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의 여행, 트래블러스랩’이라는 여행클럽을 만들어 본격적으로 해외여행을 진행한 지 딱 2년 째다. 시작하자마자 코로나를 맞아 2년 반을 공치고 2022년 8월 ‘몽골초원 은하수기행’으로 첫 여행을 시작했다.
아직 정규 비즈니스에 돌입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2년 만에 이 정도 라인업을 구축한 것은 제법 빨리 자리를 잡은 것이라고 자평한다. ‘사람을 남기는 것’에는 재주가 있는데 ‘돈을 남기는 것’엔 재주가 없어서…
여행클럽을 구축할 때 가장 신경을 많이 쓴 부분은 ‘좋게 행동하게 하는 구조’다. 다양한 모임을 주관했는데 그 경험을 토대로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모임 안에서 선의를 발휘할 수 있을지를 고민했다. 이 부분에서도 나름 자리를 잡아가는 것 같다.
사실 '여행에서 만난 사이'는 '좋게 행동하게 하는 구조'를 만드는데 유리하다. 비유하자면 함께 여행을 왔다는 것은 한국시리즈 때 기아타이거즈 응원석에 같이 앉아서 함께 기아를 응원한 일이라 할 수 있다. 유쾌한 목표를 공유하는 사이다.
같은 편을 응원하는 사이니, 앞 사람이 일어서서 경기장을 좀 가려도, 앞 사람이 그악스럽게 소리를 좀 질러도, 앞 사람이 술과 음식을 먹고 마셔도 양해가 된다. 심지어 앞 사람이 남긴 쓰레기까지 내가 기쁜 마음으로 치워줄 수 있다. 배려할 마음이 생기는 사이다.
물론 야구장을 나오면 우리는 모두 기아팬이 아니라 평범한 시민으로 되돌아 간다. 응원석에서 보여주었던 서로에 대한 친절을 기대할 수 없다. 여행의 인연도 비슷하다. 여행에서 서로 좋았으면 그것으로 족하다. 다들 '바쁜 현대 도시인'이다보니 여행에서 돌아오면 여행의 기억을 금방 잊고 여행에서 만난 사이도 멀어진다. '시절인연'이니까.
트래블러스랩 여행에 오는 사람들은 대부분 50대 이상이다. 인간관계에 있어서 견적이 끝난 사람들이다. 대부분 ‘이제 그냥 있는 사람들하고나 잘 지내자’로 자기 결론을 내린 나이다. 새로운 사람과 어울리려는 동기가 거의 없다.
그런데 여행은 인간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해 준다.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 같이 여행하는 사람에 대해서. ‘일로 만난 사이’가 아니라는 점도 긴장을 늦춰줘서 자연스럽게 타인의 삶을 들여다보게 된다.
진행자로서 자기 서사를 유도한다. 마치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자기 서사를 알게 되면 그 지원자를 응원하게 된 것처럼 그 사람의 서사를 알게 되면 그의 여행을 응원하게 된다. ‘이런 사람은 이 여행에서 좋은 시간을 가져야 해’
하버드대학의 인재상은 ‘기여하는 사람’이다. 트래블러스랩에서도 다른 사람의 여행에 기여하는 사람을 우대할 수 있도록 방안을 고려했다. ‘여행 프로듀서’ 제도도 그 일환이다. 기여하는 사람에 대한 보상을 계속 고민 중이다.
트래블러스랩의 장점은 ‘기여하는 사람이 많은 여행‘이라는 점일 것이다. 여행은 늘 ’ 불완전한 완전‘의 세계다. 준비만으로 완벽한 여행을 구현할 수는 없다. 변화무쌍한 현장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 간섭하지 않는 결속력‘이 필요하다.
트래블러스랩의 여행엔 빌런(혹은 진상)이 없을까? 없다고는 할 수 없다. 지금 현재 상황은 신청한 사람은 큰 하자가 없는 한 여행에 참여할 수 있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숙식을 함께 하기 때문에 대체로 일주일 정도 지나면 이런 인물의 윤곽이 드러나게 마련이다.
그래도 다른 여행에 비하면 강도가 약한 편인 것 같다. 그냥 조금 더 이기적인 정도. 나름 눈치도 보기 때문에 그리 티는 나지 않는다. 무엇보다 여행에 온 사람들이 싫은 티를 내지 않고 참아주기 때문에 수면 위로 강등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 다만 후일담은 남는다.
누구든 여행에서 진상이 될 수 있다. 자기가 가진 불만을 배려 없이 쏟아내기만 해도 요즘은 진상 취급을 받는다. 그런데 여행클럽이라는 커뮤니티가 있고 여행감독이라는 지휘자가 있어서 조금은 완충된다.
일상에서는 친해지기가 어렵지만 클럽 여행에서는 오히려 안 친해지기가 어렵다. 관계의 밀도가 일반 패키지 여랭보다 높은 편이다. 걱정되는 부분은 적당한 거리감을 유지하는 문제다. 예전 세대는 가까워지는 것은 무조건 선이었지만 지금은 거리감을 유지하는 게 오히려 핵심이다.
여행에서의 친근감은 인간관계의 착각 중 하나이기도 하다. 처음 간 곳에서 삼시세끼 같이 하면서 일정을 함께 하면 유대감이 엄청나다. 하지만 귀국하면 그 유대감은 금세 옅어진다. 야구장이나 축구장에서 한마음 한뜻으로 응원하고 난 뒤에 쿨하게 남이 되듯이.
그래서 ’선을 넘지 않는 배려‘도 중요하게 생각한다. 여행에서 돌아오면 다시 도시인의 고독도 품을 줄 알아야 한다. 그러면서 너무 가깝지도, 너무 멀지도 않은 ‘마음의 마을’이 만들어진다.
기자에서 여행감독으로 전업한 것은 나의 50대를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보내고 싶어서였다. 여행을 준비했던 2년 반 그리고 여행을 진행한 2년의 시간 모두 좋았고, 앞으로 더 좋을 것 같다. 아직 여행의 설렘을 잊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