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공항 면세점과 스코틀랜드 현지 에딘버러 공항 혹은 시내 스카치 위스키 매장 중 어디가 더 다채로울까? 놀랍게도 인천공항이다. 대체로 술에 무심한 편이라 그동안은 눈여겨 보지 않았는데 이번에 스코틀랜드를 다녀오고나서 관심이 생겨 보니 그랬다. 깜놀했다.
특히 스페셜 에디션은 압도적으로 인천공항에 많은 것 같다. 에딘버러 공항이나 현지 위스키 전문점에선 오리지널 버전의 스탠다드 위스키 위주로 판매한다. 한두 종 숙성이 다른 것들을 두기도 하지만 인천공항처럼 버라이어티 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인천공항엔 브랜드마다 5종 이상 베리에이션이 있다. 온갖 구실을 달아서 스페셜 에디션을 만들어 낸다.
이를 해석하자면 스코틀랜드 사람들은 10~12년 정도를 스카치 위스키의 최적 숙성 연도로 보고 각 브랜드의 표준 숙성 위스키를 선호한다고 볼 수 있다. 그 이상의 숙성에 대해서는 그렇게 큰 의미를 부여하지는 않는 것 같다. (물론 스코틀랜드 현지에도 정말 숙성 오래된 것을 전시한 럭셔리 매장이 없지는 않다)
아무튼 싱글몰트의 다양성에선 한국이 압도적이다. 한국의 주당들에게는 ‘나는 남들과 다른 것을 마신다’는 선민의식이 중요한 것 같다. 그래서 스카치 위스키의 브랜드 다양성이 세계 어느 공항보다 많고, 각 브랜드마다 연도별 베리에이션을 갖추고 있는 것 같다. 와인과 마찬가지로 주류 마케팅에 대한 리액션이 가장 좋은 곳이 한국인 듯.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시음을 해보면 보통 15년 이상 숙성된 증류주는 텐션이 떨어지는 것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다. 주변의 주당들 중에 정말 술을 달고 사는 사람들은 대부분 그렇게 말하곤 했다. 더 숙성된 증류주가 좋다면서 주로 하는 평은 목넘김이 부드럽다는 것인데, 부드러운 것을 찾을 거면 우유를 마시는 게 낫지 않나. 비유하자면 이것은 고기 먹으면서 잡내 안 난다고 좋다고 얘기하는 것과 같다. 고기 고유의 향을 즐기려 하지 않듯이 알콜이 목에 닿는 느낌을 싫어한다니.
‘음료는 묵으면 맛이 좋아진다‘는 것은 오직 한국에서만 통용되는 검증되지 않은 마케팅 격언이다. 음료의 보관 리스크는 생각보다 크다. 그래서 ’최적‘에 주목한다. 술을 적당히 즐기는 사람은 밸런스 좋은 싱글몰트를 선호했고, 평소 술을 자주 즐기는 사람들은 60도에 육박하는 Cask Strength를 가장 좋은 맛으로 꼽았다. 주당에게는 부드러운 목넘김은 주안점이 아니었다.
우리나라에서 스카치 위스키 라인업에 가장 전범이 될만한 곳은 영국 대사관 지하의 위스키 바라 할 수 있다. (대사관에 달린 바가 있는 건 영국대사관에서 처음 본 듯) 그곳에서도 우리나라 면세점처럼 연도별 베리에이션을 늘어놓지는 않았던 것 같다(이건 기억이 좀 희미해서...).
그 바를 방문했을 때 영국대사에게 물었다. 영국 신사들의 주도는 무엇이냐? 술 마실 때 프로토콜이 있냐?(와인을 마시고 꼬냑이나 그라빠로 마무리 하는 것처럼, 맥주 마시고 위스키로 시마이 하는지 등등) 물었는데 영국 대사의 답은 심플했다. “그딴 게 어딨나, 지 꼴리는 대로 마시는 게 술이지”
스코틀랜드 위스키 기행을 준비하면서 현지 브루어리들 두루 파악해보고 있는데 한국 면세점에 이 정도로 많이 들어왔다는 것 알고 깜놀했다. 스코틀랜드 사람들도 보면 놀랄 것이다. 웬만한건 다 있어서 현지에서 사오느라 고생할 필요가 없다. 조만간 나리타나 간사이 공항의 위스키 라인업이랑 비교해 보려고 한다.
스코틀랜드에 갔을 때 무라카미 하루키의 위스키 책을 챙겨 갔었다. 비행기에서 읽으면서 참 성의 없이 썼다는 생각을 했다. 블로거인 줄. 아니 웬만한 블로거에도 미치지 못하는 듯. 산토리위스키에서 위스키 증류소를 인수해 협찬 받고 갔다와서 썼다는 게 읽을만한 게 별로 없었다.
스코틀랜드 위스키기행을 준비한다는 핑계로 계속 싱글몰트위스키 시음회를 계속 하고 있다. 대체로 하이랜드 - 스페이사이드 - 아일라섬 위스키를 순서대로, 버번캐스크와 셰리캐스크로 각 한 번씩, 두 번 정도 돌려 마시고 마지막에 Cask Strength 위스키를 한두 가지 마시는 것으로. 그리고 여기에 비교군으로 아이리시 위스키. 버번 위스키 등 다른 그레인 위스키도 비교군으로 좀 확충하려고 한다.
스카치 위스키에 대한 맛의 좌표를 그려 보기 위해서 시음하면서 질문을 많이 했다. 그 맛의 기억에 따라 스코틀랜드 위스키여행의 루트도 짜보고 싶어서. 대체로 술을 평소에 많이 마시고 술이 센 사람일수록 Cask Strength 위스키와 피트향 진한 아일라섬 위스키를 선호했다. 술에 그리 진심이 아닌 나같은 사람은 Bowmore와 같은 밸런스 좋은 위스키가 좋았다.
주량이 좀 되는 사람들이랑 시음할 때는 위스키와 다른 증류주, 이를테면 브랜디나 럼 깔바도스 등과 비교 시음도 해보았다. 다른 증류주를 위스키와 비교하니 확실히 드라이한 와인을 마시다 스위트한 와인을 마시는 느낌이었다. (앞으로 브랜디는 등산할 때 정상주로만 살짝 마시기로)
독주 시음회가 생각보다는 부담이 없었다. 보통 때 독주를 마실 때는 처음부터 독주만 마신 게 아니라 와인이나 맥주를 마신 뒤에 마셔서 숙취가 심했던 것 같다. 조금씩 시음하니 취기도 그리 오지 않았고 숙취도 없었다. 와인 시음회보다 말짱했다. 이 기운을 그대로 이어서 스코틀랜드 위스키 기행까지트, 고고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