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모습을 보며
내년이면 여든 넷. 아버지는 여전히 성당 건반 앞에 앉으신다.
어린 시절, 시골 성당을 지나다 우연히 들린 풍금 소리에 반해 그 앞에 섰던 꼬마 소년. 그 누구도 가르쳐주지 않았지만, 하루도 빠짐없이 성당을 찾아가 건반을 하나씩, 둘씩 눌러보며 음감을 터득해갔다는 아버지. 그때 그 소년의 눈빛이 지금도 궁금하다.
아버지의 재능은 결국 연세대 성악과 입학으로 이어졌다. 시골에서 연세대라니, 온 동네의 자랑거리였다고 했다. 하지만 재능과 열정만으로는 대학 등록금을 감당할 수 없었다. 1년 만에 자퇴하셨다는 그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아버지가 얼마나 아팠을까 싶다.
그 후 아버지는 성당으로 돌아가셨다. 반주 봉사, 성가대 지휘. 거기서 엄마를 만나 결혼하시고, 우리 오남매를 낳으셨다.
내 어린 시절 기억은 늘 '돈' 이야기로 얼룩져 있다. 엄마와 아버지는 끊임없이 다투셨다. 아버지는 틈만 나면 성당으로 향하셨고, 엄마는 난전에서 이것저것 팔며 다섯 남매를 키우셨다. 그때는 아버지가 너무 원망스러웠다. 엄마 혼자 아둥바둥하시는 모습이 억울했고, 왜 아버지는 돈벌이에는 무심한지 이해할 수 없었다.
착하다는 말을 들으며 자란 나는 자연스럽게 엄마의 위로가 되어주었다. 엄마는 때로 내게 아버지에 대한 서운함을 토로하셨고, 어쩌면 그것이 내가 오랫동안 아버지를 원망하게 된 이유였는지도 모르겠다. 엄마의 눈물을 닦아드리면서, 나는 점점 아버지를 이해하지 못하는 딸이 되어갔다.
그런데 나이를 먹고 보니,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평생을 성당에서 건반을 치며 사신 아버지 덕분에 우리 오남매는 신앙 안에서 올곧게 자랄 수 있었다. 경제적으로는 무능해 보였을지 몰라도, 아버지는 다른 방식으로 우리를 지켜주셨던 거였다. 하느님 안에서 기쁘고 평안하게 사신 그 마음이, 팍팍한 삶 속에서도 우리가 비뚤어지지 않게 해준 힘이었다.
여든셋의 나이에도 정정하게 건반 앞에 앉아계신 아버지. 어제도 성당 기도회에서 기쁨 가득한 미소로 건반을 두드리시는 모습을 봤다. 그 선한 미소는 풍금 소리에 반했던 어린 소년의 그것과 다르지 않았다.
이제는 안다. 진정한 행복은 세상이 말하는 성공이 아니라, 자신이 사랑하는 것을 평생 해낼 수 있는 것이라는 걸. 마르지 않는 열정으로 한평생을 살아오신 아버지를 보며, 원망 가득했던 철없던 여고생은 이제 중년이 되어 비로소 아버지의 인생을 이해하게 되었다.
아버지,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