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일 오후, 을지로를 걷다가 문득 생각했다. 평생직장이라는 것이 정말 존재했을까, 아니면 우리가 만들어낸 신화 같은 것이었을까.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창밖을 보고 있었다. 출근길에 보던 익숙한 얼굴들이 퇴근길에도 똑같이 지나간다. 그들은 어디로 가는 걸까. 회사로 가는 걸까, 아니면 회사에서 나오는 걸까. 때로는 구분이 되지 않는다.
아버지 세대에게 평생직장은 안정이었다. 그것은 마치 든든한 방파제 같은 것이어서, 바깥의 거친 파도로부터 가족을 지켜주는 무언가였다. 매달 꼬박꼬박 들어오는 월급, 정년까지의 확실한 경로, 퇴직금이라는 이름의 작은 보상. 그것으로 충분했다.
하지만 내가 사는 이 시대에서 평생직장은 다른 의미를 갖는다. 어쩌면 의미를 잃어버렸다고 말하는 게 더 정확할지도 모른다.
재즈를 좋아하는 친구가 있다. 그는 가끔 이런 말을 한다. "인생도 재즈처럼 즉흥연주 아닐까. 정해진 악보대로만 연주하면 재미없잖아." 그의 말을 들으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평생직장이라는 것도 결국 정해진 악보 같은 게 아닐까. 처음부터 끝까지 한 곡만 연주하는 것.
서울의 겨울은 차갑다. 광화문을 지나다 보면 정장을 입은 사람들이 바삐 걸어간다. 그들 중 몇 명이나 10년 후에도 같은 건물로 출근하고 있을까. 통계를 찾아볼 필요도 없다. 우리는 이미 답을 알고 있다.
평생직장이 사라진 것이 나쁜 것만은 아니다. 자유가 생겼다. 선택이 생겼다. 스스로 방향을 정할 수 있는 여지가 생겼다. 하지만 동시에 불안도 생겼다. 끝없는 경쟁도 생겼다. 언제든 교체될 수 있다는 두려움도 생겼다.
이따금 나는 상상한다. 만약 평생직장이 여전히 존재한다면, 나는 그것을 선택할까. 40년을 한 곳에서 보낸다는 것. 같은 사람들과 매일 점심을 먹고, 같은 책상에 앉아 같은 일을 반복한다는 것. 그것이 행복일까, 아니면 감옥일까.
답은 없다. 어쩌면 답을 찾는 것 자체가 의미 없는 일인지도 모른다.
중요한 것은 평생직장이 있느냐 없느냐가 아니라,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기로 선택하느냐가 아닐까. 한 곳에 머물든, 계속 떠나든, 그것은 각자의 선택이다.
창밖에서는 여전히 사람들이 걷고 있다. 나는 노트북을 닫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일 또 다른 하루가 시작될 것이다. 평생직장이 있든 없든, 삶은 계속된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