거 들으셨냐고”라며 여론전을 유도한다. 이런 한국인의 종특 때문에 SNS가 한국에서 유난히 더 발달한 것 같기도 하다. 여론전을 위한 최고의 무기니까.
‘어른의 여행’에서도 간혹 말싸움이 일어나곤 한다. 그리고 SNS와 똑같은 여론전을 펼친다. 자신의 언쟁을 중계방송한다. 모두가 진창 속에 있는 순간에도 누군가는 하늘 위의 별을 본다고 하는데, 그럴 때면 애써 별을 보려고 노력한다. 무념무상.
여행감독의 일이 때론 외따로 떨어진 객잔에서 오지 않는 손님을 기다리는 일이라는 생각을 한다. 그때 떠올리는 영화가 바로 <동사서독>이다. <동사서독>을 가끔 보는데 볼 때마다 ‘구양봉(장국영)’에게 더 깊이 감정이입 되는 것을 느낀다. 구양봉은 ‘프로 관찰자’다. 20년 동안 관찰하는 일을 업(기자)으로 삼았던 입장이라 동질감이 느껴진다.
구양봉은 쉽게 칼을 뽑지 않는다. 하지만 진창을 만든 사람은 기억한다(사람은 안 변하니까). 잊지 말아야 한다. 구양봉의 본업은 살인청부업자라는 사실을(십여년 동안 네 닉네임은 ‘독설닷컴’이었다). 시비걸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언젠가부터 보이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