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지 않고 학교를 다니면 된답니다!
한국과는 반대로 미국은 가을에 학년이 시작된다. 다시 말해, 가을학기가 1학기이고 봄학기가 2학기라고 보면 된다. 나의 경우에는 봄학기에 입학했기에 못 들은 가을학기를 여름방학 동안 끝내고 바로 2학년으로 올라가기로 했다.
그렇게 수강하게 된 여름학기는 더욱 힘들었다. 4개월 커리큘럼을 2달 만에 끝내야 했기 때문이다. 하루에 들어야 하는 수업시간이 두 배로 늘어난 것이다. 뉴욕과 한국 시차가 내 사정에 맞춰줄 리는 없으니 이제는 정말 거의 동이 틀 때까지 들어야 했다. 다행이라면 다행일까, 봄학기에 다져놓은 새벽 수업 듣기 능력 덕에 생각보다 힘들지는 않았던 것 같다. (시간이 오래 지나 미화된 것일 수도 있다.) 정말 밤을 꼬박 새우느라 잠을 아예 못 잔 적도 있다. 신기하게도 늦게 자면 더 피곤한데 아예 안 자면 정신이 말짱하다. 그렇다고 그런 일상을 지속하면 정말 응급실에 실려갔겠지?
그렇게 1학년을 반년만에 마치고 나는 한 달이 채 안 돼서 출국하고 2주 뒤 바로 2학년으로 올라갔다. 2학년 가을학기를 보낸 후 짧은 겨울 방학에 동기들은 전부 한국으로 돌아갔지만 나는 혼자 미국에 남았다. (미국은 한국과 반대로 겨울 방학이 매우 짧다.) 3주 있으려고 가기에는 비행기 푯값이 많이 비쌌기 때문이다... 그 짧은 겨울 방학 후 바로 2학년 봄학기를 들었다. 1년 4개월 동안 거의 쉴 틈 없이 학교를 다녔다.
다행히도 여름 방학은 거의 3개월로 매우 길었다. 때문에 있고 싶어도 기숙사에서 학생들을 쫓아낸다. 그 덕에 2학년을 마치고 한국에 들어와 있었는데 그동안 또 여름학기를 들었다. 졸업하기 위한 필요 학점과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전공에 필요한 시간을 계산해 보니 교양 수업을 방학 동안 미리 들어놓지 않으면 고학년에 올라갔을 때 생고생을 하겠다 싶었다. 그래서 방학 전, 연세대학교 여름학기랑 학점 인정이 어떻게 되는지 알아보느라 스트레스받았던 기억이 난다. 결국 비대면으로 모교의 수업을 듣게 되었지만. 이때 새벽에 밥을 먹어야 해서 만두니 국수니 라면이니 간단하고 빠른 음식들을 먹었다. 낮밤 바뀌어, 밥도 제대로 안 먹어, 밖에도 잘 안 나가, 이때 내 수명이 많이 줄지 않았을까.
예술 분야 수업 하나와 대수학, 천문학을 들었다. 대수학은 한국 중학교 과정 수준이라 쉬웠다. 다만 , 내가 중, 고등학교를 다닐 당시 교육과정에는 삼각함수가 없었는데 그걸 영어로 들으니 더욱 무슨 소리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수학의 정석과 ebs 강의를 통해 보충 공부를 했었다. 천문학은 재미있고 수업도 부담스럽지는 않았지만 원리가 이해 안 되는 부분은 여기저기 이과 친구들한테 물어보면서 지식을 채워나갔다.
나는 가끔 쓸데없는 곳에 열정을 쏟는 경향이 있다. 학교에 교양 수업을 이렇게까지 신경 쓰는 사람은 드물었다. 이렇게 쉴 틈없이 학교 수업을 듣는 사람도. 열심히 알차게 학창 시절을 보내려니 그 대가로 포기해야 하는 것이 많았다. 그래서 항상 바빠 보이는 한국 학생들이 대단해 보이기도, 안타깝기도 하다. 치열하게 살다 쉬고 있으니 이런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이렇게 산다고 더 보상받는 것은 아닌데 요령껏 잘 조절할걸 그랬나... 그렇게 해도 대부분 잘만 졸업하고 잘만 대학원 들어가고 잘만 취직하던데. 내 선택을 후회하는 것도 아니고 자랑스러울 때도 있지만 하지 못했던 것들에 대한 아쉬움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뭐, 덕분에 3년 4개월 만에 학사를 땄으니 반 학기는 번 셈이다. 그렇게 번 시간을 지금 글 쓰고 낙서하면서 다 쓰고 있다. 아니지, 졸업한 지 9개월이 지났으니 내 시간 통장은 이미 마이너스 통장이다. 이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