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재열 여행감독 Jul 05. 2024

몽골 청년 솜야가 보여준 찐몽골

‘어른의 여행, 트래블러스랩’의 몽골기행 제작기


“테를지는 몽골이 아닙니다. 진짜 몽골을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우리 일행의 몽골초원 은하수기행을 이끌어주기로 한 몽골 청년 솜야의 호언장담이다. 그리고 그는 이 호언장담을 한 치의 오차 없이 실현시켜 주었다. 우리는 가짜 몽골이 아닌 찐몽골을 볼 수 있었다.



솜야와는 알던 사이는 아니었다. ‘어른의 여행, 트래블러스랩’의 멤버인 김관석 충북대 축산학과 교수의 제자다. 김 교수의 페이스북에서 솜야에 대한 이야기를 보았다. 한국에 유학 와서 졸업한 뒤에 아버지가 운영하던 목장을 이어받기 위해 몽골로 돌아간 제자가 있다. 한국에서 배운 축산기술을 바탕으로 목장을 운영하고 있는데 진짜 몽골을 보여주는 여행을 기획하고 싶어 한다고 했다.


솜야의 페이스북 계정을 둘러보고 몽골기행을 그에게 의뢰하기로 마음먹었다. 일단 김 교수와의 돈독한 관계가 있으니 우리를 환대할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었다. 시스템이 잘 구축되지 않은 저개발 국가에서는 제대로 된 현지 여행사를 구하기 힘들다. 다른 일을 하면서 여행사를 겸업하는 경우도 많다.


'곳간에서 스타일 난다'는 말이 있다. 현지 파트너가 여유가 있는 사람일 때 여행 기획에는 유리한 측면이 많다. 경험의 폭이 넓기 때문이다. 구소련 승합차 푸르공 2대가 감당할 수 있는 만큼의 인원(12명)으로 탐험대를 구성하기로 하고 솜야에게 몽골기행 기획을 부탁했다.


몽골기행을 기획할 때 솜야에게 4가지 정도의 디렉션을 주었다. 하나, 당신 가족의 목장을 충분히 만끽했으면 한다. 둘, 노천온천이나 사막을 경험해 보고 싶다. 셋, 몽골올레 2코스와 3코스를 걸으며 강이 흐르는 숲 사이를 걸었으면 한다. 그리고 허르헉 등 몽골 전통음식을 두루 경험해 보았으면 한다.



2022년 8월24일 몽골행 대한항공 비행편에 올랐다. ‘비행기 탈 때 신발을 벗고 탔었나, 신고 탔었나’ 헷갈릴 정도로 오래간만에 국제선 비행기를 탔다. 헤아려보니 코로나19 유행 시작 무렵 쿠바 기행을 다녀온 후 900일 만이었다. ‘어른의 여행클럽, 트래블러스랩’을 만들겠다고 공헌한 지 1000일 정도 된 시점이었다. 이제야 제대로 된 해외여행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벅차올랐다.


‘어른의 여행’은 관계를 통해서 만들고 관계를 맺어가는 여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생애 전환 여행’이 ‘바쁜 현대 도시인’들에게 필요하다고 보았다. 그래서 ‘인생의 중간 정산’이 되고 ‘인간관계의 중간 급유’가 되는 여행을 기획하고자 했는데 솜야와 함께 하는 몽골기행은 이를 만족하는 여행이었다. 몽골원정대의 답사는 일부러 몽골올레 축제 기간에 맞췄다. 몽골올레는 제주올레 브랜드를 몽골에서 도입한 것으로, 서명숙 제주올레 이사장과는 시사저널 때부터 함께 근무한 인연이 있다.


몽골기행은 트래블러스랩에서 기획한 ‘유라시아 8경’ 답사 중 하나였다. 유라시아 8경으로 꼽은 곳은 캄차카 반도(러시아), 아무르강(러시아), 몽골초원(몽골), 바이칼호(러시아), 천산산맥(카자흐스탄) 파미르고원(타지키스탄) 코카서스산맥(조지아), 볼가강과 우랄산맥(러시아) 등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대부분을 못하고 있지만 하나하나 구현하고 있다.


유라시아 8경의 첫 시작을 알리는 몽골기행, 솜야가 보내온 일정표는 ‘몽골 농활’ 일정표를 방불케 했다. 소 젖 짜기와 송아지 물가에 데려가서 물 먹이기, 소똥 치우기와 마른 소똥 줍기 그리고 주운 소똥으로 캠프파이어 불 붙이기. 말몰이와 말타기 그리고 말 잡아채기 등 목장의 루틴에서 우리가 함께 할 수 있는 것들을 하도록 이끌었다. 여행은 우리를 다시 소년과 소녀 시절로 되돌려 주곤 하는데 솜야네 목장 체험이 그랬다.



솜야네 목장은 수도 울란바타르에서 남동쪽으로 두 시간 반 정도 차로 가는 곳에 있었다. 전형적인 남몽골의 풍광을 보여주는 곳이었다. 낮은 구릉 사이로 초원이 끝도 없이 펼쳐졌고 그 사이에 마치 점처럼 하얀 게르가 박혀 있었다. 하늘과 들과 간혹 보이는 게르 외에는 양과 소와 말 등 가축뿐이었다. 평온했다.


