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재열 여행감독 Jun 13. 2021

관광작가와 여행작가 그리고 백종원식 여행 연출

라면에 김치를 넣고 끓이던 사람에게 김치찌개를 만들어 보게 하는 사람

      

백종원의 존재 의의를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답하겠다. '라면에 김치를 넣어서 김치라면을 끓일 사람을, 그 김치로 김치찌개를 만들어 보게 하는 사람'이라고. 이게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백종원의 존재 또한 의미가 있을 것이고 라면이나 김치찌개나 거기서 거기지, 하는 사람이라면 백종원의 존재는 의미가 없을 것이다.     


선택된 소수의 사람을 위해 최고급 요리를 내놓는 요리사가 더 의미가 있을까? 아니면 보다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더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먹을 수 있도록 이끄는 요리사가 더 의미가 있을까? 여기에 대한 판단은 각자의 가치관에 따라 다를 수 있다. 물론 나는 후자다.       


내가 구분하는 요리사의 등급은 세 가지다. 하나, 나에게 맛있는 요리를 만들어 주는 요리사다. 둘, 나를 똑똑한 음식평론가로 만들어 주는 요리사다. 셋, 나를 좋은 요리사로 만들어 주는 요리사다. 1)번은 한 끼를 즐겁게 해주고, 2)번은 영혼을 즐겁게 해주고, 3)번은 영원히 즐겁게 해주기 때문이다.     


백종원은 '일단' 세 번째에 속한다. 백종원은 우리가 음식점에서 사 먹는 음식을 만드는 요리사를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그 음식을 집에서 해먹을 사람들에게 팁을 알려주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요리사로서 그를 평가하는 것보다, 요리트레이너로서 평가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요리트레이너로서 그는 가성비 높은 요리를 지향한다. 물론 여기에는 비판의 지점이 있을 수 있다. 조미료에 의존하고 소스의 강한 맛으로 '우주의 얕은 맛'을 지향하는 그에게 비판이 없을 수 없다. 백종원식 요리 접근법은 정통 셰프의 접근법은 아니다. 아마 요리사라면 김치찌개에 대해서 '네 김치를 믿어라'라고 말할 것이다. 그러면서 김치 본연의 맛을 살리는 조리법을 추천할 것이다. 하지만 세상에는 맛없는 김치가 천지삐까리인지라 백종원식 접근법도 나쁘진 않다. 사실 가정에서 주부들은 대부분 백종원식 조리법을 취한다. 특히 바쁜 현대생활에 찌든 도시의 맞벌이 주부는 더욱 그렇다.      


나는 궁극의 요리사는 '자기 자신'이라고 생각한다. 매일 집에서 형편없는 요리를 먹으면서 맛집을 순례한들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자기 자신을 위한 요리를 만드는 길은 자기 자신의 취향을 찾아가는 길이기도 하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를 알면 더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다.      


그 길에서 백종원은 한번쯤 만날만한 사람이다. 요리라는 번지점프에 대해 겁을 덜어주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특히 우리나라처럼 맛없고 성의 없는 음식이 팽배한 상황에서는 이런 팁이 필요하다. 집에서 조금만 신경 써서 만들어보면 식당에서 우리가 얼마나 형편없는 음식을 먹고 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백종원에서 머물러서도 안 된다. 그것은 일종의 응급처치법이기 때문이다. 걱정할 것 없다. 백종원을 극복하면 사람들은 더 나은 스승을 스스로 찾아 나설 것이다. 혹은 스스로 임지호가 되거나.    


  


내가 여행을 연출하는 마인드가 바로 백종원식 조리법과 같다. 김치라면을 끓이던 사람에게 김치찌개를 끓여보도록 유도하는 것. 여행을 기획할 때 맛집만 찾고 경치 좋은 곳만 보여주는 것은 김치라면을 끓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여행이 아니라 단순한 관광을 기획하는 것이다. 여행에 작은 마법을 하나 넣어서 의미를 발생시켜보는 것이 여행 기획이다. 현지의 형편과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대처하는 것이 여행 연출력이고.      


관광은 단순한 즐거움을 주지만 여행은 그보다 복합적인 기쁨을 준다(‘향부숙’을 운영하는 강형기 교수님은 관광을 즐거울 락으로, 여행을 기쁠 희로 해석했다). 즐거움은 오감의 감각을 자극하면 얻을 수 있다. 기쁨은 그것을 넘어서 두뇌의 만족을 꾀한다. 즉 의미가 있는 즐거움이 기쁨이다. 관광이 주는 것이 즐거움 이상의 여행이 주는 기쁨을 얻을 수 있도록 고민해야 한다.      


가끔 자신을 여행작가라고 소개하는 관광작가들을 본다. 자신이 경치 좋은 곳과 맛집을 많이 알고 있다는 것이다. 현지인 맛집을 알고 있다는 둥 숨은 비경을 알고 있다는 둥 자신을 홍보한다. 비유하자면 그것은 여행이라는 라면에 김치 대신 문어나 전복을 넣는 정도의  일이다. 그래 봤자 문어라면이고 전복라면이다. 그것을 '어떻게' 여행으로 견인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지 못한다면 요리사가 아니다.  


관광작가는 사람들에게 효과적이고 효율적인 소비자가 되라고 한다. 여행작가는 그들이 소비자가 아니라 누군가의 손님이 될 수 있도록 이끌어준다(그것이 늘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의 손님이 되려면 관계 맺기가 되어야 한다. 적절한 사람들을 적절한 방식으로 적절한 만큼 관계 맺게 해주는 것이 여행의 기술이다. 현대 사회가 개인주의화 되고 있어서 '여행을 통한 느슨한 연대'는 더욱 귀해졌다. 현대인들은 다들 '나만의 심야식당'을 원한다.      


객관적인 데이터는 지자체 홈페이지만 들어가도 충분히 얻을 수 있다. 그리고 웬만한 블로거들도 필요한 정보를 일목요연하게 잘 정리해준다. 여행을 기획할 때 나는 이런 관광작가를 참고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현지의 한량이 훨씬 유용하다. 현지인도 아닌 관광작가가 소개하는 맛집은 이미 ‘현지인 맛집’이 아니고 그가 알고 있는 비경도 ‘숨은 비경’이 아니니까.      


여행작가에게 우리가 요구하는 부분은 관점이다. 그가 어떤 관점으로 그곳을 여행하고 그래서 어떤 감상을 얻을 수 있었느냐 하는 부분이다. 관점이 쌓이는 만큼 우리는 다양한 여행의 결을 얻을 수 있다. 또한 다양한 여행 경험을 통해서 그 여행지의 심상을 그려줄 수 있는 여행작가라면 존중한다. 우리는 단순한 정보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깊이 있는 관점이 필요한 것이다.      


여행감독을 자처하며 늘 백종원을 생각한다. 나와 여행을 다닌 사람들이 스스로 여행감독이 되고 있는가에 대해 늘 자문한다. 다행히 좋은 답을 얻고 있다. 그들이 스스로를 위한 혹은 다른 누군가를 위한 좋은 여행감독이 되고 있는 모습을 자주 목격하곤 한다. 코로나19 집합금지가 풀리면 그들이 더 맹렬하게 활약하길 기대한다. 우리는 모두 백종원처럼 나를 위해 혹은 내 주변 사람들을 위해 최고의 여행감독이 될 수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김부겸, 4만불 시대의 2만불 총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