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비와 목말

by 윤한솔

내 아비는 나를 목말 태울 수 없을 정도로 늙어졌고

나는 그 위에 올라탈 수 없을 정도로 커버렸다.


떨어지지 않게 손을 꼭 붙잡고 출발하는 아빠 말과

쫑알쫑알 조종하며 갈 길을 이르는 아이 말을 보며

처음 당신의 어깨 위에 목말을 탔던 그 시점부터

나는 당신을 짓누르는 짐은 아니었을까 한다.


늙어지고 늙어져도 나를 내려놓을 줄 모르고

자라나고 자라나도 나 역시 내려올 줄 모르는.


아비는 아이를 목말로부터 키워낸다.

아비의 생은,

목말로부터 시작하여 나아간다.


*


먼 옛날 같이 살 적에,

그러니까 나와 내 동생이

그 집에서 짐을 챙겨 밤중에 도망치듯 나오기 이전에,

젖은 발걸음으로 출근하는 아비의 발소리를

방안에 건조하게 누워있던 내가 모르는 척했다.

일하지 않고 집안일도 돕지 않으며

그저 누워만 있던 젊디젊은 딸은

모든 걸 떠맡은 아비를 모르는 척했다.


그런 딸임에도 아비는 봄도 아닌데 자꾸만 딸기를 사 왔다.

제철이 아니라 비쌀 텐데도

냉장고 속 딸기 한 팩이 비워지면

그다음 날 말없이 다시 한 팩, 또 한 팩.

까탈스러운 딸내미가 좋아하는 거라고 기억하여

본인 먹는 데는 면으로 아끼면서

자꾸만 딸기를 사 왔다.

꼭지를 따고 씻어내는 별거 아닌 일도 귀찮아 방치하다 보면

붉은 딸기에는 군데군데 곰팡이 꽃이 자라나 초록으로 변했다.

그런 딸기를 보며

아비 가슴에 곰팡이 꽃 피운 딸은 아니었던가 생각했지만,

여전히 나는 건조했고 그저 누워만 있었다.

그 겨울딸기 참 다디달았지.

그리도 달았던 줄 그때는 몰랐었지.


그렇게 당신을 떠나오고 몇 날이 지났는지

이제 헤아릴 수조차 없어졌다.

집을 나오고 며칠 후,

빠트린 짐을 찾으러 몰래 다시 그 집에 갔을 때

담배를 끊은 지 오래된 아비였건만

갈색 맥주병에 담배꽁초가 수북이 쌓여 있는 것을 보았다.

지금은 어떻게 되었을까.

사실 빠트린 것은 짐이 아니라

내가 말없이 놓고 온 아비는 아니었을까.


당신은 언젠가 술에 취해 이렇게 말했었다.

내 이름을 서너 차례 부르고는,

부르면 언제나 곁에 있으라고.

아무렇지 않은 듯 다가와 머물다가

잠시 후 꽤나 아프게 느껴지기 시작했던 그 말.

머지않을 훗날 나 당신을 떠나게 되면

처음 그랬던 것처럼 홀로 남을 텐데

그 아픔 어찌 다 감당하려고 나를 이리도 사랑하는가 하였지.

나의 예상은 당신에게 적중해

늙어진 당신의 심장을 뚫고 지나갔고

우리는 서로의 생사도 모르는 채

이렇게 오늘날을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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