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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재열 여행감독 Jan 13. 2021

섬에 통달한 삼도미식통제사 강제윤

아마 대한민국에서 가장 잘 먹고 다니는 사람이지 않을까


갤러리 입구에는 오렌지색 지붕의 작은 집 두 채가 외로워 보이는 수항도 사진이 걸려 있었다. 윗집과 아랫집에 살던 할머니 두 분 모두 육지 요양원에 간 뒤 빈집이 되었다. 무인도가 된 섬에서 할머니가 두고 간 개 한 마리가 굶고 있었다. 시인은 그 개를 거두어 뭍으로 데려갔다.     


다른 사진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냥 풍경 사진이 아니었다. 시인에게 시 한 편씩을 안긴 섬살이의 고단함이 그대로 담겨 있었다. 시인이 들려준, 사진 뒤의 긴 사연이 하나씩 떠올랐다. 섬을 스쳐 지나가는 사람이 찍을 수 있는 사진이 아니었다. 사진에서, 축적된 시간이 느껴졌다. 은빛을 넘어서 금빛이 된 바다 등 기다리는 자만이 볼 수 있는 다양한 빛이 담겨 있었다.     


섬은 모순의 공간이다. 섬사람들은 해의 시간과 달의 시간을 모두 맞춰 살아야 해서 육지 사람들보다 두 배 더 바쁘게 사는데, 섬에 온 사람들은 고즈넉한 풍경에 ‘시간이 멈춘 듯한 느낌이 든다’고 말한다. 시인의 사진에는 그런 모순이 그대로 담겨 있다. 분명 고된 노동을 담은 사진인데 더없이 목가적이었다.    


 

강제윤 소장 사진 1


사진을 찍은 사람은 강제윤 시인, 사단법인 섬연구소 소장이다. 2019년 섬의 날(8월8일)을 맞아 인사동에서 열었던 전시(<당신에게 섬>)에 걸린 사진들이다. 지난 20여 년 동안 섬 400여 곳을 방문하며 찍은 사진 50여 점을 전시했다. 그와 함께 했던 신안 흑산도와 고흥 연홍도 사양도 애도와 보성 장도와 통영 연대도 만지도의 좋았던 순간들이 떠올랐다.       


강 시인은 섬의 안내자이자 섬사람들의 대변자이며 다양한 섬 정책의 제안자이다. 섬학교 교장을 자처하며 지난 8년 동안 매월 1회씩 연인원 3000여 명을 데리고 섬 답사를 진행했다. 그의 강의실은 섬의 골목과 언덕과 부두였다. 언제 어느 장소에서든 라디오처럼 섬의 이야기와 섬사람들의 사연이 흘러나왔다.      


시인은 오랜 세월 섬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싸워온 투사이기도 하다. “33일간의 단식으로 보길도 고산 윤선도 유적지를 지켜냈고, 도로공사로 소멸될 뻔한 여서도 돌담을 보존했으며, 대기업에 매각될 뻔한 관매도 폐교 또한 지켜냈다. 지금은 백령도의 천연기념물 사곶해변 살리기 운동을 하고 있다. 섬을 알면 알수록 싸울 일이 많아졌다.”      


그래서 강 시인과 섬에 함께 가면 VIP 대우를 받는다. 특히 섬밥상은 감동적이다. 소박하지만 그 섬에서만 구할 수 있는 재료로 그 섬에서만 볼 수 있는 방식으로 요리하는 음식을 맛볼 수 있다. 나는 그런 그를 '삼도미식통제사'라고 부른다. 미슐랭 쓰리 스타 레스토랑만 돌아다니며 먹는 사람보다 나는 강 시인이 만 배 정도 더 부럽다. 

     

언제부턴가 그는 섬정책가의 길을 걷고 있다. 지난해에는 국가적인 섬 정책 컨트롤타워를 설립할 필요가 있다며 국회에서 섬 포럼을 개최하기도 했다. 그는 “국회의원과 행정부 간부들이 두루 참석한 포럼에서 되도록 마이크를 섬사람들에게 주었다. 산 넘고 물 건너오신 그분들이 고충을 토로하고, 무의미한 토목사업 말고 진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직접 말할 수 있도록 했다”라고 말했다.     


