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잠시 멈추기로 했다

by 개코

오랜만에 형님들을 만났다.

“요즘 뭐 하냐?”
“그냥 좀 쉬고 있어요.”

“관뒀어?”
“그건 아니고요, 그냥 좀 쉬고 싶어서요.”
“팔자 좋다이~”

솔직히, 나도 그 말이 틀리진 않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건 그냥 '편하게 쉬는 중'은 아니다.

나는 지금, 아내와 함께 아이를 기다리는 시간 속에 있다.

몇 번의 시도, 몇 번의 기다림.
서로가 조금씩 지쳐가던 시점에서

우리는 결정을 내렸다.


부부 동반 난임휴직.
함께 겪고, 함께 쉬기로.


그리고, 나도

솔직히 좀 지쳐 있었다.
마흔 넘어서 공기업에 신입으로 들어갔다.
생각보다 낯설었고, 예상보다 훨씬 더 고단했다.
‘합격’이라는 글자는 화려했지만,
속은 매일같이 “견디는 중”이었다.

예전 같으면 눈도 못 마주쳤을 어린 선배들이

기싸움을 걸어오고,
공공기관 특유의 위계, 짬 문화 같은 것들이 숨 막혔다.

그냥 신입으로 들어왔다면 아무것도 모른 채 묵묵히 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미 여행업계에서 나름 10년 넘게 구르고 온사람인데,
솔직히 좀, 어이가 없었다.

그래도 마음을 다잡았다.
1년만 버티면 어느 정도 풀린다는 게 눈에 보이긴 했다.

그렇게 버텨보려 했지만,
그 사이사이에서 또 다른 감정들이 밀려왔다.

자유로운 곳에서 갑갑한 곳으로,

180도 바뀌어버린 환경,

예전 직장에 대한 그리움,
아내와 함께한 병원과의 싸움,

그리고 40대 되면 온다는 사십춘기.

어느 날 아침, 그냥 생각했다.
‘이쯤에서 잠깐 쉬어야겠다.’


그래서 지금은, 잠시 멈춘 상태다.
아이를 기다리고,
나를 다시 정비하고,
우리 둘이 조용히 함께 있는 시간이다.


요즘 나는 아침에 보이차를 끓이고,
신문을 뒤적이고,
피아노를 두드리고,

아내와 러닝을 하고
가끔 글도 써본다.


내가 생각해도 팔자는 좋은 거 같기는 하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이걸 해서 대단해지는 것도 아니지만,
이런 시간들이 지금의 나를 살리고 있다.

예전 같으면 “이래도 되나?” 싶었을 텐데,
지금은 그 생각조차 잘 들지 않는다.

쉬고 있는 내가, 고맙다.
이 시간을 허락해 준 나,
같이 걸어주는 아내,
그리고 조급함에 밀리지 않도록

하루하루 나를 다독이는 나.


‘잠시 멈추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면,
그건 이상한 것도, 약한 것도 아니다.


아마, 그건 다시 살아가기 위한 준비일지도 모른다.

멈춘다는 건 포기가 아니라,
다시 살아내기 위한 깊은숨이라는 걸,
요즘 나는 매일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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