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숙사가 내 인생 최악의 주거지이기를.
유학 생활을 시작하기 전 아는 언니한테서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미국 LA에 유학 갔다 온 친구가 있는데 기숙사가 자기 인생에서 제일 좋은 집일 거라 그러더라.”
그 때는 가볍게 넘겼었다. 그런데 그 언니의 말이 입실 첫 주, 그리고 졸업하고 나서 한동안 그렇게 상기될 줄 누가 알았으랴.
코로나로 1년 이상 닫혀있던 캠퍼스가 열렸다. 온라인 수업에서 만난 친구랑 스위트 매이트를 하기로 했고 (이하 AZ) 그 친구는 개인 방을 사용하고 나는 거실을 사용할 예정이었다. 거실을 방으로 겸용하는 경우 비용이 더 쌌기 때문이다. 그런데 들어가 보니 문 바로 앞에 작은 방이 있었다. 내가 쓸 침대와 책상도 다 그 방에 덩그러니 있었다. 폭은 좁고 너비는 긴 방이었다. 그렇게 좁지만 나름 개인 방을 쓰게 되었다.
늦여름 햇살이 들어오니 하얀 벽이 더 하얗게 보였고 정말 낡은 나무 바닥도 괜찮아 보였다. 아니면 “기숙사”라는 굉장히 미국 대학생과 어울리는 듯한 단어가 나를 설레게 했는지도 모르겠다. 짐을 옮기느라 이미 땀을 뻘뻘 흘린 상태였지만 쉬지 않고 바로 침대 커버 씌우기까지 마쳤다. 의자에 앉아 숨을 고르고 찬찬히 둘러보니 헉, 완전 먼지 소굴이다. 당장 오늘 저녁부터 이 방에서 자야 하는데 무시할 수 있는 정도가 아니었다. 생각해 보니 코로나 때문에 이 방은 필요 이상으로 방치되었던 것이었다. 이 정도면 한 번 정도는 학교 측에서 청소해 줄만 하지 않나? 싶었지만 나는 당장 이 방을 써야 하므로 청소를 시작했다. 정말 땀이 비 오듯 쏟아졌다. 선풍기도 없고, 에어컨도 없었다. 심지어 에어컨은 이 기숙사 건물에서 금지였다.
이 무더위는 예상 못 했다. 나는 이십 년 넘게 한국 여름을 견뎌온 사람이라는 이상한 자신감이 있었던 모양이다. 오히려 냉방기가 없으니 더 덥게 느껴졌다. 이러다가는 안 되겠다 싶어서 그날 AZ를 만나자마자 걸어서 30분 거리의 마트에서 대형 선풍기를 하나씩 사 들고 왔다. 더운 공기로 바람을 만드는 거라 시원하지는 않았지만 이것마저 없었으면 그날 저녁 열사병으로 기절했을 것이다. 말 그대로 녹아내려 침대 속으로 꺼지는 느낌이 들 정도로 더웠다.
약 3년 간 함께 할 이 방과의 첫 만남은 이랬다. 먼지투성이와 무더위. 썩 좋지만은 않았던 첫인상은 지날수록 더 안 좋아지고 마는데...
여름에는 더워서 문제였는데, 놀랍지만 겨울도 더워서 문제였다. 냉방기는 없었지만 난방기는 있었다. 영화에서나 볼 법한 옛날 래디에이터가 거실에 하나, AZ 방에 하나 있었다. 나는 지금까지 창고를 방으로 쓴 걸까? 하지만 그게 오히려 다행이었다. 레디에이터는 폭주 기관차처럼 열을 내뿜었고 그렇게 싱가포르에서 온 AZ는 고향을 그리워하지 않아도 되었다. 거실에 있으면 가끔 숨이 막히긴 했어도 내 방은 적당히 따듯해서 좋았다. 단, 학교에서 가동하기 전에 극한의 추위를 견디기만 한다면 말이다. 잘 때 너무 추워 패딩을 입고 자야 할 때도 있었고 아침 일찍 샤워를 할 때면 살이 너무 아려서 소리 없는 비명이 나왔다. 뻑뻑하고 낡은 유일한 창문에서는 외풍이 심하게 들어왔다. 힘들게 외풍 테이프로 막았다. 화장실 것도 막아버렸다. 원래 상태로는 도저히 맨몸으로 있을 수 없기에.... 환기는 포기했다.
엘리베이터는 또 어떤데. 정말 오래되고 좁은 엘리베이터가 하나 있다. 놀랍게도 문을 밀고 당겨야 탈 수 있다. 이사할 때, 과제물을 들고 있을 때 같이 손이 모자랄 때 고역이었다. 종종 작동하지 않아 지하 세탁실에 갇히는 일도 생겼다. 이것들 말고도 기숙사 험담은 더 할 수 있지만 너무 길어질 것 같으니 여기서 멈춰야겠다.
여름 방학 동안 한국에 들어와 있을 때 그 언니와 저녁을 먹을 기회가 있었다. 나는 이때다 싶어 내 기숙사 라이프 스토리를 들려줬다. 언니의 반응은 이랬다.
“나였으면 바로 부모님 졸라서 자취했을 거야... 어떻게 살아? 대단하다.”
졸업하고 한국에 돌아와서는 만나는 사람들마다 이 말을 전했다.
“대학교 기숙사가 인생에서 제일 좋은 집일 거라는 말을 유학 전에 들었었어. 그런데 말이야, 나는 확신해. 그게 내 인생에서 제일 안 좋은 집일 거라고.... 제발 그랬으면 좋겠어.”
그래도 기숙사가 나에게 준 하나의 선물이 있다. 그것은 이제는 웬만한 데를 봐도 이 정도면 괜찮네 하는 여유로운 태도이다. 어렸을 적 이사를 꽤 많이 했는데, 덕분에 낡고 좁은 주택부터 새 아파트까지 다양하게 경험했다. 거기에 인생 최악의 기숙사까지 겪었으니 나의 주거 환경에 대한 기준은 심히 낮아졌었다. 때문에 공간 디자인 전공에 대한 회의도 많이 들었지만.
추울 땐 따듯하게, 더울 땐 시원하게 지낼 수 있는 집. 환기가 용이한 집. 기본 청결과 치안을 갖춘 집. 일단 이것만 갖추고 있으면 괜찮은 집이라며 만족하게 된다. 하지만 나도 인간인지라 오만하게 또 불만이 올라오려 하면 그 기숙사를 떠올린다. 그러면 지금 지내는 집은 호강하는 수준이지, 뭐.
그래서 불편한 곳에서 살아본 경험이 나쁘지만은 않았던 것 같다. 좋은 수행의 기회였다. 약 3년 간 고와 락을 함께 해서 그런가 가끔 그 방이 그립기도 하다. 끼익 소리로 어설프게 맞이하는 문고리부터 삐그덕 삐그덕 내 걸음을 받치던 나무 바닥. 아주 수줍게 방을 밝혀주던 여린 전등. 외롭지 않게 위층 친구의 존재를 알려주던 천장.
하지만 다시 살고 싶지는 않다. 웃으면서 기억하고 가끔 그리워할 수 있게 우리 다시는 보지 말자.
그리고 유학을 준비하는 분들에게, 학교마다 상이할 수는 있지만 미국 대학교 기숙사에 대한 환상은 버리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