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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추헌재 Jul 10. 2024

남의 놀이터서 놀면 ‘주거’침입?!

위요지

“남의 놀이터서 놀면 도둑”...... 같은 소리 하네!

인천 중부경찰서가 2022년 1월 4일에 2021년 11월 12일 인천시 중구 영종도의 한 아파트 놀이터에서 초등학교 4~5학년 학생 5명을 관리사무실로 끌고 가 “남의 놀이터에 오면 도둑이다. 너희들은 커서 큰 도둑이 될 거다.”는 등으로 폭언을 하고 해당 아이들을 기물파손죄로 경찰에 신고한 60대의 입주민 대표 A씨를 아동복지법상 아동학대 및 협박 등 2개 혐의로 검찰에 송치한 사건이 있었습니다(보완수사를 거쳐 미성년자 약취죄도 적용됐었는데 검찰은 이에 대해서는 증거불충분을 이유로 무혐의 처분했다고 합니다).

그냥 봐도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이 들지 않으십니까? 여기서 무슨 말도 안 되는 말이라고 대충 넘어갈 수도 있겠지만 좀 더 지적인 대화를 위해 이에 대해 분석해 봅시다.     


손괴죄? 강도죄? 절도죄? 사용절도?


먼저 기물파손죄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재물손괴죄를 지칭하는 것으로 이에 해당할 수 있는지가 문제됩니다. 그러나 아이들이 놀이터 시설을 망가뜨린 정황은 없었으니 손괴죄에는 해당될 수 없다는 것은 누구나 쉽게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도둑이 될 거라고 한 부분에 대해서는 넓게 보자면 강도죄에 해당하는지도 문제될 수 있는데 결론적으로 ‘폭행 또는 협박’이 없었으므로 강도죄가 성립될 수 없다고 볼 것입니다.

놀이터 시설은 토지의 정착물로 분리되기 전까지는 절도죄의 객체인 재물이 될 수 없고(훔쳐갈 수 없으니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당연한 것입니다) 불법영득이 불가능에 가까워 불법영득의사도 있을 수가 없고 일시적 사용에 불과하므로 절도죄도 성립되지 않는다고 볼 것입니다.

다만 학생들의 행위가 단순히 시설을 이용이나 사용한 것으로 사용절도에 해당하고 따라서 처벌되지 않는 것이라고 볼 여지도 있을 것이나 마찬가지로 그 객체에 있어서 절도가 가능하지 않은 경우로 보는 것이 옳다고 보이므로 애초에 사용절도에도 해당되지 않는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더 알아보기     


√ 절도죄와 사용절도     


절도죄와 사용절도는 불법영득의사의 유무에 따라 구분됩니다. 즉 사용절도의 경우 절도죄와 다르게 타인의 재물을 무단으로 일시사용하고 반환하는 것, 즉 반환의사를 본질적인 요소로 한다는 점에서 절도죄와 구별됩니다. 따라서 사용절도는 절도죄로 처벌할 수 없고, 다만, 그 객체가 자동차, 선박, 항공기 또는 원동기장치자전거일 경우 자동차등 불법사용죄로 처벌됩니다. 참고로 일시적으로 사용하였고, 반환의사가 있더라도 재물의 가치를 감소·소멸시킨 경우라면 원칙적으로 사용절도의 범위를 벗어나는 것으로서 절도죄로 처벌됩니다. 


    

물론 사회상규에 반하지 않아서 위법성이 없다거나 형사미성년자로 책임이 없다고 할 수도 있으나, 위법성이 없다고 하는 것은 일단 범죄적 행위를 하였다고 평가된다는 점에서 학생들에게 좋지 않고, 책임이 없다고 하면 민사적으로는 부모가 손해배상 해야 할 수도 있어 앞에서 말씀드린 구성요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참고로 범죄는 구성요건해당성, 위법성, 책임이 있어야 성립하고 이는 순차적으로 판단합니다).

그렇다면 이제 구성요건해당성 단계에서 학생들의 행위가 주거침입죄에 해당할 여지가 있는지 여부를 ‘위요지’와 최근의 판례가 밝힌 ‘사실상 주거의 평온’이라는 주거침입죄의 보호법익(보호하고자 하는 법적인 이익) 및 ‘침입’의 판단기준을 중심으로 살펴보겠습니다.

※ 어찌보면 너무나 당연한 얘기를 지나치게 장황하게 설명하는 것 같기도 하지만 이런 설명을 통해 법률가들이 어떻게 판단하는지 한 번 맛보시기 바랍니다.     


