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할 줄 알았던 그날

000을 무조건 맹신하다 결국...

by 그로우루샤

"이제 퇴고 마무리하고 출판사에 투고해 보세요."


글쓰기 지도강사님의 한 마디에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드디어 내 원고를 세상에 내보낼 때가 온 것이다. 나는 곧바로 근처 대형 서점으로 향했다. 출판사 정보를 수집하기 위해서였다.

이틀에 걸쳐 책 뒤편의 출판사 정보를 하나하나 사진으로 찍었다. 100개의 출판사 이름과 이메일 주소. 손가락은 아팠지만 마음은 벅찼다. '이 중 한 곳에서라도 연락이 오면...' 상상만으로도 가슴이 두근거렸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100개의 사진을 보며 하나하나 타이핑을 쳐야 한다니. 솔직히 말하면, 너무 귀찮았다.


그때 떠오른 구세주, ChatGPT.


"이 정도는 지피티가 완벽하게 해 주겠지."


나는 아무 의심 없이 사진들을 업로드했고, 지피티는 순식간에 깔끔한 엑셀 파일을 만들어주었다. 완벽해 보였다.

12시 전에 보낸 100통의 메일


아이들을 등교시키자마자 책상 앞에 앉았다. 출간기획서와 원고를 첨부해 하나씩, 정성스럽게 메일을 보냈다. 점심 12시 전까지 100개 출판사 모두에게 발송 완료.


'해냈다!'


뿌듯함에 젖어 있던 것도 잠시, 메일함에 빨간 경고 메시지들이 하나둘 뜨기 시작했다.


"발송 실패"

"발송 실패"

'발송 실패"


40개. 무려 40개의 메일이 발송 실패로 돌아왔다.


"이게 무슨 일이지?"


당황한 나는 급히 강사님께 연락을 드렸다.


"제가 조사한 이메일 100개 중 40개가 발송실패로 나오는데 어떡하죠?"


"그거 직접 서점 가서 조사하신 거 맞죠?"


"네, 직접 찍어왔어요."


"그런데 왜 발송실패로 나온답니까?"


잠시 침묵. 나는 숨을 크게 들이쉬고 고백했다.


"저... 사실은 하나하나 사진 보고 타이핑 치기 귀찮아서 ChatGPT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네? 제가 지금껏 600여 명 이상 작가님들을 배출했지만, ChatGPT 이용해서 이렇게 하신 분은 작가님이 처음이네요. 지피티가 잘못 표기할 수도 있을 거란 생각 안 해보셨나요?"


머리를 한 대 맞은 기분이었다.


"네... 제가 지피티를 너무 믿었나 봅니다. 앞으로는 제가 직접 하겠습니다."


기계는 기계였다


전화를 끊고 원본 사진들과 지피티가 만든 파일을 대조해 봤다.


book@publisher.com → book@publsiher.com

editor_info@press.co.kr → editor_info@press.co.kr


철자 하나, 언더바 하나. 사람 눈에는 명확하게 보이는 것들을 지피티는 놓쳤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사진 속 작은 글씨를 완벽하게 읽어낼 만큼 지피티는 아직 완벽하지 않았다.


최근 AI 관련 유튜브 강의를 들으면서 나는 점점 인공지능에 대한 신뢰가 커졌다. '이제 이런 건 다 맡기면 되겠네.' 그 편리함에 취해 가장 기본적인 확인 작업조차 건너뛴 것이다.


우리는 지금 참 편리한 시대를 살고 있다. ChatGPT, Claude, Gemini... 클릭 몇 번이면 보고서도 쓰고, 번역도 하고, 코딩도 한다. 하지만 이 편리함이 우리를 귀차니즘의 늪으로 빠뜨릴 수 있다는 걸, 나는 이번 일로 뼈저리게 깨달았다.


여전히 인간이 해야 할 일들


인공지능은 분명 강력한 도구다. 하지만 도구는 도구일 뿐이다.


정말 중요한 일, 되돌릴 수 없는 일, 누군가에게 첫인상을 주는 일. 이런 일들은 여전히 우리가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손으로 만져보고, 머리로 한 번 더 생각해야 한다.


40개의 출판사에 잘못된 이메일을 보낸 나는 그 출판사들에게 다시 연락할 면목조차 없다. "죄송합니다, 인공지능이 실수해서요"라는 변명이 얼마나 한심하게 들릴지는 상상만 해도 민망하다.


인공지능이 아무리 발달해도, 책임은 결국 사용하는 사람의 몫이다. 지피티가 틀렸다고 지피티를 탓할 수는 없다. 확인하지 않은 내 잘못이다.


깨달음 그리고 다시 시작


나는 다시 사진들을 꺼내 들었다. 이번엔 내 손으로, 내 눈으로, 하나하나 직접 확인하며 타이핑을 쳤다. 시간이 오래 걸렸지만, 이번엔 확신할 수 있었다. 이 이메일 주소는 진짜다.


우리 모두 조심하자. 인공지능을 활용하되, 맹신하지는 말자. 편리함에 취해 가장 중요한 것을 놓치지 말자.


인간이 할 수 있는 영역은 여전히 많다. 아니,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영역은 여전히 존재한다.


이 글을 읽는 당신도 혹시 중요한 일을 AI에게 무분별하게 맡기고 있지는 않은지 한 번쯤 돌아보면 좋겠다.


나는 이 사건을 계기로 정신을 바짝 차렸다. 당신도 같은 실수를 하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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