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아가는 새를 보며
쌀쌀한 아침 공기를 가르며 걷다가 문득 고개를 들었다. 하늘 위로 두 마리의 새가 총알처럼 빠르게 날아가고 있었다. 그 자유로운 비행을 보는 순간, 이상하게도 마음 한구석이 무거워졌다.
저 새들은 아무 걱정 없이 저리 날아가는데, 나는, 우리는 왜 이렇게 많은 것들을 짊어지고 사는 걸까.
우리가 스스로 만드는 감옥
생각해 보면 참 아이러니하다. 걱정, 두려움, 불안... 이 모든 감정의 무게는 사실 우리 스스로가 만들어낸 것일지도 모른다. 똑같은 상황도 어떤 의미를 부여하느냐에 따라 행복이 될 수도, 불행이 될 수도 있으니까.
최근 소송 문제로 힘들어하는 지인을 보며 이 생각이 더 깊어졌다. 그녀의 얼굴에는 근심이 가득했고, "발 뻗고 자기 힘들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하지만 동시에 안타까웠다. 걱정과 한탄만으로는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우리는 왜 그 자리에 머물러 있는 걸까.
문제는 해결하라고 있는 것
문제 앞에서 몸살을 앓는 대신, 관점을 바꿔보면 어떨까.
만약 이 소송이 나에게 무언가를 돌아보게 하는 신호라면? 혹시 내 안에 미처 보지 못했던 부분이 있다면, 이것이 그걸 깨닫게 하는 기회라면? 그렇게 생각하면 스트레스는 성장의 동력이 되고, 고통은 성찰의 시간이 될 수 있다.
불행이 아니라 긴장으로, 고통이 아니라 성장의 계기로 받아들일 수 있다면, 같은 상황도 전혀 다른 의미를 갖게 된다.
나의 일상에 적용하기
이 생각은 곧바로 내 삶에도 적용됐다. 큰아이가 약속과 책임을 잘 지키지 못할 때마다 나는 속이 상했다. "왜 이렇게 말을 안 듣지?" "문제가 있는 건가?"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하지만 관점을 바꿔보니 달라졌다. 이건 아이를 '문제아'로 규정할 일이 아니라, 아이와 함께 연습하고 성장할 기회였다. 아이를 훈육하면서 나 또한 인내와 이해를 배우는 시간. 그렇게 생각하니 실랑이의 시간이 무조건적인 부담만은 아니었다.
새처럼, 자유롭게
오늘 아침 본 그 두 마리의 새처럼, 나도 좀 더 가벼워지고 싶다.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을, 상황에 부여하는 의미를, 나에게 유익한 방향으로 선택하고 싶다.
물론 쉽지 않을 것이다. 오랜 습관처럼 굳어진 생각의 패턴을 바꾸는 건 분명 어려운 일이다. 그래도 노력해보려 한다.
우리가 날개를 가지지 못한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스스로를 무겁게 만들 필요는 없으니까. 어쩌면 진짜 자유는 하늘을 나는 데 있는 게 아니라, 우리가 세상을 어떻게 보느냐에 달려 있는 것 같다.
오늘도, 조금 더 가벼운 마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