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참 고생이 많았지.
3학년은 시작부터가 고생이었다. 어째 처음 입국할 때보다 더. 공항에서 간신히 택시를 타고, 입실해서 그 큰 가구를 옮기고 해체하고 다시 조립하는 일을 장시간 비행 후 하루 만에 다 끝내야 했다. 젠장… 지금 다시 하라고 하면 못할 것 같다. 이 고생의 첫날이 징조였을까? 유학 생활 중 가장 큰 고비의 기간은 3학년 가을학기에 찾아왔다.
3학년이라고 하니 모든 압박감이 밀려 들어왔다. 학업, 진로, 유학생으로서 느끼는 학비 부담감, 그리고 연애 고민까지. 나이가 스물셋 인 것도 한 몫한 것 같다. 안 하던 연애 고민까지 하던 걸 보면. 왜 하필 스물셋이 그렇게 크게 다가왔는지는 모르겠지만 한국인에게는 분명 무언가가 있는 숫자임이 틀림없다. 아이유도 스물셋의 혼란스러운 자아를 고백하지 않았는가. 십 대 시절에는 그저 즐겁게 들었던 노래 가사가 와닿았던 나이이다. 내 안의 자아가 매일매일 “맞춰봐. 어느 쪽이게?”라고 물어왔다.
과제에서 요구하는 수준과 양은 말이 안 됐다. 불과 3개월 전 수업 내용이랑 차이가 너무 났다. 방학에 살짝살짝 연습을 했는데도 그 정도로는 어림없었다. 자신감이 바닥이었다. 2학년까지는 열심히만 하면 된다고 믿었는데 그것도 아닌 것 같고 부정적인 생각만 들었다. 설상가상 전공 교수들과도 안 맞았고 교양 수업에서도 조금 애를 먹었다. 2인 조별과제의 멤버는 책임감은 없으면서 욕심만 많고 제멋대로면서 교수한테 애교 떠는 놈이었다.
미국은 거짓말을 극도로 혐오한다더니, 순 거짓말. 전공 수업에서 간단한 시험을 보는데 반 전체가 치팅을 했다. 믿을 수 없었다. 대학생이 돼서도 그 짓을 하다니. 엄청난 회의감과 이유 모를 배신감에 괴로웠다. 할아버지는 입원하셔서 가족들과의 통화도 잘 안 됐고, 환율도 미친 듯이 올랐다. 극심한 안구건조증은 계속 이어졌다. 안 좋은 일은 한 번에 온다더니, 그 말이 맞나 보다. 다음 날 눈을 뜨면 지옥 같은 하루가 시작한다는 사실에 눈을 감고 잠을 청하는 것도 괴로운 나날이었다.
그전에 힘들었던 것들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전에는 김연아의 ‘내가 고생이 많다.’ 짤을 프로필 사진으로 해 놓을 정도의 힘은 남아 있었는데, 이때만큼은 아직 미화가 안 됐을 정도로 나에게는 지옥이었다. 미화는커녕 고생을 더 과장해서 기억하고 있다. 그 당시 쓴 일기를 다시 읽어보았는데 생각보다 담담하게 썼고 스스로 위로도 했다. 지금 내 기억 속에는 인생은 왜 이러냐며 방에서 혼자 울고불고 한 장면들만 남아있는데. 보통 거꾸로 아닌가?
어쨌든, 휴학도 안 하고 자퇴도 안 하고, 인생도 포기 안 하고 그 기간을 버틴 나 자신에게 큰 칭찬! 이런 기간을 거치고 있는 당신에게도, 이미 거쳐 온 당신에게도 박수를..!
마지막으로, 내 모든 짜증과 눈물을 받아준 부모님...죄송하고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