널찍한 창 너머로 훤히 보이는 바다와 읍천항이 보이는 카페에 앉아 있었다. 편안한 소파에 몸을 기대며 한적한 시골의 정취를 평온하게 느꼈다.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길게 뻗은 방파제 끝에는 빨간 등대가 서 있었다. 이 장면이 문득 익숙하게 느껴졌다. 섬에서 중학교를 다녔을 때, 산 중턱에 있던 학교에서 바라보던 풍경이 바로 이 모습이었다. 그때와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낮은 건물과 항구의 모습이 더 훤히 보인다는 것뿐이었다.
중학교 시절, 창가 자리에 앉아 그 광경을 마음껏 바라본 소수의 장면들이 천천히 떠올랐다. 그때는 모든 것이 당연했는데, 지금은 아니구나라는 사실을 깨닫자, 그 시절의 아름다움을 놓치며 살아간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그래도 괜찮았다. 아름다움은 지나고 나서도 느낄 수 있는 법이디. 그 시절을 떠올리면서 그때의 아름다움을 다시금 느끼고 있는 사실만으로도, 내 마음은 이미 만족스러웠다.
카페에 나와 우연히 마주한 경주 양남 주상절리 길을 걸었다. 주상절리가 뜨거운 용암이 빠르게 식어 만들어진 형태라고는 하지만, 인공물에서만 느낄 수 있는 반듯한 직각의 형태를 보는 것이 낯설고 신기했다. 주변을 둘러보니 드문드문 지나가는 사람이 조금 있을 뿐, 이곳 역시도 평온했다. 그런 여유로움에 빠져 자갈 위에 앉아 해안가를 바라봤다. 조금 거친 파도가 바위들에 부딪치면서 하얀 거품이 해안가로 밀려왔다가 다시 떠밀려가고 있었다.
내 머릿속에서는 이리저리 근사한 생각을 떠올려 봤지만, 명쾌하게 떠오르지 않았다. 정취에 머물러 있고 싶었을 뿐이라는 사실을 깨닫자 그저 멍하니 바라봤다. 물에 젖은 자갈과 마른 자갈의 차이를 더듬어 보기도 하고, 계속 파도를 맞으며 조금씩 깎여가는 바위가 어떤 기분일지 상상하기도 하고, 파란 수평선 너머의 형용할 수 없는 편안함을 느끼기도 했다. 머리 뒤로 쏟아지는 태양의 따스함을 느끼며 그렇게 몇 분을 앉아 있었다.
해안 길을 따라 걷다가 앉은 흔들의자에서도, 그 뒤로 들른 봉길대왕암 해변가에서도 비슷한 감정이 이어졌다. 내가 바닷사람이라 바다가 나를 부르는 건지, 아니면 내가 바다를 부르는 건지 알 수 없지만, 그 앞에 서서 묵언의 시간을 보내고 나면 모든 게 다 맑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