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은 간단하다. 비싼 거 먹으면 된다. 물론 이건 하나마나한 소리다. '배 고프면 밥 먹어야 한다' '말레이시아가 한국보다 덥다'와 같은 얘기다. 그런데 북유럽에서는 필요한 노하우다. 물가가 비싼 곳이라는 선입견 때문에 싼 것 찾느라 혈안이 되는데 조금만 레벨업을 하면 수준급 음식을 맛볼 수 있다.
대체로 저개발국은 빈부격차 만큼 음식값의 격차도 크다. 반면 선진국은 다양한 그라디에이션이 있다. 선진국의 레스토랑은 대체로 비싼 곳은 비싼 이유가 있다. 비싼 곳이 대체로 구글 평점도 좋다. 그곳을 평가하는 것인지, 그런 곳에 돈을 쓰고 오는 자기 자신을 평가하는지, 아무튼 대체로 좋은 평가를 한다. 어디서든 맛집 비결은 '내돈내산'
유럽 구석구석을 다 가본 것은 아니지만, 음식에 진짜진짜 진심이다 싶을 정도는 아니지만, 여행감독으로 전업한 후 유럽 여러 곳을 두루 다닌 경험을 한 번 '중간 점검' 해보았다. 일반 패키지여행과 달리 현지에서 신중하게 골라간 곳이 많아서 천편일률적인 식당/레스토랑 이야기는 아니다.
유럽 음식에 대해 그냥 인상 비평적으로 말하자면, 대체로 남쪽으로 갈수록 맛있어진다. 독일보다 체코가, 체코보다 헝가리 음식이, 헝가리보다 루마니아 음식이 우리 입에 더 맞았다. 남쪽으로 갈수록 음식에 감칠맛이 더 낫고 대체로 간이 더 우리에게 맞았다. 슬라브인이나 게르만인보다는 라틴인들의 음식이 우리에게 맞다. 신기하게도 발트3국 기행에서도 남쪽으로 갈 수록 맛있엇진다는 원칙이 적용되었다. 에스토니아 => 라트비아 => 리투아니아로 내려갈수록 음식이 좋아졌다.
두 번째 원칙은 내륙국가보다 해안국가가 더 맛있다는 것이다(리투아니아는 내륙국가임에도 해안국가인 라트비아나 에스토니아보다 맛이 좋았다). 지중해 연안의 해산물요리는 모두 기본빵은 해낸다. 지중해 해산물 중에는 오징어가 가성비가 좋다. 총알오징어나 갑오징어를 튀기거나 구워줘서 한국 오징어보다 식감이 좋다. 지중해담치(홍합)도 홈그라운드에 먹으면 맛이 좋다. 가리비와 새우도 우리것보다 식감이 좋고 맛이 달다. 그리고 최고의 픽은 바로 정어리구이. 우리나라에서는 한여름 통영 앞바다 섬에서나 경험할 수 있는 정어리를 지중해에서는 무시로 볼 수 있다. 감칠맛이 최고다.
세 번째 원칙은 국물음식을 피하라,라는 것이다. 여행 중에는 반주로 술을 많이 마시게 된다. 그래서 국물음식을 갈망하게 되는데, 유럽에서 국물음식을 시키면 십중팔구는 심하게 짠 음식이 나온다(이번에도 순간의 유혹을 못 이기고 시켰다가 여러 번 당했다). 유럽의 국물은 우리와 접근법이 다르다. 건더기의 간을 맞춰주는 보관 공간일 뿐이다.
국물음식은 네 번째 원칙으로 연결된다. 정 국물음식이 먹고 싶으면 베트남식당으로 가라는 원칙이다. 쌀국수가 당신의 유럽여행 소울푸드가 되어줄 것이다. 라멘 국물이나 우육면 국물은 기대할 바가 못된다. 보트피플 등 이민 역사가 오래여서 그런지 베트남 음식이 컨티뉴어티가 좋았다.
다섯 번째 원칙도 연장선 상에 있다. 아시안 식당은 구글평점을 믿지 말라는 것이다. 이번 발트기행 중간에 한식당에 갔다가 인생에서 가장 맛없는 짜장면을 먹었다. 오래간만에 먹어보는 ‘삼키기 힘든 맛’이었다(하지만 뜨거운 동포애로 별 다섯을 주고 왔다). 중국식당이나 일본식당도 마찬가지다. 서양인들의 아시안 식당 평가는 믿을게 못된다.
여섯 번째 원칙은 약간 음식 외적이긴 한데, 케밥집이 몰려있는 곳은 밤에 가지 말라는 것. 동네 나쁜 형들이 많은 곳일 가능성이 크다. 이 원칙은 샌프란시스코에서도 적용되었다.
일곱 번째 원칙은 쌀의 익힘을 조심하라는 것, 일식당에서 함부로 시켜 먹는 캘리포니아롤의 밥 상태에 놀랄 수 있다. 쌀에 알덴테를 구현한 것인지, 쌀도 회로 먹겠다는 속셈인지, 거의 생쌀에 가깝다. 제대로 된 쌀밥은커녕 익힌 쌀을 먹는 것도 힘들다.
여덟 번째 원칙은 아시아식당의 음식엔 세 가지가 없다는 것. 하나, 중식당엔 불맛이 없고, 일식당엔 칼맛이 없고, 한식당엔 손맛이 없다. 이것 빼곤 다 있으니 자신 있으면 주문해 보시라는 것.
아홉 번째 원칙, 아시안식당의 곁다리 한식은 네버에버 주문하지 말라는 것. 보통 아시안 식당은 일식 중식 태국식 베트남식 짬뽕인데 최근 한류 인기에 편승해 한식 메뉴를 내놓는 곳들이 왕왕 있다. 진짜 최악이다.
마지막 열 번째 원칙은 그 나라 전통음식 먹어볼 때 이것저것 너무 많이 주문하지 말라는 것. 안동에 가서 헛제삿밥 너무 많이 주문하는 것이 안 좋은 것과 같은 이치다(후손들이나 먹으라는 음식이지). 맥주 샘플러 모음 주문하는 기분으로 가볍게 주문하는 게 좋다.
유럽여행을 하다 보면 한국 포스팅 중 유일하게 부러운 게 있다. 바로 음식 포스팅. 풍경 포스팅엔 시큰둥한데 음식 포스팅엔 부러움 뿜뿜이다. 혀가 기억하니까. 역시 한국사람한테 맛있는 음식은 한국에 있다.
주) '유럽여행에서 맛없는 음식 피하는 법'에 대한 나만의 노하우 있으신 분들은 댓글로 공유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