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장 들여다보기.

by 고순

요즘 일기장을 자주 들여다본다. 토해내는 감정을 다시 보면 지금의 나와는 다른 사람인 것처럼 관조적으로 읽는가 하며, 지금과 별반 다르지 않은 것을 보면 ‘역시 사람은 변하지 않는 건가’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일기장을 다시 들여보는 이유는 은밀한 사색을 그대로 내버려 두지 않고 글로 변환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기는 독자가 없기에 맘대로 휘갈겨 쓰지만 글로 바꾸면서 내 생각을 세상에 말하는 것 같다. 글로 재조립하면서 내 생각과 감정의 완전한 마침표를 찍는 기분이다.


짤막한 글이라 아직은 인스타그램에만 공개하고 있다. 그중 몇 개만 가져왔다. 이래나 저래나 일기장이든 브런치든 인스타그램이든, 내 글쓰기는 현재 진행 중이다.


네모난 빛

고층 아파트 외벽에 짙게 드리워진 그늘 한가운데, 네모난 빛들이 나란히 반짝이고 있다. 그 모습이 묘하게 편안하고 아름다워 자꾸 눈길이 갔다. 저 빛은 어디서 온 걸까. 곰곰이 생각해 보니 건너편 아파트 창문에 닿은 햇빛이 반사된 것이었다. 태양이 강렬한 걸까. 아니면 창문이 따뜻함을 나눠준 걸까. 누구였든, 외벽의 차가움을 덜어내는 저 작은 네모들이 희망처럼 보였다.


흔들리는 덩굴

고속도로 소음 차단벽을 전부 뒤덮은 담쟁이덩굴이 보인다. 잎이 지고 갈색 줄기만 남은 앙상한 것들이 빽빽하게 엉켜 있다. 도대체 매연과 무미건조함을 마시고 어떻게 자라난 걸까. 끝내 벽 너머 자연으로 닿지 못한 그들의 발악이 애처로워 보인다. 자동차가 만들어낸 바람에 줄기가 처절하게 흔들린다. 그때마다 내 마음도 씁쓸해진다.


파키라

미세먼지가 가득한 세상 속, 생기 없는 우울이 떠다 니는 게 보인다. 폐는 어딘가 저릿하고 렌즈 낀 눈은 약간의 이물감이 느껴진다. 걷는 기분은 썩 좋지 않지만 그럼에도 계속 걸었다. 마스크를 쓰든 안 쓰든 거리에는 언제나 사람들이 가득했다. 문명의 역린을 연대책임으로 정화를 하고 있는 우리들이 걸어 다니는 파키라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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