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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안녕.

by 윤한솔

코끝이 알싸해지는 것은 매운바람이 불어서 그런 것이었으리라.

다른 어떤 이유는 없다. 단지 바람 때문이었다.

심장이 쿵, 제 자리를 잃었다.

분명 몸통 여기 어디쯤에 있었던 것 같은데

더듬더듬 만져보아도 두근거림이 느껴지지 않았다.

멎어버린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눈이 부시게 내리쬐는 빛에

일순간 앞이 뿌예졌고 몽글한 눈물이 샘솟았다.

아니면 바람 타고 다니던 무언가가 눈 속에 들어갔기 때문이거나.

그날, 그날.

나를 울린 것은 너를 제외한 모든 것들이었다.

이미 의미를 잃은 네가 나를 울렸을 리는 없다.

내가 겨우 너로 인해 울 리는 없다.


내가 좋아하는 목도리를 하고 온 너에게 손을 뻗어 매무새를 만져 줄 수 없는 것도

가야 하는 방향이 다른 나를 두고 내린 채 멀어져 가는 네 모습도

애써 웃는 네 앞에서 일그러진 표정으로 눈물 흘리는 것도

다 그럴 수 있는 일이었다.

우리는 마침내 기다리던 혹은 기다리지 않던 끝을 맞이하고 있었으니까.


익숙한 너 없이 익숙한 길을 걷는다.

이 보도블록에는 우리가 오간 발자국이 몇 개나 찍혀있을까.

우리가 흘린 웃음이 틈새 틈새에 얼마나 많이 묻어있을까.

주고받은 이야기가 길가 어느 구석에 녹아내려 있을까.


앞을 보고 더 씩씩하게 걷는다.

팔을 앞뒤로 더 세차게 흔들어본다.

그러다 어쩐지 같은 손 같은 발이 나가는 것 같아 잠시 멈칫하고

고개를 갸웃거리기도 한다.

이대로 곧장 걸어 집으로 가야지.

그리고 방문을 닫고 등을 기댄 채 와르르 무너져야지.


오래전 어느 날,

시작이 무르익던 밤에 넌 이렇게 이야기했었다.


‘늘 예쁘게 그 자리에 있어. 그럼 난 웃지.

꺾이지 않는 꽃이 되고 별이 되어 늘 환하게 웃길.

세찬 바람 맞지 않고 피운 꽃이 어디 있던가.

긴 세월 지나지 않고 빛난 별이 어디 있던가.

그러니 울게.

그러니 웃게.

꽃이고, 별일뿐이니.’


이렇게 고운 것만을 건네주던 우리였는데

굳이 돌고 돌아 끝을 향한 먼 길을 걸어왔다.


다시는 못 본다는 걸 알면서 하는 잘 지내란 말을 좋아하진 않지만

그래도 해야만 하는 마지막 인사는 결국 이것밖에 없으니,

안녕, 잘 지내. 행복하기만을 바랄게.

진부한 인사를 끝으로 영원한 안녕을 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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