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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님 취향은 이제 안 궁금해.

성적에서 스스로 해방

by 남선우

4학년의 주된 수업은 당연 졸업작품이었다. 총 준비기간이 무려 일 년이다. 유명 건축가나 가구 디자이너의 대학교 졸업작품은 그 뒤로 꾸준히 회자되는 경우도 많고 역사에 남을 작품으로 발전되기도 한다. 졸업 전시에 걸리기도 하니 향후 취업에도 영향을 꽤 미친다고 볼 수 있다. 그만큼 미술학도들에게 졸업 작품은 큰 의미를 지닌다. 나는 조금 예외였지만.


이전까지 진로에 관련해서는 한 가지 길만 보고 있었는데 이때 즈음부터 여러 가능성에 마음을 열었다. 건축사 사무소나 인테리어 회사에 취직하는 길만 생각하고 싶지가 않았다. 그러기에는 하고 싶은 것도 너무 많았고 나름의 욕심도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곳에서 취업할 마음이 거의 바닥인 상태였다. 그러니 한국행 비행기를 미리 끊었겠지. 내가 돌아갈 모국의 시장은 그런 포트폴리오를 그리 선호하지 않는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지만 우리 학교는 실험적인 작품도 좋아했다 (내 교수님만 그랬던 걸지도). 위의 두 가지 이유로 취업을 크게 염두에 두지 않고 졸업 작품 준비를 할 핑계이자 명분이 생겼다.


그래서 난 교수님 취향은 이제 궁금하지 않았다. 한국대학과는 다르게 특정 스타일을 강요하시는 교수님도 없었지만, 이때 내 마음가짐은 정말 “내 마음대로 할 거야.”였다. 가족한테도, 학교한테도, 사회한테도 평생 평가받는 삶을 살아왔다. 초, 중, 고 시절 학교 성적은 내 인생에서 9할을 차지했고 수능은 삶 그 자체였다. 학교 시험 때문에 다른 하고 싶은 공부는 미뤄야 했다. 유학 시절에는 학점에 대한 압박감이 극에 달했다. 졸업 후 정말 사회로 나가면 더 냉정한 평가의 세계가 기다리고 있겠지. 그래서 인생에서 마지막 학생 시절만큼은 성적에 신경 쓰지 않고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싶었다.


이렇게 해야 되지 않을까 하는 모든 생각에서 벗어났다. 70명 학생 중 나만 손그림을 걸고 발표를 해서 조금은 민망했지만 그래도 했다. 디지털로만 하라는 법은 어디에도 명시되어 있지 않았으니 문제 될 것도 없었다. 교수님들이 어떻게 볼 지 신경 쓰지 않았다. 드로잉도 전형적인 건축 드로잉 스타일에서 많이 벗어났다. 내가 이 방법이 최고고 최선이라고 생각하면 했다. 교수님이 점수를 깎으시려면 깎으시라! 이런 태도로 하다 보니 스트레스받을 일이 거의 없었다. 성실히는 했지만 과하게 힘을 쏟느라 피곤할 일도, 안 좋은 피드백에 속상해할 일도 없었다. 이 졸업작품에 내 미래가 달려있다는 부담이 없으니 4학년 2학기만큼 편하고 여유롭게 보낸 학창 시절이 없었던 것 같다. 마지막 학교 생활은 (마지막 맞겠지?) 그래도 좋은 기억으로 남아 다행이다.


좋은 학점 받겠다고 아등바등도 해보고 해탈하고(?) 부담 없이도 해봤다. 간판 좋은 학교를 괜찮은 학점으로 마쳤고 기술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많이 성장했다. 유학하기 전의 어둠에 찌들고 부정적이었던 과거의 내 모습과는 거의 정반대의 모습으로 집에 돌아왔다. 그래서 대학교 공부에 대한 미련은 없다. 열심히 했으니까. 한 번 쯤은 이렇게 살아보고 싶었다. 졸업한 지 꽤 지난 지금도 이러고 있기는 하지만...


졸업 작품은 결국 취직 포트폴리오에 넣지 못했다. 한국 회사들에게 보여주기에는 너무 실험적이고 예술적이다. ... 어느 정도는 알고 왔기에 할 말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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