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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추픽추로 가는 길, 그 위의 '오래된 미래'

오가는 길의 풍경이 목가적이었다

by 고재열 여행감독


마추픽추의 페루, 트래블러스랩 남미여행의 첫 번째 시퀀스가 끝났다. 페루 여행은 마추픽추에 이르는 지난한 여정이지만, 그 길의 풍경이 마음을 붙들었다. 안데스 농촌의 목가적인 풍경은 먼 길을 달려온 여행자의 노고를 느긋하게 풀어주었다. 어렵게 닿은 마추픽추, 안데스의 중턱에 한담 한담 쌓아놓은 잉카의 발자취를 더듬으며 남미 입문편을 기분 좋게 마무리했다.


마추픽추 가는 길의 풍경에 떠올린 곳은 운남의 고산마을 샤시였다. 샤시 강변의 미류나무처럼 안데스 강변의 유칼립투스 나무들이 목가적인 풍경을 만들어 냈다. 멈춰서 하염없이 걷고 쉬고 서성거리고 싶은 풍경이었다. 그냥 마추픽추만 보고 오면 되는 줄 알았는데, 그 길 위에 나를 붙드는 것들이 많았다. 풍경도, 유적도, 사람도.



이런 한적한 길을 달리다 소금 채취장이나 계단식 논밭을 군데군데 둘러보며 달리다보면 마추픽추의 대문 격인 오얀따이땀보에 도착하게 된다. 건기에는 쿠스코에서 이곳까지 기차로 달리는데 우기에는 기차가 중단되어 우리처럼 버스로 가게 된다.


오얀따이땀보에서 이른 저녁을 먹고 마추픽추행 산악열차에 올랐다. 정시에 출발해 길에서 연착하는, 인도 피난민 열차같은 그 열차를 타고 마추픽추에 도착한 시간은 예정된 시간을 세 시간 남짓 넘어 자정무렵이었다. 마추픽추는 이방인의 발길을 쉽게 허락하지 않았다.



마추픽추는 한마디로 표현하면 '세계 최고의 맹지'다. 두 시간의 유적지 관람을 위해 여러 날을 길에서 허비해야 한다. 하지만 그런 불편한 사치를 충분히 누려볼만한 곳이다. 길 위의 풍경도 좋았고 무엇보다 마추픽추가 너무나 매력적인 유적지이기 때문이다. 인간이 버리고 떠난 유적지에서 그토록 인간의 숨결이 따뜻하게 느껴졌던 곳은 없었던 것 같다.

마추픽추라고 불러야 할지, 마추피추라고 불러야 할지 모르겠다. 다녀간 사람은 마추피추라고 부르곤 하던데, 우리 가이드 알렉스는 피추가 ‘꼬추’라고 말하기도 하고. 마추픽추는 와이나픽추와 마찬가지로 봉우리 이름이지 유적지 이름이 아니라고도 하고. ‘잉카‘라는 이름도 민족 이름이 아니라 스페인에서 이곳 왕족을 이르는 말, 이를테면 일제가 조선을 ‘이왕가‘라고 낮춰 불렀던 것과 같은 것이라고도 하고. 도무지 모로겠다.



마추픽추의 용도도 불분명하다. 마추픽추가 잉카 왕의 피서산장이라고도 하고, 혹은 망명정부라고도 하고. 쿠스코보다 고도가 더 낮은 곳을 여름에, 더군다나 우기에 올리가 없으니 피서산장은 아닌 것 같고(온다면 더 따뜻한 곳을 찾아 겨울에), 스페인과 큰 전투를 벌인 오얀따이땀보에서 더 깊은 곳에 있으니 망명정부일 수도 있겠는데, 기록이 묘연하니…


분명한 것은 이곳이 ’세계 최고의 맹지‘라는 사실이다. 리마에서 쿠스코로 비행기로 들어가서, 우기에 운영하지 않는 기차 대신 단체 버스를 타고 오얀따이땀보에 가서, 가다 서다를 반복해 3시간 이상을 연착한 기차를 타고 마추픽추 아랫마을로 가서, 자고 일어나 전용 셔틀버스를 타고 가서, 다시 한참을 걸어 올라가야 볼 수 있는 곳. 마추픽추는 맹지의 전설이다.



보통 마추픽추 유적지 답사는 이른 아침에 진행된다. 우리도 이른 아침을 먹고 서둘러 나왔다. 다행히 날씨가 맑았다. 우기엔 곰탕인 날이 많아서 마추픽추까지 와서 허탕을 치고 가는데 우리가 간 날은 청명했다. 산천은 의구한데 인걸은 간 데 없는 마추픽추를 4K 화면으로 감상했다.


이번 남미기행을 현지 진행해주시는 포비님(이대호) 말에 따르면 마추픽추에 대한 설명은 가이드마다 다르다고 한다. 정확한 기록이 남지 않아서 그렇겠지만, 마추픽추의 건설 이유부터 다르다니 조금 정돈이 필요한 것 같다. 가이드마다 설명이 다르면 마추픽추에 다녀온 사람마다 다른 내용을 듣고 오게 되니까.



청명한 하늘 아래 마추픽추를 보니 ’천혜의 입지‘라는 표현은 이곳을 위해 만들어진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둘러싼 산들이 위압적이지 않고 마치 품어주는 듯한 느낌이었고 와이나픽추와 마추픽추 사이의 능선 가운데 펼쳐진 제법 넓은 구릉에 마추픽추가 마치 콘도르의 둥지처럼 들어서 있었다. 마추픽추를 호위하는 고산 사이로 티티카카 호수에서 아마존으로 가는 강물이 휘돌아 나간다.



가진 것이라고는 돌 쌓는 재주밖에 없던 잉카 장인이 한땀 한땀, 아니 만땀 만땀 흘리면서 가파른 절벽 옆에수 쌓아올린 수많은 석축이 이방인의 마음을 숙연하게 했다. 세상의 끝에 이런 곳이 있구나, 내가 이런 곳을 볼 수 있구나, 감탄하게 만드는 곳. 잉카인의 숨결이 느껴져서 좋았다.



마추픽추 아랫마을은 스위스 체르마트나 히말라야 포카라를 떠올리게 하는 산악마을이었다. 하지만 트레킹 애호가들이 많이 보이지는 않았다. 마추픽추는 잉카 트레일의 기점이기도 한데 다음에는 잉카트레일을 걸으며 유적지를 둘러싼 봉우리들을 마저 올라가 보기로 마음 먹었다.


마을 산책을 하다 온천을 발견했다. 안데스산맥 역시 환태평양 지진대에 속하는 곳, 당연히 온천도 있을 수밖에, 마을을 서성이다 우연히 발견한 안데스 온천엔 주로 페루인들의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온천수 온도는 37도 내외, 그리 높은 편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 산골에 온천이라니, 코카서스 보르조미 노천 온천처럼 반가웠다. 발을 담그고 족욕을 즐기고 있는데 관리자가 나와 수영복으로 갈아 입은 사람만 온천에 들어갈 수 있다고 제지했다.



마추픽추에 오기 전까지 사람들이 왜 그렇게 마추픽추에 가고 싶어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리고 임시 주거지 성격인 마추픽추의 석축 완성도는 잉카의 수도였던 쿠스코에 비해 떨어졌다. 쿠스코에는 더 큰 돌로 더 정교하게 쌓은 석축이 얼마든지 있었다. 하지만 마추픽추가 주는 그 행복한 느낌, 천국에 가까워진 듯한 느낌은 그 어디도 흉내내지 못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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