주거침입죄?


1. 위요지     



형법     


319(주거침입퇴거불응①사람의 주거, 관리하는 건조물, 선박이나 항공기 또는 점유하는 방실에 침입한 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개정 1995. 12. 29.>

②전항의 장소에서 퇴거요구를 받고 응하지 아니한 자도 전항의 형과 같다.     



가. 의의

주거나 건조물 등을 둘러싸고 있는 토지를 위요지(圍繞地)라고 합니다.

그런데 위 조문을 보면 주거침입죄의 객체로 위요지를 명문으로 규정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그러면 왜 남의 놀이터, 즉 남의 땅에서 놀면 주거침입죄에 해당하는지 살펴봐야 하는 걸까요?

그것은 대법원이 건물의 위요지를 주거나 건조물에 포함시키는 해석방법을 통하여 그 위요지를 주거침입죄의 객체로 인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이러한 점에 대한 문제점에 대해서는 생략합니다).

나. 판례


더 알아보기     


√ 위요지에 대한 판례     


                        폭력행위등처벌에관한법률위반·지방공무원법위반개선명령처분무효확인

                                      [대법원 2004. 6. 10., 선고, 2003도6133, 판결]

건조물침입죄에 있어서 건조물이라 함은 단순히 건조물 그 자체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위요지를 포함한다 할 것인데, 위요지가 되기 위하여는 건조물에 인접한 그 주변 토지로서 관리자가 외부와의 경계에 문과 담 등을 설치하여 그 토지가 건조물의 이용을 위하여 제공되었다는 것이 명확히 드러나야 한다. 또한 일반적으로 개방되어 있는 장소라도 필요가 있을 때는 관리자가 그 출입을 금지 내지 제한 할 수 있는 것이므로 그 출입금지 내지 제한하는 의사에 반하여 무리하게 다중이 건조물 구내에 들어가 구호를 외치고 노동가를 부르는 것은 건조물의 사실상의 평온을 해하는 것으로서 건조물침입죄가 성립한다고 보아야 한다( 대법원 1983. 3. 8. 선고 821363 판결1996. 5. 10. 선고 96419 판결 등 참조).     


                                                  집회및시위에관한법률위반·퇴거불응

                                        [대법원 2010. 3. 11., 선고, 2009도12609, 판결]

화단의 설치, 수목의 식재 등으로 담장의 설치를 대체하는 경우에도 건조물에 인접한 그 주변 토지가 건물, 화단, 수목 등으로 둘러싸여 건조물의 이용에 제공되었다는 것이 명확히 드러난다면 위요지가 될 수 있다.     


                                              폭력행위등처벌에관한법률위반(공동주거침입)

                                            [대법원 2010. 4. 29., 선고, 2009도14643, 판결]

[1] 주거침입죄에서 침입행위의 객체인 ‘건조물’은 주거침입죄가 사실상 주거의 평온을 보호법익으로 하는 점에 비추어 엄격한 의미에서의 건조물 그 자체뿐만이 아니라 그에 부속하는 위요지를 포함한다고 할 것이나, 여기서 위요지라고 함은 건조물에 인접한 그 주변의 토지로서 외부와의 경계에 담 등이 설치되어 그 토지가 건조물의 이용에 제공되고 또 외부인이 함부로 출입할 수 없다는 점이 객관적으로 명확하게 드러나야 한다. 따라서 건조물의 이용에 기여하는 인접의 부속 토지라고 하더라도 인적 또는 물적 설비 등에 의한 구획 내지 통제가 없어 통상의 보행으로 그 경계를 쉽사리 넘을 수 있는 정도라고 한다면 일반적으로 외부인의 출입이 제한된다는 사정이 객관적으로 명확하게 드러났다고 보기 어려우므로, 이는 다른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주거침입죄의 객체에 속하지 아니한다고 봄이 상당하다.

[2] 차량 통행이 빈번한 도로에 바로 접하여 있고, 도로에서 주거용 건물, 축사 4동 및 비닐하우스 2동으로 이루어진 시설로 들어가는 입구 등에 그 출입을 통제하는 문이나 담 기타 인적·물적 설비가 전혀 없고 노폭 5m 정도의 통로를 통하여 누구나 축사 앞 공터에 이르기까지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사실 등을 이유로, 차를 몰고 위 통로로 진입하여 축사 앞 공터까지 들어간 행위가 주거침입에 해당한다고 본 원심판단에 법리오해 등의 위법이 있다고 한 사례.     


