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초 신익섭 요셈투어 대표와 캘리포니아 답사를 진행했다. 샌프란시스코/ 요세미티/나파밸리/실리콘밸리를 두루 돌아보는 일정이었다. 미국에서 가장 힙한 도시, 자연이 가장 아름다운 곳, 성공한 IT 기업의 탄생 현장, 와인이 가장 맛있는 곳을 두루 돌아보겠다는 단순한 심뽀였다.
그런데 그 이상이었다. 요세미티 아래의 서부개척 마을, 샌프란시스코 부두의 이민자촌 그리고 현대 IT 기업의 요람인 실리콘밸리, 이 셋을 관통하는 통일된 언어가 있었다. 골드러쉬에 몰려온 서부개척자,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고 온 아시아 이민자, 그리고 실리콘밸리의 창업가의 도전은 닮은 구석이 많았다. 그들이 그 과정을 통해 이룬 가장 큰 성취는 관용이라는 사회적 성숙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참가자가 적어 캘리포니아 답사는 여행감독인 나나 제작사인 요셈투어의 신익섭 대표에게나 적자여행이었다. 그러나 나는 장담했다. 이 여행은 LA-라스베가스-그랜드캐년을 능가하는 최고의 미서부기행이 될 것이라고. 불과 몇 달 되지 않아 신 대표에게 이 코스를 의뢰하는 이들이 몰려들고 있어서 내 확신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CEO과정 여행 의뢰가 오면 맨 먼저 제안하는 것이 바로 이 여행이다. 이 여행의 화룡점정 중 하나는 애플 구글 페이스북 등 IT 거인들의 족적을 추적하는 것. 중세 성당과 옛 성곽과 영웅의 박제된 동상이 아니라 현대의 전장에서 현대의 신화를 일군 사람들을 만나러 가는 여행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캘리포니아기행을 마치고 들었던 생각은 자본주의 최고의 신전인 여기를 활용해 ‘CEO기행’을 만들어야겠다는 것이다. 여긴 창업을 준비하는 꿈나무가 아니라 필드에서 좌충우돌해 본 CEO들과 와봐야겠다는 생각이었다. 아마 그들에게는 보이는 것이 더 많을 것이다.
실리콘밸리를 방문하고 관심이 집중되었던 곳은 바로 스탠포드대학이다. 스탠포드대학은 단순히 캠퍼스가 아름다워서 가보는 곳이 아니다. 이 대학 출신들이 어떻게 글로벌 IT 전장에서 걸출한 영웅이 될 수 있는지 그 학풍을 깊이 들여다 볼 필요가 있는 곳이다.
동부 아이리비그 대학과 동떨어진 스탠포드대학이 어떻게 아이비리그 이상으로 발전할 수 있었는지 대학에 깃든 프런티어 정신을 들어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어쩌면 스탠퍼드대학이 올림포스 언덕이라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부 아이비리그 대학을 모두 합친 것 이상으로 걸출한 창업가를 배출시킨 이 대학의 저력으로 들어가 보는 것은 충분히 의미 있었다.
실리콘밸리의 카페촌, 샌프란시스코와 게이타운, 요세미티와 서부개척촌. 이질적으로 보이는 이 조합은 맥락을 가진 서사를 가지고 있다. 그 서사의 중심은 ‘관용’이다. 오늘날 미국이라는 용광로를 세계 패권국으로 이끈 열원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맥락은 이렇게 이어진다. 금을 찾아 나선 서부개척시대가 자연을 있는 그대로 보존하자는 존 무어 트레일을 낳았고 이민자들의 도시 샌프란시스코는 관용(동성애)의 도시가 되었다. 실리콘밸리는 창업을 준비하는 사람들의 둥지이기도 하지만 실패자들의 재도약 둥지이기도 하다.
내가 욕망하는 것을 극단적으로 추구하지만 그에 따른 사이드이펙트도 돌아보고 다른 사람의 권리도 존중해 주고 재기할 시간도 주는 곳, 실리콘밸리가 '어른의 여행'에 적합한 이유다. 뉴욕이나 LA 등 다른 미국 도시처럼 각박하지 않아서 좋았다. 비록 물가는 살인적이었지만...
우리나라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의 레이다망은 워싱턴과 뉴욕만큼 샌프란시스코와 하와이에 집중한다. 두 지역이 150년 전 우리 조상들이 미 본토에 진입하는 중요 루트였고 여기서 안창호 이승만 등의 활동 무대가 열렸기 때문이다. 우리에겐 독립운동의 서사까지 담긴 곳이다. 수많은 아시아 이민자들의 통로가 되었던 샌프란시스코에 우리의 역사도 한 귀퉁이를 차지한다. 캐내려면 얼마든지 캐낼 것이 있는 도시다.
실리콘밸리는 한편으로는 현대 자본주의의 신전이지만 또 다른 의미에서는 패배자들의 도시이기도 하다. 페이스북이 시대의 흐름을 타지 못하고 쪼그라든 선마이크로시스템즈의 본사 건물을 인수하고 그들의 간판을 돌려서 사용하는 것은 ‘한 방에 훅 간다’는 이 바닥 게임의 법칙을 증거 한다. 무엇보다 패배자를 기다려 줄줄 아는 도시가 바로 샌프란시스코다.
실리콘밸리가 다른 곳보다 창업가들의 성지가 될 수 있었던 비결이 흥미로웠다. 그들이 개발한 것을 지켜줄 로펌이 발달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기술을 돈이 되게 만들어줄 마케팅회사도 발전했고. 실리콘밸리는 단순히 기술의 집적체가 아니라 기술의 부가가치를 높이는 기술의 집적체였다.
실리콘밸리와 샌프란시스코 반대쪽에 위치한 나파밸리와 인근 소도시들이 보여주는 백인 중산층의 행복은 실리콘밸리가 빚어낸, 반짝이는 쉼표다. 인간이 이루고 누리는 그 모든 서사를 샌프란시스코를 중심으로 나파밸리로 이어지는 소도시에서 볼 수 있었다. 단순히 나파밸리 와인을 마실 수 있어서가 아니라 그들 사이에서 삶의 여유를 즐기는 그 한순간이 좋았다.
여기는 자본주의의 신전이면서 또한 케렌시아구나. ‘캘리포니아에서 유작정 한 달 살아보기’를 기획해야겠다고 생각한 이유다. 우리가 보고 싶은 미국, 우리가 느끼고 싶은 미국, 우리가 훔치고 싶은 미국이 여기 집약되어 있구나, 확신이 들었다.
신익섭 요셈투어 대표님과 지난겨울 실리콘밸리를 중심으로 캘리포니아기행을 진행한 후 들었던 생각을 간단히 정리해 보았다. 빨리 CEO기행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다. 이 여행은 그들의 비즈니스에 좋은 발제가 될 것이다. 요세미티에 신 대표님이 구축한 멋진 산장과 목장을 활용해 '캘리포니아 한 달 살기'도 기획해 보려고 한다.
아메리칸 드림은 이제 더 이상 성공의 꿈이 아니다. 그 꿈 너머에 인간이 삶을 풍요롭게 하기 위해서 혹은 다른 사람들과 잘 어울리기 위해서 개발한 노하우가 담겨있다. '생애 전환 기술'로서의 여행을 고민하는 여행감독이 '은퇴 후 해외에서 유작정 한 달 살아보기' 장소로 캘리포니아를 낙점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