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멈췄을 뿐인데, 한량이라 부른다.

by 개코


“천상 한량이네~”


휴직 후, 친구들의 능글맞은 놀림이 약속이라도 한 듯 쏟아졌다.

심지어 다니고 있는 정신과 선생님께서도 휴직을 내었다고 하니

“좋네요~”

라며 순간, 진심이 살짝 묻어 나왔다.

세상의 시선이란 참으로 야속하면서도, 때로는 웃기다.


그 ‘한량’이라는 단어가 틀린 말은 아니었다.

하지만 나는 그 말이 마냥 유쾌하지 않았다.


나는 단지, 멈추고 싶었다.

버티는 것에 지쳤고, 매일 아등바등

애쓰는 내 마음이 소진되어 있었다.

마음의 태엽을 잠시 멈추고 싶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한 3년간의

‘원치 않던 휴직’은 예상외로 뜻밖의 즐거움을 선물했고,

꽤 괜찮은 시간이었다.


그런데, 이번 휴직은 온전히 ‘나의 의지’로 선택한 쉼이었다.

경력이나 금전적인 손해를 감수하면서까지 쉬고 싶었다.


어쩌면, 원하는 휴직이지만,

결국은 나를 위한 치유가 절실했던 시간인지도 모른다.

이 얼마나 묘한 인생의 아이러니인가.


무언가를 이룬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도망친 것도 아니었는데,

사람들은 나를 ‘한량’이라 불렀다.


사실, 쉬는 것도 쉬워야 쉴 수 있다.

쉴 줄 모르던 나는, 쉼 앞에서 어색했다.


처음 멈췄던 그 시간엔 자꾸만 무언가를 해야 할 것 같았다.

아침에 일어나 차를 마시고, 신문을 보고,

책을 읽고, 피아노 건반을 몇 번 두드리고,

글을 쓰고, 러닝을 했다.


그 모든 행동은 ‘쉼’의 이름을 빌린 ‘증명’이었다.

“나는 잘 쉬고 있어요.”

“의미 있게 보내고 있어요.”

그렇게 스스로를 설득하고 싶었다.


하지만 시간이 조금씩 흐르면서,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

쉬는 시간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것.


누군가에게 증명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

나를 위한 쉼에는 설명서도, 평가도 필요 없다는 것.


사람들은 지금도 내게 묻는다.

“그렇게 쉬면 심심하지 않아? 지루하지 않아?”

가끔은 심심하다. 그리고 그 심심함이 참 고맙다.


예전엔 느끼지 못했던 마음의 틈이 생기고,

그 틈에서 나는 다시 나와 대화를 시작한다.


나는 지금, 잠시 멈춘 사람이다.

그리고 이 멈춤 속에서,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다시 살아가는 법을 배우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니 이제 ‘한량’이라 불러도 괜찮다.

그 이름 속에, 세상의 잣대가 아닌,

오롯이 나만의 속도로 쉼과 회복을 향해 나아가는

‘지금의 나’가 담겨 있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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