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어려워요...
혹시 건축과나 관련 학과를 갈 계획이라면, 맥북은 웬만해서는 새로 사지 말기를 바란다. 그 돈으로 차라리 좋은 사양의 윈도우 베이스 노트북을 사기를. 건축과에서 많이 쓰는 브랜드는 Asus와 Dell이다. 참고로 델의 에일리언웨어라는 굉장히 멋있게 생긴 비싼 모델이 있는데, 개인적으로 가성비는 떨어진다고 생각한다. 무작정 맥북만 준비하면 나처럼 노트북을 세 개나 갖게 되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 이 때문에 출국 심사에서 재심사를 받은 적도 있고, 기내용 캐리어는 오로지 전자기기들이 독차지하게 되었다.
개인적으로는 애플 브랜드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는데, 디자인은 맥북이 꼭 필요하다고 해서 입학 당시 최신 모델 노트북을 하나 샀었다. 학생 할인을 받았는데도 무척 비쌌다. 1학년 때는 전공 수업이 없어서 몰랐다가 2학년부터 전공수업을 듣고, 3학년부터 거의 다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작업하다 보니 이 전공에는 맥북이 맞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맥의 문제는 이 분야에서 많이 쓰이는 3d 프로그램과 렌더링 프로그램을 벅차한다는 것이다. 프로그램 자체도 정말 무거운데, 건축이다 보니 파일 용량도 엄청 큰 경우가 다반사이기 때문이다. 그 프로그램들은 전부 윈도우에 최적화되어 있다. 아직 게이밍 노트북을 사기 전, 맥북으로 라이노나 렌더링을 하다가 멈추면 식은땀이 그렇게 흘렀었다. 덕분에 ctrl+s(저장 단축키)를 숨 쉬듯이 누르는 습관이 생겼다.
물론 내가 컴퓨터에 원래 젬병인 것도 한 몫했다. 1학년 첫 학기에 포토샵과 일러스트레이터를 난생처음 배웠다. 아니, 배웠다는 표현은 사실 틀렸다. 수업에서 툴을 가르쳐 주지는 않고 과제만 내주신다. 나 같은 디지털 문맹은 튜토리얼 영상을 봐도 응용을 잘 못한다. 노트북을 던지고 싶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도저히 안 돼서 교수님께 메일도 보냈었다. 정말 열심히 시도하는데, 너무 어려워서 시간이 더 필요하다고. 그 뒤로 교수님이 바로 적용할 수 있는 툴 사용법 영상을 찍어 공유해주시기도 했다. 조금 적응하나 싶었는데 다음 학기에서는 더 복잡한 드로잉을 해야 했다. 손으로는 금방 할 텐데 마우스를 가지고 기본 툴로만 표현하려니 답답해 돌아버릴 지경이었다. 그래서 또 교수님께 메일을 보냈다. (뭐만 하면 메일 보내는 징징이) 결국 디지털펜으로 그릴 수 있도록 가성비 태블릿을 샀다. 내 돈...
학년이 올라갈수록 이 디지털 놈들은 나를 괴롭혀왔다. 1학년 때 징징거렸던 것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캐드(도면 그리는 프로그램)는 여름방학 동안 인터넷 강의만으로 괜찮았는데 학교에서 사용하는 라이노라는 3d 프로그램은 너무 어려워 정말 미칠 뻔했다. 거기에다 갑자기 렌더링까지 하라니. 그때는 정말 전과부터 자퇴까지 온갖 고민을 다 했었다. 분명히 교수님께 방학 동안 컴퓨터를 연습하는 게 좋겠냐고 여쭤봤는데 아니라고 하셨잖아요.. .이게 뭐예요! 단순히 이것 때문만은 아니었지만 정말 거의 매일 엉엉 울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둘 중 하나였다. 자퇴하기, 어떻게든 버티기. 버티려면? 단순하다. 실력을 올려야 한다. 그래서 한국 컴퓨터 학원을 찾아 비대면 과외를 받았다. 안 그래도 휴식 시간이 많지 않았는데 아침이나 저녁 늦게 시간을 내 수업을 들었다. 미국에서 겨울방학을 보낼 때도 들었다. 이렇게 노력한 덕에 다음 학기에 다른 학생을 도와주는 수준까지 성장할 수 있었다.
미래의 유학생들에게 먼저 경험한 사람으로서 주고 싶은 조언은 컴퓨터 프로그램은 방학 동안 조금씩이라도 배워 놓기를 바란다. 물론 모든 툴을 능숙하게 다룰 필요까지는 없고, 각 전공에 필요한 것들만 알아도 충분하다. 미국 학교는 수업 중에 기술은 가르쳐 주지 않는다. 하지만, 미국은 주도적으로 도움을 요청한다면 주저 않고 주는 문화권이니 부끄러워 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시도해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