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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아, 그 유학원을 가지 마오.

유학원을 조심하세요.

by 남선우

유학을 하기로 정하면 가장 먼저 하는 것은 당연히 유학원을 알아보는 것이다. 외국 학교를 다녀본 경험도 없고, 한국 입시만 준비한 학생에게는 아무런 정보가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미술유학이다. 나는 한국 미대를 준비하던 것도 아니었다. 그래서 포트폴리오도 없다!


서울에서 유학원은 강남과 압구정에 대거 포진되어 있다. 나는 하루에 압구정에 있는 두 유학원을 다 방문했다. 처음으로 방문한 유학원은 유럽 중심이라 미국을 계획하고 있던 나랑은 안 맞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문제는 두 번째로 방문한 유학원이었다. 학생수도 많고 건물도 크고 잘 나가는 곳이었다. 원장실에서 상담을 받았는데, 책장에 인문학 도서들이 꽂혀있었고 인문학을 좋아했던 나에게 좋은 인상을 남겼었다. 그래서 다음 상담을 예약했고 꽤 들뜬 마음이었던 것 같다. 두 번째 상담은 중학생 때 취미로 그린 그림 몇 장을 들고 부모님과 받았다. 거기서 나는 큰 상처를 입게 된다. 내 그림을 보더니 단번에 미술에 재능이 없다는 것이다.


자랑은 아니지만, 미술에 재능이 많다는 말만 들어봐서 정말 놀랐다. 원장이 그렇게 생각한 이유를 말했는데 여기서 그림자가 이렇게 될 수가 없고, 외국인 학생들처럼 묘사가 풍부하지가 않고, 어쩌고저쩌고. (그 그림들은 나름 유명한 미술 교육원의 홍익 미술대 나오신 선생님 수업에서 그린 것들이었다...) 그리고 미술유학은 정말 미술에 미친 학생들이 가는 것처럼 얘기했다. 그리고 면전에 한국 입시에 실패했다는 이유로 미술유학을 준비하면 안 된다고도 말했다.


이미 상실감이 너무 커서 살 의욕도 별로 없는데 그나마 믿었던 미술적 재능도 없다, 실패자다라는 말을 들으니 이제 막 20살이 된 나의 마음이 어땠을지 짐작이 갈 것이다. 그래서 그 상담 후 그래, 그냥 들어갈 수 있는 학교 가자...라며 자포자기 상태로 거의 방에만 틀어박혀 지냈다.


그러다 마지막이라는 마음으로 찾은 화실을 방문하게 된다. 위 두 유학원은 미술유학원으로 원서와 포트폴리오 준비를 같이 해주는 곳들이었고, 이 화실은 포트폴리오만 지도해 주고 원서는 연계된 유학원에서 따로 해 주는 곳이었다. 두 유학원이 삐까 뻔쩍 했던 거에 비해 이 화실은 작고 정말 예술하는 사람들이 올 것 같은 곳이었다. (실제로도 그렇다.) 화실에서 나는 특유의 재료 냄새, 물감으로 더럽혀진 책상, 여기저기 널려있는 작품들이 만들어 낸 정신없음이 나에게는 오히려 편안했다. 누구든 미술을 할 수 있다는 선생님들의 미술에 대한 마음도 좋았다. 그렇게 나는 그 화실을 다니게 되었고 지금도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유학 준비도 결국에는 입시 준비기 때문에 나에게 맞는 유학원을 찾아가는 것도 중요하다. 합격률, 원장과 강사의 스펙도 중요하겠지만 단순히 그것만 보고 유학원을 고르면 장기적으로 곤란하다. 왜 유학을 결심했는지, 유학에서 얻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고심해볼 필요가 있다. 많은 유럽이나 미국 학교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가르쳐주거나 떠먹여 주지 않는다. 당장 합격 포트폴리오를 만드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준비하면서 혼자 배우고 작업할 힘을 길러놓아야 한다. 이는 졸업 후 개인 작품을 풍부하게 하는 데에도 중요하다. 능력 있는 강사의 도움으로 화려한 포트폴리오를 만들고 입학 후 힘들어하는 학생들도 없지 않다.


지금에서야 생각하는 거지만 나에게 상처를 줬던 유학원은 미술수업 커리큘럼을 더 듣게 할 요량으로 겁을 주던 게 아닌가 생각된다. 그 유학원을 다녔으면 난 미술유학마저 포기했을 것 같다. 아니면 한국 미술 입시를 피했던 노력이 말짱 도루묵이 됐던가.


그러니 유학원이 하는 얘기를 전부 받아들이지 말기를 바란다. 왜 그런 말을 하는지 판단해서 걸러 들어야 한다. 유학은 준비부터 힘든 장기전이다. 기죽지 말고 굳건히 목표와 자신감을 잃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지금의 내 정신력으로 그 유학원을 갔으면 이렇게 생각했을 텐데.


'음…그래서 어쩌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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