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럴 수도 있지.

by 고순

‘이해하다’의 사전적 의미는 다양하지만 보편적으로 ‘남의 사정을 잘 헤아려 너그러이 받아들이다’라는 의미로 쓰인다. 그래서 그런지 남에게 이해한다는 말을 건네는 것은 쉬운 말이 아닌 것 같다. 그 사람과 같은 생각을 할 수 있어야만 가능한 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조차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서, 누구의 마음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까. 어렴풋이 교집합을 그려보는 것에 불과한 건 아닐까. 이렇게 ‘이해하다’를 까탈스럽게 해석하다 보니 그 말이 어렵게 느껴져 다른 말을 사용하곤 한다.


그럴 수도 있지. 이 말은 두 가지 의미를 담고 있다. 나와 다름을 인정하는 평화와 사랑의 말, 또는 더 이상 이야기 나눌 수 없다고 판단하는 회피의 말이다. 그래서 어떤 의도로 말하는지에 따라 이 말은 전혀 다른 의미를 갖게 된다. 나는 두 가지의 의미를 섞어가면서 그 말을 쓰곤 하는데, 그러려니 하고 그 사람을 나름 이해하려고 애쓸 때는 전자, 더 이상 이해할 수 없거나 하고 싶지 않을 때는 후자를 택하고 있다.


요즘 대화할 때마다 ‘그럴 수도 있지.‘라는 말을 자주 내뱉는 걸 보면 내가 타인과 섞일 수 없는 철저한 ‘남’이 되어 가고 있는 것 같다. 나라는 존재가 점점 확고해지고 있는 것이 내 똥고집이 될지 단단한 에고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래서 ‘그럴 수도 있지.’ 말고는 적절한 말이 떠오르지 않는 상태에서 내뱉는 그 말의 공허함은 참으로 묘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 말을 반복하고 있다.







화, 금 연재
이전 04화취향의 무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