몽골은 울란바타르를 중심으로 그 아래 남몽골과 그 위 북몽골로 나눌 수 있는데 두 지역은 확연하게 달랐다. 기후와 지형이 다르고 이에 따라 생활하는 모습도 크게 차이가 났다. 산악지형인 북몽골은 상대적으로 기후가 온화하고 토양도 비옥하다. 그래서 몽골의 농업은 주로 북몽궐에서 이뤄진다. 평지지형인 남몽골은 상대적으로 기후가 거칠고 토양이 척박해서 유목 위주다.


솜야네 목장이 있는 남몽골에서 며칠을 보낸 뒤에 북몽골에 올라오면서 눈에 띈 것은 담장과 울타리였다. 북몽골은 집에 담장을 두르고 목장에 울타리를 친다. 즉 경계를 둔다. 남몽골에서는 볼 수 없는 것들이다. 남몽골은 게르 주변에 담장도 없고 목장에 울타리도 없다. 경계가 필요 없을 만큼 이웃과 떨어져 살기 때문이다. 반면 사람이 몰리는 북몽골엔 경계가 선명했다.



대부분의 한국 여행자들은 테를지국립공원을 중심으로 북몽골을 여행한다. 몽골의 절반만 보는 셈이다. 테를지국립공원은 아름다운 곳이다. 하지만 강원도의 콘도 & 펜션 리조트 지역을 방불케 할 만큼 난개발 되고 있었다. 타운하우스처럼 열 지어 지어진 게르들은 밤이 되어도 조명을 끄지 않았다. 보통 몽골은 별을 보러 간다고 하는데 테를지에서는 광해로 별을 제대로 보기 힘들었다.


남몽골은 척박했다. 하늘과 땅을 가로지르는 도로를 하염없이 달렸다. 구소련 시절 24km마다 역참(기차역)을 두었던 것처럼 24km마다 구멍가게를 하나씩 두었다. 여기서 생필품을 조달할 수 있었다. 소도시에 마트가 있어서 필요한 장은 거기서 보았다. 식당도 거의 없어서 저녁 한 끼를 사 먹기 위해 80km를 달려가기도 했다. 쏨야가 집 근처의 명소라고 데려간 우물도 100km 가까이 달려가서야 볼 수 있는 곳이었다. 몽골인들은 우리와 거리감이 달랐다.


척박하지만 여기가 진짜 몽골이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기대했던 상상 속의 몽골이었다. 시야를 방해하는 건물이나 산 없이 보이는 것은 땅과 하늘뿐인 남몽골에서 하늘은 둥글고 땅은 평평하다는 것을 실감했다. 초원 한가운데 서면 그냥 ‘천지인’이 완성되었다. 단지 대자연에 압도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존재가 대자연에 방점을 찍는다는, 묘한 매력이 있었다.



솜야네 목장에서도 100km 정도를 더 남쪽으로 가서 솜야가 완벽하게 지평선을 볼 수 있는 평원을 만날 수 있었다. ‘몽골에서 내가 가장 보고 싶었던 풍광이 이거였구나’ 하는 탄식이 나왔다. 다가가면 다가간 만큼 멀어지고, 돌아서면 내가 돌아간 만큼 또 따라오는, 지평선의 매력을 제대로 느낄 수 있었다. 육지에서 바다의 느낌을 받기는 처음이었다. 망망대해가 아니라 망망초원에서 느끼는 아득함이 좋았다.


원래 석양마니아인데 지평선으로 떨어지는 해는 또 다른 매력이 있었다. 그 석양을 가르며 트럭이 천천히 지평선을 달렸다. ‘다시 몽골을 찾는다면 이걸 보기 위해서다’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가슴 설레는 풍경이었다. 이번 여행을 진행한 솜야는 기획력이 있었다. ‘내가 진짜 좋아하는 갓들을 사람들에게 소개한다’는 여행기획자의 제1원칙에 충실했다. 그 덕에 우리는 ‘인생 풍경’을 볼 수 있었다.


몽골의 전통은 손님이 오면 게르를 내준다는 것이다. 솜야도 자신의 신혼 게르를 우리에게 내주었다. 몽골인이 생활하는 게르를 이용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진짜 게르를 이용해 보니  몽골에 자기 텐트를 들고 캠핑을 간다는 것은 ‘잔칫집에 도시락 싸가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게르를 경험할 수 없기 때문이다. 왜 저 자리에, 왜 저렇게 게르를 설치했을까, 그것을 알아보는 일도 재미난 일이기 때문이다.



보통 게르는 남향으로 설치한다. 볕을 많이 받을 수 있는 양지바른 곳에 두고 문은 고개를 숙여야 들어갈 수 있을 만큼 작게 낸다. 문을 통해 바로 바라볼 수 있는 곳에 송아지 축사나 말 축사가 있다. 게르에서 가까운 곳에는 반드시 물이 있어 가축들이 물을 마실 수 있어야 한다(풀어 두어도 멀리 가지 않는 이유다). 겨울을 나는 게르는 언덕 사이의 바람을 피하는 곳에 설치한다.


