찻집에서 경건하고 차분하게 차를 마신다. 나는 칠정(七情) 중에 욕심(慾)이라고 적힌 흑차를 골랐다. 깊은 흙냄새, 나뭇가지, 은은하고 묵직한 깊은 맛이라고 설명된 차였다. 그런데 막상 마셔보니 보리차처럼 평범했고 뒷맛은 물처럼 깔끔해서 놀랐다.
차맛을 느끼기 위해 다섯 번 넘게 더 우려 마셨지만 다 비슷한 맛이었다. 차의 쥐뿔도 모르는 나지만, 이럴 때가 아니면 언제 시간을 들여 차를 음미하고 따뜻한 사색을 갖는 시간을 보낼 수 있을까. 나는 그것만으로도 좋았다.
바테이블 앞에 놓인 높은 의자에 불편하게 앉아 검은색 붓으로 뒤죽박죽 낙서된 벽지와 그 앞에 다양하게 생긴 찻잔들이 놓인 큰 선반, 이상한 모양의 중국식 주전자가 끓고 있었다. 길게 찢어진 한지로 만든 전등 아래서 친구와 평소에 말하지 못한 진실된 대화를 나누는 것도 좋았다. 일부러 찻집에 오자마자 스마트폰을 가방에 넣어두고 나가기 전까지 단 한 번도 꺼내지 않았다. 그 덕분에 찻집의 순간들이 더 선명하게 남았다.
찻집을 나와 집으로 가는 길, 길거리에 보인 카페들의 분위기가 한결 가벼워 보였다. 아무래도 따뜻함과 차분함이 스며든 찻집의 매력에 빠진 것 같다. 오늘 먹은 차에 붙은 많은 설명과 맛의 깊이를 아직은 얕게 이해하고 있지만, 언젠가는 차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날이 내게 찾아올 거라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