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 번째 돌로미테 트레킹 중이다. ‘어른의 여행, 트래블러스랩’에서는 초여름과 늦여름에 한 번씩 돌로미테 트레킹을 진행하는데 늘 만원이다. 매년 가장 빨리 마감되는 여행이 바로 돌로미테 트레킹이다.
알프스도 있고 히말라야도 있고 요세미티와 로키도 있는데, 왜 유독 돌로미테로 사람이 몰릴까? 특히 은퇴자들에게 인기다. '돌로미테에서 무작정 한 달 걸어보기'를 하는 은퇴자들이 주변에 많다. 점점 더 돌로미테 인기가 높아지는 이유가 뭘까? 열 가지 정도 이유를 꼽아 보았다.
하나, 구릉 지형이 발달해 있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고산 지역은 산이 높은 만큼 골이 깊다. 그래서 밸리 단위로 시야가 좁아진다. 그런데 돌로미테는 구릉이 발달해 시야가 장쾌하게 열린다. 히말라야나 알프스에 비해 낮은 산이지만 돌로미테가 인기 있는 결정적 이유다.
둘, 융기형 지형이다. 돌로미테에 가면 설악산 울산바위 같은 암반지형이 100개 정도 있다. 그중 열 개 정도는 10배 정도 더 크고. 토산보다 암산을 좋아하는 한국인에게 매력적인 지형이다. 특히 암반이 융기되어 기승전결에서 결이 더 극적이다.
셋, 수목한계선이 최적의 고도에 형성되어 있다. 돌로미테 봉우리들은 2500~3000m 내외가 대부분이다. 수목 한계선이 2000m 내외에 형성되어 있어서 이를 따라 걸으면 더위를 피하기도 쉽고, 풍경을 보기에도 유리하다.
넷, 기후다. 대부분의 고산은 여름에 구름이 걸려있어 정상부가 안 보이거나 비가 오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지중해성 기후에 속하는 돌로미테 지역은 여름에 건조한 편이다. 비가 와도 하루 종일 오는 경우는 거의 없다. 특히 청명한 하늘을 볼 수 있는 초가을 돌로미테는 무척 매력적이다.
다섯, 편의시설과 접근성이다. 돌로미테 지역의 최성수기는 여름 트레킹 시즌이 아니라 겨울 스키 시즌이다. 스키장이 두루 발달해 있어서 케이블카/곤돌라/리프트가 많다. 이런 것들을 타고 고도가 높은 고도에서 트레킹을 하면 업힐 부담을 줄일 수 있다. 2000m 안팎 지점까지 차나 곤돌라/리프트 등을 이용해 접근할 수 있다.
여섯, 숙소다. 굳이 불편한 산장을 이용하지 않아도, 편리한 산악호텔을 이용하면서도 트레킹을 할 수 있다. 대부분의 호텔들이 사우나를 운영하고 있어서 피로를 풀기도 좋고. 이탈리아 남부만큼은 아니지만 식사도 맛있게 할 수 있다. 하프보드 방식으로 정찬 저녁식사를 제공하는 곳들도 많고. 저녁엔 휴양지에 온 것처럼 멋진 숙소에서 쉴 수 있다.
산악도시가 두루 발달해 있다. 코르티나담페초, 오르티세이, 카나제이, 포자 등 규모 있는 산악마을이 많아서 필요한 물품도 조달할 수 있고 트레킹 후 쇼핑이나 여가도 즐길 수 있다. 마을 하나하나를 찾아다니는 재미가 있다. 트레킹 후에 기분 커피 한 잔 혹은 맥주 한 잔 마실 수 있는 곳들이 많다.
일곱, 물가다. 알프스의 다른 나라, 프랑스나 스위스나 오스트리아에 비해 저렴한 물가가 돌로미테의 강점이다. 호텔 레스토랑에서도 25~30유로 정도면 와인 한 병을 마실 수 있다. 물가가 비싸지 않으면 참가자들끼리 서로 인심이 후해진다. 서로 인심이 후해지면 여행 분위기도 좋아지고.
여덟, 산악문화가 두루 형성해 있다. 돌로미테 트레킹 전에 메스너 산악박물관에 꼭 들른다. 히말라야 14좌를 최초 완등한 라인홀트 메스너가 만든 박물관이다. 단지 이 산악박물관에 들르는 것만으로 ‘인문트레킹’이 되기 때문이다. 누구든 이 산악박물관에 다녀오면 가벼운 질문 몇 개는 품고 나오게 된다.
아홉, 레포츠의 왕국이다. 트레킹뿐만 아니라 사이클 모토사이클 페러글라이딩 윙슈트 등 다양한 레포츠를 경험할 수 있다. 내가 건강한 사람들 속에서 건강한 활동을 하고 있다는 만족감이 생긴다. 풍경 좋고 인심 좋은 곳에서 내가 건강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라는 생각이 들게 만든다.
열, 위치가 나름 유럽의 중심이어서 다른 여행과 연결이 쉽다. 베니스 베로나 등 이탈리아 도시를 여행하기도 좋고 오스트리아 독일 스위스 등으로 렌터카 여행을 하기에도 좋은 위치다. 밀라노 공항 등 거점공항도 가까워서 다른 유럽 지역으로 항공 이동하기에도 좋고.
6월은 야생화! 9월은 하늘!
돌로미테 트레킹을 할 때 7-8월 성수기는 피한다. 단체 숙소/식사 예약이 원활하지 않고, 수목한계선 위에서 직사광선을 피하기 위해서도 그렇고.
성수기를 피하면 좀 여유가 생긴다. 그런데 6월의 노림수가 들꽃이라면 9월의 노림수는 하늘이다. 이맘때 돌로미테 하늘은 억만 불짜리다. 이번 트레킹이 특히 그랬다. 눈호강 제대로 하고 간다.
돌로미티 트레킹 인기가 폭발인데, 정작 돌로미티에서 한국 관광객을 마주치는 일은 거의 없다. 세체다 전망대와 트레치메 그리고 오르티세이와 코르티나담페초 등 한국인들이 오는 곳은 정해져 있다. 덕분에 우린 여유를 만끽할 수 있었다.
돌로미티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건강’이다. 돌로미티를 걷다 보면 늘 만나는 사람들이 건강한 사람들이다. 걷거나, 자전거를 타거나, 패러글라이딩을 하거나, 암벽을 타거나, 다양한 레포츠를 하며 건강을 즐긴다.
어디를 가나 땀이 흐른다. 그 땀은 노동의 땀만큼 매력적이다. 건강을 즐기기 좋은 곳. 건강한 노년! 건강한 가족! 건강한 연인! 관광지와 다른 점은 그렇게 많은 사람이 와도 밤이 조용하다는 것. 낮에 에너지를 쏟아부으니 밤엔 자느라 정신없다. 돌로미테의 밤은 차분하다.
주) '어른의 여행, 트래블러스랩'은 여행사가 아니라 여행클럽입니다. 클럽 멤버들끼리 멤버십 여행을 합니다. 여행클럽에 관심 있는 분들은 등록회원에 가입하시면 여행 소식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등록회원은 따로 회비같은 것은 없습니다.
https://forms.gle/brdomVBd2oxu6De2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