또한 그는 남해안 곳곳에 진영을 구축하고 있다. 자발적 지역 재생의 모범 사례로 꼽히는 ‘괜찮아마을’의 최초 제안자도 그였다. 목포 구도심의 낡은 여관 건물을 내주며 ‘청년들이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해보라’며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 그가 내민 마중물이 이제 파도가 되어 목포를 뒤덮고 있다.


       

강제윤 소장 사진 2


그의 발은 부지런하다. 대동여섬지도라도 그릴 것처럼 이 섬 저 섬을 옮겨 다닌다. 그렇게 해서 길도 새로 발견하고 식생과 풍습도 익히고 신화와 설화를 발굴한다. 집채만 한 고래와 마당만 한 가오리, 염소를 통째로 삼키고 바다로 사라진 구렁이 이야기를 건졌다. 눈 밝은 그는 섬을 배회하다 ‘살아 있는 신화’를 발견하기도 했다. 상노대도 탄항마을의 한 노인이 돛단배를 타고 고기를 잡는 모습을 본 것이다. 관광용도 아니고 촬영 용도 아닌 정말 물고기를 잡는 돛단배였다.     


그런 신화와 설화에서 그가 읽어낸 것은 개별적으로 보이는데 묶어서 보면 공통점이 많다는 것이었다. 그는 “섬 답사를 하다 보면 깜짝깜짝 놀랄 때가 많다. 제주의 설문대 할망처럼 통영에는 마구 할미라는 창조신이 있는데 둘 다 여성이다. 이는 지리산의 마고할미 설화와도 유사하다. 큰 틀에서 연결된다. 오누이 설화도 유사한 양식으로 전국의 섬들에 산재해 있다. 떨어져 있는 섬들에서 이런 공통점을 보이는 것이 재미있다”라고 말했다.     


그는 섬을 찾아야 할 이유를 섬이 신화와 설화 속으로 들어가는 문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신화가 사라진 섬은 더는 신비롭지 않다. 신비가 없다면 삶 또한 더는 신비로운 것이 아닐 터. 도시의 삶이 신비감을 잃은 것은 이미 오래전이다. 섬이 신비를 잃은 도시민들에게 삶의 신비를 되살려주는 역할을 할 수 있다면 이 또한 얼마나 신비로운 일이겠는가.”     


강제윤 소장 사진 3


매일같이 섬 이야기를 페이스북에 올리고 매년 섬에 관한 책을 내는 그의 바람은 사람들이 섬을 찾아 그 아름다움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섬을 멀게 느끼는 도시 사람들에게 그는 “‘섬은 육지다’라고 생각을 바꿔야 한다. 심리적으로 멀게 느낄 뿐이지 실제로는 그렇게 멀지 않다. 왜 차로 서너 시간씩 가는 것은 자연스럽게 여기면서 배로 한 시간 가는 것은 멀게 느끼나?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다. 경험으로 극복할 수 있다. 섬이 주는 불편함은 감내할 만한 가치가 있다”라고 말했다.     


코로나19 재확산으로 가장 아쉬웠던 것 중 하나는 겨울여행이 취소되어 통영에서 그를 만날 수 없다는 점이었다. 남해안 일대가 그의 무대지만 통영은 각별하다. 가장 오래 머무른 곳이기 때문이다. 보길도 출신이지만 그의 통영 사랑은 남다르다. “통영은 경상도가 아니다. 삼도 수군 통제영이 있던 이곳은 예전부터 팔도의 장인이 모인 곳이었다. 그래서 음식도 맛있다. 이곳은 특별자치구였다. 격이 없이 두루 교류하던 곳이다.”     


통영은 언제나 좋지만 겨울에 제격이다. 그는 겨울에 통영에 꼭 한번 오라며 “겨울이 통영의 섬을 방문할 적기다. 물고기들도 겨울을 나기 위해 겨울에는 남쪽 바다로 온다. 그리고 겨울을 버텨내기 위해 살을 찌운다. 그래서 기름지고 맛있다. 그렇게 배를 채우고 바닷바람을 맞으며 걸으면 이른 봄을 느낄 수 있다”라고 말했다.      


아~ 통영에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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