                                           폭력행위등처벌에관한법률위반(공동주거침입)

                                         [대법원 2020. 3. 12., 선고, 2019도16484, 판결]

[1] 건조물침입죄에서 건조물이란 단순히 건조물 그 자체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위요지를 포함하는 개념이다. 위요지란 건조물에 직접 부속한 토지로서 그 경계가 장벽 등에 의하여 물리적으로 명확하게 구획되어 있는 장소를 말한다.

[2] 피고인들이 골프장 부지에 설치된 사드(THAAD: 고고도 미사일 방어 체계)기지 외곽 철조망을 미리 준비한 각목과 장갑을 이용해 통과하여 300m 정도 진행하다가 내곽 철조망에 도착하자 미리 준비한 모포와 장갑을 이용해 통과하여 사드기지 내부 1km 지점까지 진입함으로써 대한민국 육군과 주한미군이 관리하는 건조물에 침입하였다고 하여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공동주거침입)으로 기소된 사안에서, 위 사드기지는 더 이상 골프장으로 사용되고 있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이미 사드발사대 2대가 반입되어 이를 운용하기 위한 병력이 골프장으로 이용될 당시의 클럽하우스, 골프텔 등의 건축물에 주둔하고 있었고, 군 당국은 외부인 출입을 엄격히 금지하기 위하여 사드기지의 경계에 외곽 철조망과 내곽 철조망을 2중으로 설치하여 외부인의 접근을 철저하게 통제하고 있었으므로, 위 사드기지의 부지는 기지 내 건물의 위요지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이와 달리 보아 피고인들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판결에 주거침입죄의 위요지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있다고 한 사례.     



판례를 살펴보면 주거·건조물에 부속된 정원, 담장과 방 사이의 통로, 대학교 운동장, 병원건물의 마당, 정부청사 마당, 다가구용 단독주택·다세대주택·연립주택·아파트 등 공동주택의 공용부분 등을 주거침입죄의 객체에 포함시키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다. 소결

결국 아파트 놀이터 역시 위요지로서 실외공용부분에 해당하므로 일단 주거침입죄의 객체에는 해당합니다.     

2. 주거침입죄의 보호법익과 ‘침입’의 판단기준

가. 판례

판례에 따르면 주거침입죄는 ‘사실상 주거의 평온’을 보호법익으로 하고 ‘침입’은 출입 당시 객관적·외형적으로 드러난 행위태양을 기준으로 판단함이 원칙입니다.

나. 소결

따라서 학생들의 행위는 출입 당시 객관적·외형적으로 드러난 행위태양에 비추어 사실상의 평온상태를 해치는 방법으로 놀이터에 들어갔다고 평가할 수 없으므로 침입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3. 결론 및 여담

결론적으로 학생들의 행위는 주거침입죄의 구성요건에 해당하지 않는 것입니다.

한편 A씨는 벌금 300만 원의 약식기소에 처해졌다는 소식까지 전해졌습니다. 

요즘은 각박한 세상이라는 표현도 부족한 것 같습니다. 프로불편러도 많구요.

이런 세상에서 살아남으려면 역시 많이 알아야 할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법률가들이 문제를 풀어내는 방식, 즉 어떤 문제를 대할 때에나 그 문제를 잘게 쪼개서 조목조목 반박하는 방식을 살펴보았습니다. 법률가들은 대개 어떤 문제를 대할 때에도 위와 같은 방식을 취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마찬가지로 인생에서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를 만났을 때도 역시 같은 방식으로 문제를 쪼개서 하나하나 해결해 나가는 건 어떨까요?     


이것만 알면 됩니다!     


1. “남의 놀이터서 놀면 도둑”은 말 같지도 않은 말이다.

2. 학생들의 행위는 손괴죄, 강도죄, 절도죄, 사용절도의 각 구성요건의 어느 경우에도 해당되지 않는다.

3. 주거침입죄의 성립과 관련하여 주거나 건조물 등을 둘러싸고 있는 토지를 위요지라고 하는데 판례는 이를 주거침입죄의 객체로 인정한다.

4. 아파트 놀이터 역시 위요지로서 주거침입죄의 객체에는 해당한다.

5. 그러나 학생들의 행위는 출입 당시 객관적·외형적으로 드러난 행위태양에 비추어 사실상의 평온상태를 해치는 방법으로 놀이터에 들어갔다고 평가할 수 없으므로 침입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

6. 결론적으로 학생들의 행위는 주거침입죄의 구성요건에도 해당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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