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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와 까까의 가치는 같다.

앞으로 나에게는 내가 가장 귀하다.

by 남선우

다사다난했던 3학년 가을학기와 비대면 상담과 약 복용을 병행한 겨울방학이 지난 후 맞이한 3학년 2학기부터는 무언가 달랐다. 내가 바뀌니 세상도 바뀌었다. 나무가 너무 강하면 꺾인다는 말이 맞았다. 유연하게 구부러질 줄도 알아야 했는데. 나를 괴롭히던 건 세상이 아니라 나였다. 나는 정신이 과하게 올곧았던 것이다. 좋게 말하면 신념이나 가치관이 강하고 줏대가 있다는 것이고 나쁘게 말하자면 고집이 세다는 것이다.


생존본능이 발동한 것일까, 이런 마음가짐으로 살다가는 내가 죽겠다 느꼈다. 내가 대체 무엇을 위해, 무엇 때문에 이 고생을 하나 너무 억울했다. 그전에는 그 "무엇"이 뚜렷하다고 생각했는데 그것을 향해 파고 들어갈수록 마주한 것은 내가 판 내 무덤이었다. 안 그래도 까딱하면 먹히는 냉정한 자연 속에 생존하면서, 내가 먼저 자진해 내 무덤을 파서야 되겠는가? 모든 지구상 생명체는 생존이 근본적인 목적인 것을! 너무 허탈하고 황당했다. 그래서 확 정신이 들었다. 내 생존과 건강, 안녕을 위헙하면 아무리 가치있어 보이는 것이라도 버려야 한다고. 성적도, 학교도, 진로도, 인간관계 그 어떤 것도 나 자신보다 앞서는 것은 없다.


아이들을 가까이서 본 경험이 거의 없었는데 뉴저지에 오촌 동생을 보며 느낀 점이 있다. 아이들은 어른보다 경험이 적은 만큼 세상도 좁다. 이제 막 태어난 아기에게는 엄마와 밥이 세상의 전부일 것이다. 그래서 엄마가 안 보이거나 과자가 다 떨어지면 세상이 끝난 것처럼 서럽게 운다. 그러다 엄마가 얼굴 한번 비추고 과자 하나 쥐어주면 언제 그랬냐는 듯 웃는다. 나는 어른이니 엄마나 과자가 세상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너무 잘 안다. 엎드려 좌절하는 동생을 보고 웃다가 반대 입장으로 생각을 해봤다. 나보다 더 어른인 사람이 보면 내가 지금 별 것 아닌 것을 인생의 전부라 여겨 매달린다며 웃을지도 모른다. 이 생각이 드니 나 자신이 우습고 귀여웠다. 학교 하나에 인생을 거는 내가 까까 하나에 통곡하는 아기와 무엇이 다른 것일까.


대학교가 주는 이로움과 과자가 주는 즐거움을 무시하고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들이 내 정신적, 신체적 건강 내지 인생(즉, 목숨)을 바칠 만큼의 가치는 없다는 말이다. 온 힘을 다해 열심히 하는 것과 인생을 거는 일은 전혀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난 이후로 나 자신을 제일 귀중히 하기로 했다. 전에는 과제하느라 거의 다 썼던 시간을 건강을 위해 조금 더 할애했다. 운동도 조금 더 하고 책도 보고 간식도 가끔 사 먹었다. 설사 결과물이 마음에 들지 않거나 하루를 만족스럽게 보내지 못한 느낌이 들어도 스스로 다그치는 일은 그만두었다. 나는 나를 이 세상에서 지키고 끝까지 살아남게 할 의무가 있다. 가능하면 건강하게.


그래서 나는 고생 끝에 우수학생 졸업장을 받았을 때도 과하게 기쁘지도 않았고 졸업작품이 그리 마음에 들지 않았어도 과하게 슬프지 않았다. 나 자신 앞에서 그것들의 가치는 좋아하는 과자 하나와 별반 다를 것이 없기 때문이다.


(기쁘고 아쉽기는 했다. 감정은 본능이니까. 다만 과하게 반응하지 않았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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