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오늘을 사는 리투아니아
발트3국 기행을 앞두고 발트3국 관광청 여행설명회에 다녀왔다. 여행기자도, 여행작가도, 여행사 대표도 아닌 나를 불러줘서 고맙게도 발트3국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었다.
여행 설명회는 흥미로웠다. 지난해 발트3국 답사를 다녀오고 가졌던 나의 선입견을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여행이란 먼 나라에서 우리와 비슷한 점을 발견하는 일이면서 또한 옆 나라 사이의 서로 다른 점을 발견하는 일이기도 하다. 여행설명회를 통해 지난해의 선입견을 더 굳힐 수 있었다.
발트3국을 우리식으로 비유하자면 발트의 고구려 신라 백제에 빗댈 수 있다. 제국의 기억이 있는 리투아니아는 고구려, 가장 미래지향적인 에스토니아는 신라 그리고 내가 가장 좋아하는 라트비아는 다소 고답적인 백제로. 세 나라 모두 인구 300만도 안 되는 소국인데, 차이가 선명하게 느껴진다.
미래지향적인 에스토니아답게, 발표 솜씨도 에스토니아 관광청이 압도적인 1위였다. 요즘 말로 '힙한' 포인트를 조목조목 짚어 주었다. 에스토니아를 위한 자리에 라트비아와 리투아니아도 추가된 느낌이었다. 반면 라트비아는 그냥 사람 좋고 인심 좋은 NL 분위기로. 리투아니아는 그냥 별책부록 느낌 정도였다.
3국의 수도 중 탈린(에스토니아)과 리가(라트비아)는 바닷가를 끼고 있다. 반면 리투아니아의 빌니우스는 내륙 한가운데 있고, 멋들어진 산과 계곡도 없다. 옆나라는 벨라루스와 폴란드, 소비력도 떨어지는 편이다. 육로로 오기에는 멀고, 비행기로 일부러 오기에는 포인트가 없고. 그냥 발트 3국이라는 시퀀스에 묻어가는 느낌의 도시다.
빌니어스는 '관광도시가 아닌 수도'로서의 매력이 있었다. 어디를 가든 들뜬 관광객이 아닌 차분한 현지인들이 즐기는 순간 속으로 파고들 수 있었다. 스톡홀름 구시가지가 그렇듯. 슬라브인들이 빚어낸 풍경 속에 들어가 있는 느낌이 참 좋았다. 관광도시가 아니어서 명품을 쇼핑하기에는 좋은 도시는 아니고.
하지만 외지인이 없는 게 리투아니아의 매력이다. 탈린이나 리가는 중심가를 외지인이 점유하고 있지만 리투아니아 중심가에서는 현지인이 누리는 문화를 볼 수 있다. 훨씬 더 깊이있게 경험하는 기분이다. 리투아니아 린넨 하나 사입고 시내를 걸어보자.
지난해 민속음악 축제를 할 때 리가를 방문해서 그런지, 리가는 '어제를 사는 도시'라는 느낌이 강했다. ‘젊은 도시, 탈린’과는 완전 대조적인 모습이었다. 리가 역시 곳곳에 모던한 건물을 짓고 있었지만 도시의 전체적인 톤 앤 무드가 탈린에 비해 고답적이었다.
여행감독으로 '쭈그렁 망탱이가 되어서 머물고 싶은 도시' 중 하나로 꼽는 리가의 풍경은 할배 할매들이 완성해 주었다. 바닷가와 강가, 어디든 자리를 깔고 인생의 여유를 즐겼다. 노년이 거리낌 없이 벗어 제끼는 곳이라면 가히 삶의 여유를 짐작할 수 있는 곳이다. 그들 옆에서 한적한 발틱 베이케이션을 즐길 수 있다는 것이 리가의 매력이다.
탈린은 젊은 도시였다. 튀지 못해 안달이 난 도시랄까, 그동안 공산주의에 얽매인 시간을 보상이라도 받으려는 듯, 도시 곳곳에서 힙질이었다. 에너제틱한 청춘을 어느 골목에서든 마주치는 도시가 바로 탈린이다. 구도심을 둘러싼 현대적인 건물들이 탈린이 미래를 향해 얼마나 바삐 달리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설명회 후 이어진 상담 시간에는 관광청 사람들에게 '발트3국에서 유작정 한 달 살아보기'에 적합한 곳을 추천받았다. 그중 몇몇 곳은 올해 답사 해보고 내년에는 스테이 모형도 구현해 보려고 한다. ‘시간이 멈춘 듯한 느낌’이 드는 발트 3국의 도시들은 한달살기에 제격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