게르는 몽골의 척박한 기후에 최적화되어 있다. 몽골초원은 우리보다 일교차가 크다. 하루에 여름과 겨울을 다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여름에도 새벽에는 제법 추운데 게르에서는 중앙의 난로에 불을 피울 수 있다. 그때 느끼는 푸근함은 남다르다. 건조할 것 같은데 여름에는 생각보다 몽골에 비가 자주 온다. 맑은 날보다 비 오는 날이 더 많았던 적도 있었다. 아침에 비가 오면 텐트를 철수할 때 난감하다. 안전 이슈도 있다. 몽골초원은 낙뢰가 제법 자주 발생한다. 몽골 트레킹 때 가장 큰 리스트가 바로 이 낙뢰다. 텐트는 낙뢰를 피하기에는 너무나 허약하다.


테를지에 설치된 관광 게르가 아닌 실제 몽골인들이 생활하는 게르를 활용하면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다. 양을 골라서 엄숙하게 잡고 해체해서 허르헉과 내장 순대를 비롯해 몽골 전통음식을 만드는 과정을 전부 볼 수 있다. 게르 안의 덥힌 공기를 활용해 마유주를 발효시키는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수시로 저어주면서 술이 익어가는 향을 즐겼다. 게르는 침실이면서 거실이면서 또한 부엌이 되어서 일행과 오붓하게 수다를 나눌 시간이 많아서도 좋았다.



보통 섬에 사람들을 데려가면 ‘시간이 멈춘 듯한 느낌’이 든다고 말한다. 몽골 초원도 그랬다. 그런 무료함 속에서도 지루함이 느껴지지 않았다. 매시간마다 챙겨야 할 빛의 감동이 있었다. 새벽에는 뒷산에 비친 반사광을 즐겼다. 솜야는 일출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언덕으로 우리를 안내했다. 할아버지를 따라 올라와서 일출을 보던 곳이라고 했다.


언덕 위에는 돌무더기가 있었다. 산의 높이를 더해주기 위해 돌을 쌓아주는 것이 몽골인들의 풍습이라고 했다. 돌무더기 옆으로는 풍화작용으로 하얗게 변한 말의 머리뼈가 있었다. 먼 곳을 바라볼 수 있도록 이런 곳에 둔다고 했다. 돌무더기에 돌을 몇 개 던져 올리고 몽골인들처럼 세 바퀴를 돌며 소원을 빌면서 일출을 기다렸다. 곧 장엄한 일출이 우리를 휘감았다.


게르의 일상은 분주했다. 그 일상을 따라 하는 것만으로도 대자연의 숨결을 함께 호흡할 수 있었다. 아침에는 목동과 함께 송아지들을 연못에 데려가 물을 먹이고 말몰이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예전에는 말을 타고 했던 일을 요즘은 오토바이를 타고 하고 있었다. 석양에는 송아지들을 어미소 곁으로 데려가 젖을 먹였다. 송아지가 어느 정도 젖을 빤 다음 소젖을 짜냈다. 그러는 동안 다른 일행은 소똥을 치우고 또 마른 소똥을 주워 모았다.



주워 모은 마른 소똥으로 밤에 캠프파이어를 했다. 소똥은 마른 장작처럼 활활 타오르지 않고 숯처럼 은근하게 타면서 온기를 선물했다. 소똥 캠프파이어를 하면서 은하수를 즐겼다. 은하수가 지평선에서 지평선으로 무지개처럼 펼쳐졌다. 몽골은 별을 보기 위해서 오는 곳이 아니라 은하수를 보기 위해 오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젊은 시절 영화를 연출하기도 했던 솜야 어머니가 자청하고 몽골 전통음악 몇 곡을 불러주었다.


솜야 어머니는 음식 솜씨가 좋았다. 몽골 등 중앙아시아 음식은 우리 기준으로 보면 느끼할 경우가 많은데 그렇지 않았다. 양 한 마리를 잡아서 털과 가죽은 따로 말리고 고기는 허르헉을 만들고 내장은 순대를 만들고 머리는 통째로 삶아서 다양한 맛을 볼 수 있도록 해주었다. 남은 내장순대는 으깨어서 만두를 만들어 주었는데 훌륭한 점심 도시락이었다.


솜야네 목장에서 ‘진짜 몽골’을 경험한 일행은 ‘몽골에 마음의 고향을 하나 만들고 왔다’고 이번 여행을 평했다. 며칠 동안 샤워도 못하는 불편함의 극치인 곳이었지만, 편안함의 극치인 료칸과 비슷한 매력이 있었다. 말 그대로 ‘불편한 사치를 만끽할 수 있는 곳이었다. ‘어른의 여행클럽/트래블러스랩’의 몽골 답사 여행 결론은 ‘다음 여행을 위해 게르 한 동을 지어둔다’는 것이었다. 참가자 중 몇 분이 돈을 모아 게르 구축 비용을 솜야에게 전달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사하라 사막에서 찍은 사진엔 보정이 필요 없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